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학기에 절여졌던 시골 쥐가 활동을 시작했다!
# 2023. 12. 27.
시골 쥐의 가장 큰 취미생활은 사진 촬영이다. 2017년 중학생 시절 자유학기제 활동으로 사진반을 들어간 게 시작이었다. 당시 엄마가 하이마트에서 캐논 DSLR인 100D를 사오셨고, 그걸로 벌써 칠 년째 취미를 이어오고 있다. 중, 고등학생 시절 찍은 사진들을 보면, 뭣도 모른 채로 중구난방 찍은 사진들이 천지다. A모드, T모드는 어떻게 쓰는 건지 몰라 풍경 모드, 오토 모드 등에 다이얼을 맞춰 놓고 마구 찍었다. RAW 파일의 존재는 대학교나 와서야 알았고, 새 렌즈를 구입한 것과 사진 보정을 제대로 하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그래서 옛날 사진을 보다 보면, 지금이 그래도 많이 발전했구나 싶으면서도, 되는 대로 찍었던 사진들에 비치는 중학교 친구들의 얼굴이 문득 나를 아련하게 하기도 한다. 다들 어디서 뭐 하고 있으려나.
최근에 사진 공부를 시작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 꽤 많다. 내 카메라가 캐논에서 나온 DSLR 중 가장 가벼운 제품이라는 사실부터 저 바디가 가격이 이제 20만원도 하지 않는다는 충격적인 사실과, 이제는 6-70만원 대에도 좋은 미러리스 카메라들을 구할 수 있다는, 내 구매욕을 부추기는 정보까지. 사진의 3대 요소인 조리개 값, 셔터 스피드, ISO가 무엇인지와 이것들을 어떻게 버무려야 하는지 역시 찾아보기도 하고 직접 찍으며 느껴보기도 한다. 그래, 사진 공부하는 데에 직접 찍어보는 것만큼 좋은 공부는 또 없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사실 날짜를 보면 계절학기 기간 중에 갔다온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때가 개강 이튿날이었다. 과제도, 시험도 아직은 하기 이른 시점이었던 터라 수업이 끝난 오후에 출사를 다녀왔다. 오늘 가볼 곳은 한남역과 한남대교다.
이 때에는 날씨가 한동안 화창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남역으로 향하기 전 집 앞 풍경이 예뻐 사진기 테스트도 할 겸 몇 장 찍어보았다. 의외로 무심코 찍었던 왼쪽의 사진이 초점도 잘 맞고 뒷 배경도 적절하게 흐릿해서 마음에 들었다. 오른쪽 사진은 집 쪽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찍은 것이다. 이 동네가 경사진 곳에 자리해서 매일 등하교할 때에 저 계단을 오르느라 적잖이 애를 먹었다. 각설하고 이제 이동해보자.
우리 집에서 한남역까지 가려면 디지털미디어시티역에서 경의중앙선으로 갈아타야 한다. 디엠시역에 들어선 직후 나를 미소짓게 했던 것은, 역 자체가 지상역이어서 빛이 잘 들어오는 데다 일부 위치에는 가장 큰 방해물인 스크린도어가 아닌 안전펜스가 설치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가리는 것 없이 잘 뚫려있는 역이라 탁 트인 시야에서 사진 찍기가 굉장히 좋았다. 괜스레 찍어본 문산 가는 열차는 문산읍이 위치한 파주시의 홍보 랩핑을 한 채 달리고 있었다.
오랜만에 큼지막한 전철을 봐서 그런가, 전철 구경만 해도 여행 가는 사람마냥 설렌다. 생각해보면 전철은 매일매일 누군가의 여행을 책임지는 녀석이 아닌가. 각자 여러 사연을 가지고 이곳저곳을 움직이는, 수많은 사람들을 실어나르는 것이 전철이기에 전철의 풍경에는 참 많은 향들이 묻어나오는 듯하다. 나같이 설레는 사람의 달콤한 향과, 이제 막 퇴근해서 지친 사람의 향과, 많은 사연을 안고 정처없이 전철에 오른 쓸쓸한 향. 내가 기차를 좋아하는 것도 이런 '사람 향'이 느껴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막 도착한 한남역에는 이미 해가 많이 기울고 있었다. 사실 전철 승강장은 구조상 빛이 잘 들지 않는 곳이라 촬영 난이도가 꽤 있는 편이다. 한남역도 디엠시역과 마찬가지로 지상역이라 햇빛이 잘 들어와 다행이었다. 쏟아지는 노을을 배경으로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고, 전철이 오기를 기다리는 스크린도어 창을 한 번 들여다보았다. 행선지를 가리키는 표지판과 열차 선로를 향한 시선은, 이제 곧 열차를 타고 떠날 사람들을 떠올리게 한다. 이제 그들은 어디로 향할까?
떠나는 사람들을 실어나를 열차들이 승강장에 도착한다. 왼쪽은 양평군 용문읍의 용문역으로 떠나는 전철이고, 오른편은 춘천에서 사람들을 싣고 용산으로 가는 ITX-청춘이다. ITX-청춘이라는 특이한 이름도 이름이지만, 국내에서 유일하게 이 층짜리 열차칸을 갖고 있는 녀석이기에 더욱 특별하다. 사실 이번 방학 기간중에 저 열차를 타고 춘천을 갔다올까 싶었는데, 귀찮음과 동시에 날씨같은 여러 요건들이 따라주지 않아 가지 못했다. 언제 한 번 타보려나.
