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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뭉글 Oct 09. 2023

실습

몇년 전, 일부 간호대학에서 동기들끼리 관장실습을 하게 한다는 제보로 떠들석했던 적이 있다. 제비뽑기로 피실습자를 정하고, 생리중인 학생에게도 휴지로 막고 진행하게 했다는 제보였다. 실습을 지도한 분의 의도는 환자를 체험해보는 것, 직접적인 사람에게 실습을 해보는 것에 의의를 두었을 것이다. 하지만 실습의 강제성은 충격적이었다. 그래도 우리는 생각해보아야 한다. 진정한 실습의 의미에 대해서.


간호대학생은 1000시간 이상의 실습을 하지만 실제 환자에게 행해보고 환자로부터 배울 수 있는 실습을 한 적이 손에 꼽는다. 하물며 소아병동을 실습 할 때는 혈압 한 번 잴 수 없었다. 보호자들이 원치 않기 때문이였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내가 엄마가 된다 해도 딱 봐도 얼타는, 간호사도 아닌 학생에게 내 아이의 팔을 내주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고백하자면 실습할 때야 좋았다. 나는 의욕도 열정도 없는 학생이었기에 할 일이 줄었고 보호자들 앞에서 진땀 뺄 기회가 강제로 없어지는 것은 쾌재를 부르게 했다. 하지만 덕분에 나는 병원에 입사 후 6개월 환자의 혈압을 재는데 무려 삼십분이 넘게 걸렸고, 심지어 실패했다. 처음엔 혈압재기를 실패한 후 다시 스테이션으로 돌아와 프리셉터에게 소아 환자의 혈압을 어디로 재야하는지 물었다. 프리셉터 선생님은 "이새끼는 뭐하는 놈인가" 하는 눈빛을 애써 숨기려하는 것이 역력해 보였다. 답변을 듣고 환자에게 다시 돌아가 삼십분이 넘게 아이의 다리에 혈압계 커프를 감고 혈압을 재댔다. 지쳐버린 보호자의 한숨에 녹아버리기 직전 프리셉터 선생님이 박차고 들어와 삼십초만에 혈압을 재주었고 나는 안도의 한숨과 함께 자괴감에 녹아내렸다. 언제까지고 캐신과 프리셉터가 나의 뒤를 봐줄 순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쌍욕도 먹어가고 눈물도 흘려가며 많은 것들을 배워갔다. 마치 서울에서 부산까지 비행기 안타고, 헬기 안타고 30분내로 가라는 미션을 받은 것 같았다. 그러면서 나에게도 환자에게도 좋지 않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아무것도 모르는 실습생들이기에 아무것도 못한 우리는 홀로 환자들에게서 첫 시작을 배워야했고, 모든 것은 환자를 위한 의도였으나 이 모든 것은 환자에게 돌아갔다.


입사 후 교육에서도 크게 다르진 않다. 신입간호사는 입사 후 두달이 채 안되는 기간 동안 교육을 받고 독립을 한다. 배정된 프리셉터는 아무것도 모르는 프리셉티를 하나부터 열까지 가르쳐야 한다. 두 달이 안되는 시간동안 걸음마도 못 뗀 신생아를 1인분 하는 인간으로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프리셉터의 업무량은 다른 간호사와 비슷하게 배정받는다. 급여를 더 주는 것도 아니다. 새끼를 등에 업은채 입으로는 쉴새 없이 나불대며 가르치고 바쁘게 움직여야한다. 프리셉터도 알고있다. 실무가 중요한 병원에서, 까딱하면 목숨 하나 날아가는 병원에서 나의 그늘 아래에서 안전하게 부딪쳐보아야 한다는 걸. 하지만, 1분1초가 아까워 전화를 받으며 약을 만드는 와중에 신입간호사가 느그적 느그적 단순도뇨 세트를 만들고 있는 것을 보자면 나의 손은 이미 분주해지고 있다.


"선생님, 지금 바빠서 오늘은 제가 할게요. 미안해요."


하며 신입간호사의 실습의 기회를  빼앗은 적이 몇번인가.


딱 봐도 새 것 냄새가 폴폴 나는 신입간호사와 함께 환자에게 가면,


"경력자 데리고 와요."

"라인 잘 잡으세요?"


라는 소리를 듣고 신입간호사에게 상처주기 싫다는 저급한 핑계로 기회를 빼앗은 적이 몇 번인가.


그렇기에 우리는 고통스럽지만 본질을 보고 고민해 봐야 한다. 무엇이 병원에서 환자를 위한 일인가. 나는 비록 캐신이 되지 못했고,  빠르고 똑똑한 간호사는 되지 못했다. 하지만 많은 학생간호사와 신입간호사가 제대로된 실습과 교육을 받는다면  쉽고  빠르고  안전하게  언저리에는 다가갈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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