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울산 현대였을까
# 울산의 리틀 훌리건이 되기까지
2014년의 일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지금도 연락하는 초등학교 동창이 축구를 보러가자고 했다. 집에서 시간을 보내거나 친구들과 동네에서 노는 것 외에는 할 것이 마땅치 않았던 시절이었으므로, 친구들과 멀리까지 나가 생전 직접 본 적 없던 축구를 보러 가자는 것은 나에게 좋은 제안이었다. 친구네 엄마 차를 타고 동천체육관 옆의 종합운동장으로 가 그늘이 지는 위층 꼭대기 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던 기억이 난다. 결과는 득점 없이 세 골을 먹힌 울산의 패배. 경기 내용도 골 먹힌 장면 외에는 기억나는 것이 없다. 같이 온 친구놈이 90분 내내 폰으로 쿠키런을 하는 걸 덩달아 구경했던 탓이었다. 근처에 있던 아주머니가 '축구 보러 왔으면 축구를 봐야지 폰 게임을 해서 쓰냐'며 우리에게 잔소리를 하실 정도였다. 그렇게 쿠키런과 처참한 경기 내용의 여파로 내 첫 번째 축구 직관은 그다지 흥미있는 경험으로 다가오진 않았다.
내가 다시 축구를 보기 시작한 건 2016년도 초의 이야기다. 이 때도 초등학교 친구들을 따라갔었다. 원래 울산상고 잔디구장에서 이따금씩 공을 같이 차던 녀석들이었는데, 언젠가 대뜸 축구를 같이 보러 가자고 했다. 그게 16년도 홈 개막전, 어려운 상대였던 전북과의 경기였다. 좌석이 파란색으로 교체되기 전이었으므로, 일반석의 낡은 의자에서 친구 한 명과 함께 경기를 봤다. 그 때의 직관 경험은 14년도의 그 때와 많이 달랐다. 사람이 꽤 많았고, 선수들이 눈앞에서 보이니 경기가 박진감 넘쳤다. 아직도 이정협의 옆그물을 가른 슈팅을 골로 착각하고 나와 주변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던 게 생생하다.
당시 나와 동석했던 친구 한 명 외에 경기장에 같이 왔던 친구가 더 있었다. 동석한 그 친구가 말해주기를 이 친구들은 S석, 즉 서포터석에 가있다고 했다. 나는 문수구장이 처음이니 나를 생각해서 일반석으로 왔다고 덧붙였다. 원래는 경기장에 오면 항상 S석으로 간다는 친구의 말 이후로 나는 S석에 발을 들이게 된다.
진성 울산 훌리건의 싹을 틔운 것은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 16년도부터의 시간들
이제는 흐려진 기억 속에서 울산 현대를 기억해내는 방법은 단연 그들의 경기로부터일 것이다. 16년도 개막전 한 경기에 축구 맛이 들려 이번에는 내가 친구를 이끌고 찾아갔던 4월의 전남전. 비가 오는 날이라 E석 위쪽에 자리를 잡고 봤었다. 우리 뒤에 앉아계셨던 부부가 그때 당시 내가 잘 몰랐던 울산 응원가를 열심히 부르셨는데, 나는 눈으로는 경기를 보면서도 한쪽 귀로는 부부의 응원가를 들으며 노래를 익히려고 입으로 조그맣게 따라부르기도 했다. 크로아티아 출신 공격수 코바가 두 골을 몰아치며 승리했고 그가 세리머니로 보여준 무릎 슬라이딩이 그렇게 짜릿할 수가 없었다.
직접 보러 가진 않았지만 하이라이트를 몇 번씩이나 돌려봤을 정도로 기가 막혔던 경기도 있었다. 16년 7월 수원과의 홈 경기였다. 이 경기의 소식을 초등학교 하굣길에서 들었던 기억이 난다. 친구가 저번에 울산 경기 봤냐며 흥분하길래 아마 집에 돌아가서 경기를 다시 봤지 싶다. 보니까 추가시간에 두 골을 넣었던 것이다. 후반 추가시간 2분에 코바가 올린 크로스를 이재성이 헤더로 마무리하며 동점, 마지막 하나는 새로운 외인이었던 멘디가 만들어냈다. 기니비사우 출신의 프레데릭 멘디. 16년도 여름 이적시장을 통해 포르투갈에서 건너온 멘디는 이 경기를 통해 데뷔했다. 이번에도 코바가 올린 크로스가 수비수 한 명을 달고 있던 멘디의 머리로 넘어오면서 헤더. 그대로 오른쪽 구석으로 빨려들어갔다. 당시 극장골이라는 개념을 몰랐던 나에게는 이것 역시 새로운 충격이었다. 경기가 이렇게 극적일 수도 있구나.
