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공항에서
윤상은 작년 여름부터 인천공항에 총 7번을 갔다. 그 일곱 번 중 여섯 번째의 인천공항 행에서 "해외에 나가지 않으면서 인천공항에 최단기간 제일 많이 가 본 사람"은 단연코 대한민국에 본인밖에 없을 거라고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자랑스레 이야기했다. 그렇다. 윤상의 여자친구인 나는 작년 여름부터 인천공항에서 네 차례의 국제선 비행기를 탔다. 한 번은 삼 개월 동안의 여행, 그 이후의 두 번은 가족 여행, 마지막 한 번은 봉사라는 이름하에 나는 윤상의 픽업서비스를 받고 비행기에 탔다. 금번의 코트디부아르행에 앞서서도 출국장 게이트에서 괜스레 미안한 마음에, 괜히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예의상 한 번 해본다.
"윤상, 이번엔 괜찮으니까 지-인짜 안 와도 돼."
"응, 그래. 알아서 와."
윤상은 장난기 섞인 얼굴로 씨익 웃으며 대답한다. 그러곤 열흘 후 우리에게 익숙해져 버린 인천공항 1층 도착게이트에서 그는 늘 있던 곳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그럼 난 윤상의 목덜미 속에서 그리웠던 냄새를 맡고 그제야 내가 있어야 하는 자리에 온 사람처럼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언젠가 안도의 한숨 대신 아뿔싸 했던 날이 있다. 삼사흘에 하루는 잠을 잘 못 자던 날들이 있었는데 그런 날들 중 하루, 윤상을 잃어버리는 날을 상상하며 괴로워했던 적이 있다. 지금 돌이켜보면 걱정할 것이 없어 그런 거나 생각하며 질질 짰다니 하고 이불을 걷어차게 하지만, 그 순간에는 내게 이렇게 소중해져 버린 것이 생겼다는 것을 깨닫고 내 생에 가장 슬프고 불안한 감정을 느끼는 날이었다. 그러다가 밝은 대낮에 윤상의 해맑은 얼굴을 보고, 잠들기 전 윤상의 살 냄새를 맡으면 이 세상 편안해지는 시간을 체험하며 내 사랑의 형태에 대해서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대체로 찬란했던 날들 속에서 내 사랑의 형태는 망가질 대로 망가지기도 했다. 마냥 촉촉하기만 했던 나의 사랑이 정체 모를 웅덩이에 빠져 허우적대기도 했고, 어딘가에 부딪쳐 맥을 못 추기도 했고, 가시가 돋아 애먼 사람들을 다 찌르고 다니기도 했다. 그런 날이면 나는 단 한 톨의 빈틈도 없는 완벽한 사랑과 구원을 머릿속에 그려보려 애썼다.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어느 시인의 시 한 구절을 읊조리면서. 그리고, 이 세상에 완벽한 구원은 없다고 툴툴대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믿고 있다. 망가진 만큼 혹은 그보다 더 큰 구원을 받기도 한다는 걸. 사랑의 반죽은 웅덩이의 물에 힘입어 더 단단한 반죽이 되고, 상처에 부딪친 타박상은 남의 상처를 돌아볼 수 있는 힘을 갖게도 하고, 밖으로만 내보이던 가시는 이제 가슴에 품고 마음을 단단히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게도 한다. 며칠 전 공항에서 여느 때처럼 날 먼저 알아보고 손을 흔들어주는 너를 보며 바로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또, 늘 기다려주고, 언제나 더 큰 사랑을 내어주는 너와의 사랑에서 형태는 그 어떤 모양이든 상관없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