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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쾌한 달수씨 Oct 22. 2023

쉘 위 댄스?

손끝으로 느끼는 살사의 매력

몸치가 무슨 춤이라고...


운동에 그만이었던 배달을 하지 못하게 되자, 그 대신 몸을 움직이며 체력을 기를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고민해 보았다. 그러다 문득 '춤을 추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타고난 몸치인 나에게 ‘스우파’ 스트릿 댄스는 언감생심, 그렇다고 다리도 못 찢는데 발레도 말이 안 되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러던 중 십수 년 전 인기리에 방영한 <무한도전>의 스포츠댄스 특집과 그로부터 또 수십 년 전 부모님이 동네 체육센터에서 배워와 틈틈이 즐기셨던 사교댄스가 생각났다.


‘스포츠댄스’, ‘학원’, ‘OO구’ 등 내가 사는 지역에서 배울만한 곳을 검색해 봤더니 바로 그다음 주부터 시작하는 ‘살사 왕초보반’ 모집글이 나타났다. ‘흠, 살사라...’ 막연히 왈츠나 탱고 등 보다 정적이고 우아해 보이는 춤이 배우기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저렴한 수강료는 마음을 돌리기에 충분했다. 6주에 8만 원, 게다가 첫 수업은 무료라니… 이거슨 인생의 라이프에 찾아온 운명의 데스티니!



Super Shy Salsera


제비, 춤바람, 카바레,  등 사교댄스 하면 함께 떠오르는 끈적이고 어두운 이미지에 나 역시도 자유롭지 못했던 사람 중 하나다. 이상한 분위기면 어떡하지, 누가 자꾸 들이대면 어떡하지, 춤추다가 가발이 벗겨지진 않겠지… 라며 쓸데없는 생각과 두려운 마음을 안고 첫 강습에 참여했다.


'원투쓰리포오, 파이브식스세븐에잇…' 가장 기본적인 스텝과 라이트턴(right turn)까지, ‘춤이라는 것을 처음 배우고자 하는 분’, ‘왕초보, 몸치, 박치도 가능’하다는 살사 동호회 광고 문구에 꼭 맞게, 조금 뚝딱이긴 했지만 큰 무리 없이 한 시간의 수업을 무사히 마쳤다. 걱정과는 달리 불미스러운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그럴만한 분위기도 전혀 아니었다. 나쁘지 않은 경험이었지만, 정식 수강은 망설이고 있는 차에 당일 결제하면 만원을 더 할인해 준다길래 냉큼 등록했다. 딱 이번 달만 들어야지.


그렇게 시작한 살사, 나는 벌써 6개월 차 살세라*로 거듭나고 있다. 파트너와 쭈뼛쭈뼛 눈 마주치는 것도 어려워하던 나는 이제 제법 스텝을 밟는다. 심지어 즐기기까지 한다. ‘턴이 참 좋으시네요’, ‘미래의 춤나무가 되시겠어요.’와 같은 말도 들어보았다. (클리셰 같지만 살사바에서는 정말 이런 말을 서로 주고받는다!)


*살사를 추는 여자는 살세라(salsera), 남자는 살세로(salsero)라고 한다


다시 보니 더 재밌는 춤 영화


<쉘위댄스>의 '스기야마상', <더티댄싱>의 '베이비'에 저절로 빙의가 됐다. 그들이 왜 이렇게 급격히 댄스에 빠져들었는지 이제 알 것 같기 때문이다. 헤어 나오지 못하는 살사의 ‘돌리는 맛’과 ‘당기는 맛’, 경험해보지 않은 자들이 어떻게 알까?




손으로 교감하는 살사


살사는 남녀가 짝이 되어 추는 춤이다. 치맛자락을 휘날리며 뽐내는 화려한 동작은 보통 여자의 몫이지만, 어떤 동작을 뽑아낼지 리드하는 건 남자의 역할이다. 어느 쪽으로 보낼지, 당길지, 돌릴지 등 다음 움직임을 미리 생각하고 신호를 주어 여자를 리드해야 한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건 손의 역할이라 하겠다. 맞잡은 두 손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기 때문이다.



La Isla Bonita2 문정희와 함께하는 살사 라이브 밴드 콘서트 @강남 나오미 클럽 / 정말 멋있다


유명 배우이자 살사 국가대표로 이력까지 있는 살세라 문정희는 “손을 통해 상대방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남자들과 춤을 출 때 손을 잡아보면 그 사람이 착한 사람인지, 배려 없는 사람인지, 성질이 급한 사람인지 금방 알 수 있다. 손으로 데이터가 다 입력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카바레에서 소위 ‘제비’라고 하는 분들은 외모가 아니라, 손맛이 좋다. 촥 감긴다. 그래서 못 끊는다.”고 덧붙인다. (MBC <라디오스타> 중, 2015.11 방영)


나는 그 정도의 내공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어떤 말인지는 알 수 있을 것 같다. 손은 뭐랄까, 그 사람의 아우라이자 관상이다. 덩치나 얼굴 생김새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축축한 손, 메마른 손, 차디찬 손, 따뜻한 손, 부드러운 손… 살사를 추면 여러 남성분들과 홀딩(holding, 손을 잡는 것)할 기회가 생기는데, 그때마다 참 다양한 손을 느낀다. 무서운 외모에도 아기같이 부드러운 손을 가진 분들이 있고, 메마르고 차가운 손을 가진 분도 있다. 투박하지만 섬세한 손, 어설프나 노력하는 손, 답답하게 겉도는 손도 있다. 신기한 건 그 느낌이 십중팔구 맞는다는 것이다. 손이 착 감기는 파트너와는 베이식 스텝을 밟을 뿐인데도 재미가 있고, 아무리 외모가 훌륭한 분이라고 하더라도 손의 느낌이 좋지 않으면 스텝이 꼬이고 만다. 남자들도 상대방의 손을 느끼는 건 마찬가질 텐데, 나의 손은 어떤 기운을 가지고 있을까.




비즈니스 타고 살사 추러 가야지


욕심 없이 살겠다고 매일같이 다짐하지만, 또 다른 꿈이 생겨버렸다. 바로 살사의 고장, 쿠바를 가보는 것이다. (뭐 푸에르토리코, 코스타리카, 콜롬비아 등 살사를 추는 라틴아메리카의 나라들이라면 어디든 괜찮다.) 혹시나 스텝을 틀렸을까 눈치 보지 않고, 현지인들과 함께 온전히 즐기면서 웃고 떠들다 오고 싶어졌다.


문제는 항공편이다. 경유까지 포함해 24시간도 더 걸린다는 그곳을 이코노미석에 앉아 가기엔 이제는 체력이 받쳐 주지 않을 것 같다. 왕복 전 좌석을 비즈니스로! 호텔은 5성급으로! 혼자 가긴 심심하니 살사를 추는 친구와 함께! 그렇다면 우선 로또가 되길 기대하는 수밖에!!





덧) 운동됩니다. 매우 됩니다. 암 환우 분들은 살사바 앞으로!!

덧덧) 가발은 벗겨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위험했던 적은 몇 번 있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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