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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쾌한 달수씨 Oct 22. 2023

아름다운 가게, 아름다운 그대

나의 쓸모가 누군가의 쓰임이 되기를

천사가 됐습니다


집 근처에 있는 <아름다운가게*>에서 일주일에 한 번 봉사를 하고 있다.


*아름다운가게 : 2002년에 출범한 비영리기구이자 사회적 기업. ‘모두가 함께하는 나눔과 순환의 아름다운 세상 만들기’라는 미션을 가지고 있으며, 기부물품 판매를 통한 수익금으로 국내외 소외계층을 위한 지원 사업을 하고 있다. 전국에 약 110개의 매장이 있다.



얼마 전 오픈한 아름다운가게 대구상인점 @아름다운가게 홈페이지 / 내가 일했던 곳은 아님


아름다운가게의 자원봉사들은 ‘활동천사’라고 불린다. 실제로 매장에서도 ‘천사님’이라고 부를 때가 있는데, 그러면 본인들도 민망하고, 손님들도 흠칫 놀라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무난하게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더 자주 쓴다. 어쨌든 활동천사들은 구매자 응대, 기부물품 판매, 청소, 물품 진열, 기부자 응대, 기부물품 관리 등 다양한 일을 수행한다. 업무 범위는 봉사시간과 활동 경험 등을 토대로 봉사자마다 달라질 수 있지만, 자원봉사자들에 의해 실질적으로 매장이 운영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덕분에 나는 난생처음 포스(POS)기 접해보기도 했다. 봉사를 시작한 지 넉 달째가 되어 가는 지금은 카드 3개월 할부도, 현금영수증 발행도 척척 할 수 있다. 자주 들르시는 단골 분들에겐 자주 찾으시는 스타일의 물건을 추천해 드리기도, 기꺼이 의상 모델이 되어 드리는 경우도 있다. 여러 개의 물건을 두고 구매를 고민하시는 분들껜 냉정하게 품평을 해드리기도 한다.


손님 없이 한가한 시간에는 물건을 정리하거나, 같은 시간 대에 함께 봉사하는 짝꿍 천사님과 담소를 나눈다. 나의 짝꿍은 몇 년 전 공기업을 정년퇴직하신 멋쟁이 아저씨다. 여기서 자원봉사를 하신 지 벌써 3년이 넘었다고 한다. 은퇴 후엔 자원봉사뿐만 아니라, 아내 분과 함께 요가도 하고, 그림도 배우러 다니신다. 나의 워너비 라이프다. 어떤 분은 봉사를 시작하신 지 10년도 더 되셨다고 한다. 매장 매니저보다도 가게 일에 더 빠삭하다.


가끔 대학생들도 하루나 이틀 정도 짧게 자원봉사를 하러 온다. 학교 졸업요건을 채우기 위해서다. 오랜만에 ‘젊은이’들을 만나면 왠지 신이 난다. 같은 MZ 세대라며 괜히 친한 척도 하고, 학교 얘기도 물어보고, 간식도 사 먹이는데 그들은 어떻게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주책 아줌마라고 생각했을까.



모든 물건에는 주인이 있다.


아름다운가게에 봉사하러 올 때마다 새삼 떠오르는 말이 있다. 모든 물건에는 주인이 있다는 점이다. 내 눈에 예쁜 물건이 남들 눈에도 예뻐 보이는 건 당연하지만(그래서 그런 건 금방금방 팔려버린다), 저런 걸 사가는 사람도 있네, 저건 뭐에다 쓰려고 사가는 걸까? 싶은 아무리 못생긴 그릇도, 몇 달 동안 팔리지 않았던 가방도 아무나 소화하기 어려운 야한 디자인의 치마도, 신기하게도 어느 날 갑자기 마침내 주인을 찾아간다. 모든 것에는 쓰임이 있다는 뜻일 거다.


컴퓨터와 영 친해지지 못하는 주원 @ 디즈니플러스 <무빙>


인기 드라마 <무빙>에서 종횡무진 현장을 누비던 주원(류승룡분)은 어느 날 내근직으로 전환된다. 하지만 한평생 현장에서 몸을 쓰며 살았던 주원은 사무직에 쉬이 적응하지 못한다. 

“아무 쓸모가 없어진 기분이야.”

주원은 아내에게 우울함을 토로한다.


“쓸모는 각자 노력이지만 쓰임은 스스로 어쩌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중략) 세상에 쓰이는 사람들이 모두 딱 맞는 쓸모를 갖춘 것은 아니다. 단지 그의 재주만이 아니라 품성과 태도, 때로는 인연이 더 중요할 때가 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가진 능력과 그 사람이 쓰이는 자리가 꼭 들어맞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이자 공연기획자인 탁현민은 저서 <사소한 추억의 힘>에서 ‘쓸모’와 ‘쓰임’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는 ‘쓸모’는 자신의 노력에 비례하지만, ‘쓰임’은 내가 어쩌지 못하는 영역으로, 운명의 때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쓸모와 쓰임 앞에서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가장 현명한 태도는 언제일지 모르는 쓰임의 순간을 기다리며 자기 쓸모를 꾸준히 더하는 수밖에 없다.”라고 말한다.


원 주인에게는 쓸모를 다했지만, 또다시 누군가의 쓸모가 될 수 있기에 운명적인 쓰임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는 물건들. 나의 쓸모를 통해 '나눔과 순환의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데 일조하는 자원봉사자들. 아름다운가게의 물건과 사람들은 그래서 더 아름답다.




이제 휴직기간은 끝났고, 어느덧 회사로 돌아갈 때가 됐다. 오랜만에 출근이라 조금 걱정은 되지만 쓰임이 있던 곳으로 돌아가게 되어 다행이다. 괴로웠던 순간들, 즐거웠던 순간들... 일 년 간의 다양한 순간과 경험들이 나의 쓸모에 도움이 됐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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