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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쾌한 달수씨 Oct 21. 2023

로또 될 결심

로또 당첨 확률과 암에 걸릴 확률 중 더 높은 건?

“로또나 됐음 좋겠다.”


누구나 입버릇처럼 하는 이야기. 나도 일확천금의 기회를 꿈꾸는 사람들 중 하나다. 그러나 정작 로또를 사 본 경험은 드물었다. 로또를 사지도 않고 로또가 되기를 바라고만 있었다고 해야 하나. 지극히 현실적인 나에게 로또는 어차피 안 될 것, 허투루 돈을 쓸 필요가 없는 것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마들역 로또 판매점 @한경비즈니스


어느 날 길을 걷던 중 한 로또 판매점이 눈에 들어왔다. 상가 건물 한 켠을 우뚝 차지하고 있는 로또 명당. 1등 당첨자를 49번이나 배출했다는 커다란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한적한 평일 오후였는데도 로또를 사러 온 사람들이 꽤 길게 줄을 서 있었다. 그 동네 주민에 따르면 로또 추첨일을 앞둔 금요일과 토요일, 설이나 추석연휴를 앞두고는 말 그대로 문전성시를 이룬다고 한다. 전국으로 택배까지 보내준다고 하니 명당은 명당인가 보다 싶어 호기심에 로또를 몇 장 사봤다. (그리고 보기 좋게 전부 낙첨됐다.)


관심을 한 번 보이니 갑자기 길거리의 수많은 로또 판매점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 이렇게 많은 판매점이 있었나... 눈에 밟히는데 그냥 지나갈 수는 없지. 여기서 한 장, 저기서 한 장. 차곡차곡 로또를 사 모으기 시작했다.




암에도 걸려봤는데, 로또 한번 안 걸리겠어?


돈 낭비로만 여겼던 로또를 일확천금의 기회비용으로, 생각을 전환하게 된 까닭은 단순하다. 그 적은 확률을 뚫고 - 특별한 요인 없이도 - 암에 걸렸는데, 로또 당첨은 왜 안 되겠냐는 생각이  것이다. 아무리 일상적인 병이 되었다지만, 여전히 암은 불운의 상징이기에, 로또 당첨이라는 행운으로 상쇄해야 인생이 좀 공평해지지 않겠는가.


실제로 암 발생과 로또 당첨, 각각의 확률을 한번 비교해 봤다. 안타깝게도 암보다는 로또 1등에 당첨될 확률이 훨씬 희박하다는 결론이다. 45개의 숫자 중 6개를 맞춰야 하는 로또 1등 당첨 확률이 약 814만 분의 1, 즉 0.0000123%인데 비해, 암 발생률은 10만 명 당 482.9명으로 0.482%나 된다. 암종별로 살펴봐도 유방암 발생률은 10만 명 당 84.8명으로 0.0848%에 달한다.(보건복지부, 2020년 기준)


1등 당첨의 욕심을 조금 줄여 2등과 3등까지 당첨 확률을 모두 더하더라도(약 0.00289%) (유방)암 발생률에 미치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다. 흐음. 로또 되긴 정말 어려운 거였구나. 당첨 확률을 높이는 유일한 방법은 많이 사는 것뿐이다!



오락과 도박은 한 끗 차이


하지만 당첨률을 높이기 위해서 닥치는 대로 로또를 샀다간 일확천금은커녕 알거지가 될 수도 있는 노릇이다. 하여 나름의 원칙을 정했다.


첫째, 한 번 방문한 판매점은 두 번 다시 가지 않는다.

로또 판매점은 생각보다 훨씬 많이 존재한다. 전국에 있는 로또 판매점은 무려 8,109개(2021년 기준), 서울에만 1,400개가 넘는다. 일부러 찾아다니지 않아도 관심만 조금 가지면 매주 새로운 판매점을 발견할 수 있다.


둘째, 한 집에서는 딱 한 장만 산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커피 한잔 값, 로또 한 장이면 일주일치 행복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커피도 처음 한 잔이 가장 맛있다!)  


내가 선물한 로또가 당첨됐을 경우에 대비해 만든 원칙도 있다.

1등과 2등에 당첨될 경우 나와 ‘반띵’을 해야 하며, 3,4,5등일 경우, 당첨금은 몽땅 그 사람의 몫이다. 당첨 소식을 알릴지 말지는 양심에 맡긴다. 아쉽지만 아직까지 그 누구에게도 당첨소식을 전해 들은 바는 없다.




로또가 가져다주는 행복


토요일이 추첨일이라면 난 월요일부터 행복할 거야.


로또가 가져다주는 행복감은 생각보다 크다. 지갑 속 로또 한 장은 국밥에 준하는 든든함을 선사한다. 일주일을 짜릿하게 보낼 수 있는 청량제이며, 행복회로를 돌릴 수 있는 윤활유다.


선물용으로도 그만이다. 한 장에 오천 원*이니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부담이 없다. 종종 모임에 참석할 때 지인들께 로또를 선물하곤 하는데, 환영하지 않는 이는 아무도 없다. 성별도 나이도 종교도 정치색이 달라도 로또로 대동단결! 어차피 안될 거라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는 은근히 기대하게 되는 게 사람 마음. 허황되면 어떠리, 당첨의 순간을 다 함께 꿈꿔보기도 한다.

*1게임은 1천 원이지만, 보통 1장(5게임) 단위로 구매하게 된다.


낙첨이 되어도 꼭 실망할 필요는 없다. 로또 판매액의 일부는 당첨금으로 사용되고, 나머지로는 로또 기금이 조성되어 어려운 이들을 돕는다고 하니, 내가 당첨되지 않더라도 누군가의 행복과 누군가의 형편에 일조했다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커피 한 잔 값으로 나도 즐겁고 남들도 행복할 수 있다.




토요일이 돌아왔다. 이번주에는 과연 행운이 찾아올 것인가!







*커버사진 : 로또 볼 @게티이미지 코리아


※ 참고글

- 2020년 코로나19 유행 첫 해, 암 발생자수 감소 및 5년 단위(2014∼2018) 시군구별 암발생 통계 결과 발표(보건복지부 보도자료, 2022.12.28)

- 이번엔 나다! 누구나 꿈꾸는 인생 역전 ‘로또 2등 100장 당첨금에 세금은 얼마?’(미래에셋증권 매거진, 2023.3.9)

- 로또 당첨도 안 부러워…최대 10억 번다는 로또 판매점(매일경제, 2022.4.8)

- 동행복권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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