사실 오늘의 목적지는 한남역보다는 바로 옆에 위치한 한남대교였다. 사진 찍으러 간 당시에는 '이번에 한강 다리들을 다 정복해보자'는 원대한 계획이 있었기에 설정한 목적지였다. 이전에 서울 여행을 갔을 때 들렀던 동작대교가 너무 인상깊어 한강 다리들에 올라가기 시작했는데, 동작대교에 비해서 한남대교에서 찍은 사진 결과물들은 영... 좋지 못했다.
한남대교가 한남역에서 접근하기가 생각보다 어려웠다. 골목길로 들어가다가 뜬금없이 네이버 지도가 차도로 뛰어들라고 안내를 해서 깜짝 놀랐다. 지금도 내가 왔던 길이 사람이 다녀도 되는 길인지 의문스럽다. 이리저리 지도를 따라 올라가보니 대교 시작점 옆에는 군사 시설도 있었다. 번호판에 '육'자가 적힌 군용 차량 옆에서 군인들이 수다를 떨고 있었는데, 괜히 군사 시설 옆이라 카메라를 들고 지나가는게 눈치가 좀 보였다.
한강 다리에 올라가면 또 하나 느끼는 것은, 차가 정말 많다. 이 때는 퇴근길이라 각자 집으로 향하는 직장인들의 행렬이 쉴 새 없이 이어졌다. 강변북로와 한남대교에서 쉼 없이 쏟아지는 차들 사이에, 생각보다 풍경이 별로라 방황하는 내 모습이 마치 무인도에 표류하는 사람같이 느껴졌다.
굳이 이 날 한남대교를 갔었던 건 한남대교 바로 밑으로 경의중앙선 선로가 지나갔기 때문이었다. 다리 위에 올라가 밑으로 지나가는 열차들을 찍으면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문제는 내가 너무 늦은 시간에 와버렸다는 것. 해가 거의 다 질 무렵이어서 셔터스피드가 너무 느려졌다. (이 때 바보같게도 ISO를 100으로 고정시켜놔서 셔터 속도가 느려질 수밖에 없었다.) 움직이는 열차들은 결국 저렇게 흔들리게 찍힐 수밖에 없었다. 저 사진들도 아마 편집하다 말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쩝, 이래저래 아쉽다.
결국 건진 것들은 이정도 사진이 되겠다. 이것도 라이트룸으로 오랫동안 만져서 얻어낸 결과물이긴 하지만, 나름대로 잘 나온 것 같다. 좌측 하단은 건물 사이로 보였던 빌라촌을 찍은 것이다. 수많은 가구들이 답답할 정도로 모여있다. 서울은 대체 어떤 곳이기에 저렇게까지 모여 살까. 더 씁쓸하게 하는 것은, 저런 곳이라도 월셋값이 지방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비싸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려는 사람들은 넘쳐난다는 것이다. 서울이라는 타이틀이 주는 값어치가 실로 어마어마하다.
그리고 한남대교 위에서 일어났던 또다른 해프닝이 있다. 위에서 언급한 그 군사 시설을 지나쳐 다리 시작 지점에 다다르니 무슨 공사를 한다며 철제 문으로 인도를 막아놓고 있었다. 그래서 이걸 들어가도 되나, 들어가지 말아야 하나 당황하고 있을 때, 맞은편에서 자전거를 타고 한남대교를 건너오고 계시던 행인과 눈이 마주쳤다. 이상하게도 인도 양 쪽을 다 막아놓지 않아서 건너편에서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것이었다. 문 넘어를 언뜻 보니 공사는 다 끝난걸로 보여 일단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자전거를 탄 그 행인과 동시에 문을 열어버려 서로 당황했다. 더구나 내 행색이 수상하게도 카메라를 목에 메고 있으니 이상하게 생각했는지 잠깐 쳐다보고 가시더라. 하도 저 문이 저렇게 덩그러니 있는 것이 어이가 없어 찍어 봤는데, 작년에 봤던 영화인 「스즈메의 문단속」의 표지에 나오는 문같이 생겼다. 일명 한남대교의 문단속이라고 해야 할까.
아쉬움을 뒤로하고 이제는 집으로 가야 할 시간. 배차 간격이 길어 출퇴근 시간대에는 미어터진다는 경의중앙선을 타고 집으로 향했다.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사람이 생각보다 많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앉아서 가기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 서울 전철들의 애환 아니겠는가. 특히 출사를 다녀오면 적어도 만 보 이상씩은 걸으니 전철에서 서서 가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중간에 상황을 타개해보려 효창공원앞역에서 6호선으로 얼른 갈아타 봤는데, 퇴근길에는 6호선이 오히려 사람이 많았다. 합정역에서 이쪽으로 환승하려 몰려드는 사람들은 여전히 적응이 안 되었다. 그렇게 오늘의 출사는 마무리.
여담으로 지금 글을 쓰고 있는 때가 무려 학교가 개강하고 나서이다. 서울에 있을 때 대부분의 에피소드들을 다 쓸 심산이었는데, 그럼 그렇지 이번에도 귀찮음과 여러 악조건이 맞물려 방대한 양들이 밀려버리고 말았다. 사실 글 쓰는 건 어렵지 않으나, 사진 편집하는 데에 만만치 않은 시간이 들어간다. 당장 오늘 글에 들어간 사진들만 해도 며칠을 편집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얼마가 걸려도 이번엔 끝까지 해본다고 다짐하며 글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