# 2017년과 FA컵 트로피
2017년은 김도훈의 해로 기억된다. 극단적인 수비축구로 욕을 많이 먹었던 윤정환을 뒤로하고 새로운 감독으로 인천과 이별한 김도훈 감독을 데려온 것이다. 김도훈 감독의 첫 해는 FA컵 우승이라는 큰 타이틀 덕분에 나에게는 특히 감명깊다. 물론 32강에서 춘천시민축구단, 4강에서 목포시청을 만나는 등 대진운이 따라준 것도 한몫했지만, 그동안 FA컵 우승은 커녕 결승에도 몇 번 들지 못했던 울산의 역사를 생각해보면 FA컵 결승까지 와 이렇게 결실을 맺은 것은 그야말로 경사였다. 당시 울산 팬 2년차였던 나로서는 실감이 잘 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FA컵 경기는 주중에 열리니 보러 갈 기회가 없었던 데다가 예나 지금이나 중계도 미비해서 언제 어떻게 이겼는지를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갑자기 결승에 올라왔다는 소식을 들었고 당시 학교에서 사진부 활동을 하는 김에 사놨던 카메라를 들고 경기장으로 향했다.
경기는 0대 0으로 끝났지만 1차전을 1대 2로 끝낸 덕분에 우승을 확정지을 수 있었다. 당시 나는 '우승', 혹은 '1등'이라는 키워드와는 거리가 있는 사람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체육대회조차 1학년부터 5학년까지 한 번도 우승해본 적이 없었고, 하물며 공부를 곧잘 했던 중학교 시절에도 전교 1등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내가 응원하는 팀이 우승했다니. 신기하면서도 묘한 감정이 들었다. 나도 우승이란 걸 맛보는구나. 우승한 자만이 맛볼 수 있다는 은근한 기쁨과 함께 밀려오는 시원섭섭함. 창단 34년만의 첫 FA컵 우승이라는 역사와, 이후 6년이 지나도록 FA컵 트로피를 다시 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당시를 좀 더 즐길 수 있었어야 했다는 생각도 든다. 저 경기에서 골이 나오지 않았으므로 내가 친구 녀석을 데리고 부산 원정을 갔더라면 좀 더 재미있었을까, 싶기도 하다. 그러나 원정을 다니게 된 건 이때 이후로 5년 하고도 4개월 이후의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이 때는 신기하게도 S석에 남아있던 사람들이 시큐리티의 협조를 받아 경기장으로 들어가볼 수 있었다. 그 때도 별 생각 없이 서포터석에 남아있었는데, 사람들을 따라 앞쪽으로 내려가다 보니 엉겁결에 경기장 안으로 들어갈 기회를 얻었다. 설레는 마음에 친구와 캭캭거리며 정신없이 셔터를 누르니 사진들이 다 흔들려 있더라. 사람들에 휩쓸려서 시상대 앞에서 사진도 찍었는데, 이건 신기하게 공식 홈페이지에 가니 없었다. 찍힐 때 당시의 사진이 밑에 있는데, 이제 보니까 사진기자가 찍은 게 아니라 개인 폰으로 찍은 거여서 그런가 보다. 구글을 더 뒤져보면 찾을 수 있을까.
# 거짓말같았던 2019년, 그리고 3년의 시간
2019년은 울산 팬들과 나에게 모두 암울한 해로 기억될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 2019년은 개인적으로 많이 방황한 해였다. 3년을 준비했던 과고 면접에 1차만에 떨어진 나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 때가 10월 중순. 2개월이 채 지나지 않은 날, 울산은 거짓말같이 그 해 리그 우승에 실패했다. 나는 아직도 그 경기 전날 친구와 했던 대화를 잊지 못한다. '야, 이번엔 우승하겠지?' '이번엔 우승해야지.' 그 친구와 나눈 대화는 그게 마지막이었다. 비 내리는 종합운동장에서 그 날 경기를 찾았던 팬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13년도의 그 날이 유튜브에 뜰 때마다 욕을 하며 '관심 없음' 버튼을 눌렀던 나를 생각해보면, 만일 내가 19년도의 그 날에 종합운동장에 있었다면 그 친구와 함께 펑펑 울지 않았을까. 한창 타들어가던 중학생의 멘탈에 기름을 붓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때 현장에 없었으므로 그 감정을 백 퍼센트 알지 못한다는 것이 다른 느낌으로 화가나기도 한다.
