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입버릇처럼 하는 이야기. 나도 일확천금의 기회를 꿈꾸는 사람들 중 하나다. 그러나 정작 로또를 사 본 경험은 드물었다. 로또를 사지도 않고 로또가 되기를 바라고만 있었다고 해야 하나. 지극히 현실적인 나에게 로또는 어차피 안 될 것, 허투루 돈을 쓸 필요가 없는 것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마들역 로또 판매점 @한경비즈니스
어느 날 길을 걷던 중 한 로또 판매점이 눈에 들어왔다. 상가 건물 한 켠을 우뚝 차지하고 있는 로또 명당. 1등 당첨자를 49번이나 배출했다는 커다란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한적한 평일 오후였는데도 로또를 사러 온 사람들이 꽤 길게 줄을 서 있었다. 그 동네 주민에 따르면 로또 추첨일을 앞둔 금요일과 토요일, 설이나 추석연휴를 앞두고는 말 그대로 문전성시를 이룬다고 한다. 전국으로 택배까지 보내준다고 하니 명당은 명당인가 보다 싶어 호기심에 로또를 몇 장 사봤다. (그리고 보기 좋게 전부 낙첨됐다.)
관심을 한 번 보이니 갑자기 길거리의 수많은 로또 판매점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 이렇게 많은 판매점이 있었나... 눈에 밟히는데 그냥 지나갈 수는 없지. 여기서 한 장, 저기서 한 장. 차곡차곡 로또를 사 모으기 시작했다.
암에도 걸려봤는데, 로또 한번 안 걸리겠어?
돈 낭비로만 여겼던 로또를 일확천금의 기회비용으로, 생각을 전환하게 된 까닭은 단순하다. 그 적은 확률을 뚫고 - 특별한 요인 없이도 - 암에 걸렸는데, 로또 당첨은 왜 안 되겠냐는 생각이 든 것이다. 아무리 일상적인 병이 되었다지만, 여전히 암은 불운의 상징이기에, 로또 당첨이라는 행운으로 상쇄해야 인생이 좀 공평해지지 않겠는가.
실제로 암 발생과 로또 당첨, 각각의 확률을 한번 비교해 봤다. 안타깝게도 암보다는 로또 1등에 당첨될 확률이 훨씬 희박하다는 결론이다. 45개의 숫자 중 6개를 맞춰야 하는 로또 1등 당첨 확률이 약 814만 분의 1, 즉 0.0000123%인데 비해, 암 발생률은 10만 명 당 482.9명으로 0.482%나 된다. 암종별로 살펴봐도 유방암 발생률은 10만 명 당 84.8명으로 0.0848%에 달한다.(보건복지부, 2020년 기준)
1등 당첨의 욕심을 조금 줄여 2등과 3등까지 당첨 확률을 모두 더하더라도(약 0.00289%) (유방)암 발생률에 미치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다. 흐음. 로또 되긴 정말 어려운 거였구나. 당첨 확률을 높이는 유일한 방법은 많이 사는 것뿐이다!
오락과 도박은 한 끗 차이
하지만 당첨률을 높이기 위해서 닥치는 대로 로또를 샀다간 일확천금은커녕 알거지가 될 수도 있는 노릇이다. 하여 나름의 원칙을 정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커피 한잔 값, 로또 한 장이면 일주일치 행복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커피도 처음 한 잔이 가장 맛있다!)
내가 선물한 로또가 당첨됐을 경우에 대비해 만든 원칙도 있다.
1등과 2등에 당첨될 경우 나와 ‘반띵’을 해야 하며, 3,4,5등일 경우, 당첨금은 몽땅 그 사람의 몫이다. 당첨 소식을 알릴지 말지는 양심에 맡긴다. 아쉽지만 아직까지 그 누구에게도 당첨소식을 전해 들은 바는 없다.
로또가 가져다주는 행복
토요일이 추첨일이라면 난 월요일부터 행복할 거야.
로또가 가져다주는 행복감은 생각보다 크다. 지갑 속 로또 한 장은 국밥에 준하는 든든함을 선사한다. 일주일을 짜릿하게 보낼 수 있는 청량제이며, 행복회로를 돌릴 수 있는 윤활유다.
선물용으로도 그만이다. 한 장에 오천 원*이니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부담이 없다. 종종 모임에 참석할 때 지인들께 로또를 선물하곤 하는데, 환영하지 않는 이는 아무도 없다. 성별도 나이도 종교도 정치색이 달라도 로또로 대동단결! 어차피 안될 거라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는 은근히 기대하게 되는 게 사람 마음. 허황되면 어떠리, 당첨의 순간을 다 함께 꿈꿔보기도 한다.
*1게임은 1천 원이지만, 보통 1장(5게임) 단위로 구매하게 된다.
낙첨이 되어도 꼭 실망할 필요는 없다. 로또 판매액의 일부는 당첨금으로 사용되고, 나머지로는 로또 기금이 조성되어 어려운 이들을 돕는다고 하니, 내가 당첨되지 않더라도 누군가의 행복과 누군가의 형편에 일조했다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커피 한 잔 값으로 나도 즐겁고 남들도 행복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