그 날은 12월 1일이었다. 12월의 첫째 날, 2013년 12월의 첫째 날 리그 1위였던 울산은 리그 2위인 포항을 리그 마지막 경기의 상대로 맞는다. 비기기만 해도 우승이었던 그 날에는 0대 0으로 끝나가던 후반 추가시간 김원일의 극장골로 문수구장에서 포항에게 우승컵을 내주고 만다. 그 때 흘렸던 눈물을 비웃기라도 하듯 정확히 육 년 후, 2019년 12월의 첫째 날 울산은 거짓말같이 다시 포항을 만난다. 리그 2위였던 전북과의 승점 차는 3점 차. 이번에도 비기기만 해도 우승이었던 그 날 후반전에만 거짓말같이 세 골을 얻어맞으며 1대 4로 참패한다. 돌아온 울산 성골 유스이자 프랜차이즈였던 김승규는 그 날 거짓말같이 상대에게 스로인 미스를 날리며 한 골을 잃는 데에 일조하고 만다.
모든 게 거짓말같았던 2019년.
그러나 우리에게 거짓말은 아직 끝나지 않는다. 여차저차 현대청운고 입시에 성공하고 입학을 준비하고 있던 2019년의 겨울, 거짓말같이 코로나19가 창궐한다. 학교에도, 바깥에도 나가지 못하길 수 개월, 해외로 수학여행을 갈 수 있겠다는 내 바람은 물거품이 된 채 겨우 들어간 학교에서 나는 3년을 갇히게 된다. 인터넷으로나마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뤄냈다는 소식을 듣고, 그 해에도 리그 우승에 실패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 다음 해에도 리그 우승에 실패했다는 소식을 들으며 2022년.
그 해에도 별다를 건 없었다. 연초부터 듣기 시작한 인강이 나에겐 맞지 않다는 사실도 모른 채 결국 진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번아웃이 와 수능을 반 포기했다는 것, 그래서 그때는 꽤 자주 울산의 경기 결과를 챙겨봤다는 것 정도. 수능을 한 달여 앞둔 2022년 10월 8일은 엄마가 주말을 맞아 학교로 오셨던 날이었고, 전북과의 현대가더비가 있던 날이었다. 한 골을 먹혀있길래 에라이 했다. 그럼 그렇지. 이번엔 우승하겠지, 이번엔 우승하겠지 했던게 삼 년이라 이제는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전북에게 따라잡히는 것 아니냐는 잡념을 시작하기 전에 가족들과의 식사에 집중했다. 아마 식후에 디저트를 먹으러 남목삼거리 근처의 카페에 들렀을 때일 것이다. 미련을 차마 떨쳐내지 못했는지 폰을 들어 경기 결과를 확인하기를 잠시.
마틴 아담 (90+6')
마틴 아담 (90+9')
2대 1, 울산의 승리. 엄마와 동생을 보내고 학교 자습실로 곧장 돌아온 나는 바로 하이라이트를 틀었다. 입을 틀어막고 와 소리 내기를 몇번. 눈물이 났다. 좀처럼 무너지지 않던 전북이라는 벽이 전례없는 극장골 두 골로 드디어 허물어졌기 때문도 있지만, 나를 더 울컥하게 한 건 영상에서도 절절하게 들려오는 울산 팬들의 함성소리였다. 함성에는 한이 맺혀 있었다. 13년도의 슬픔 한 줌, 19년도의 서러움 한 줌, 20년도의 한숨 한 줌, 21년도의 체념 한 줌과 지난 17년동안 쌓여왔던 리그 우승에 대한 간절함이 모인 한이었다. 그러나 17년만의 우승이 이젠 헛된 말이 아닌 것이다. 중학교 시절의 시작에서 지켜봤던 우승 이후 5년, 힘들었던 고등학교 시절의 끝자락에서 다시 울산은 내게 17년만의 우승을 말해주고 있었다.
EP 02에서 계속됩니다.
사진 출처 : 울산 HD FC 공식 홈페이지, 연합뉴스, OSEN 및 본인 촬영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