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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귬기 Jan 24. 2024

귀하신 내 결혼식에 누추한 네가?

그 신부의 하객은 왜 다섯 뿐이었을까.

    20대 후반쯤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매년 반복 중인 나의 봄가을 시즌 첫 루틴이 있다. 바로 '뜬금없는 결혼 소식 전달받기'. 이건 비단 나뿐만 아니라 결혼 적령기에 놓인 그 누구에게든 흔히 일어나는 일일 터인데, 온오프라인 그 어디에서든 "예상 하객 수가 너무 적은데 이런이런 사람에게도 청첩장을 주어야 할까요?" 하는 식의 고민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고 또 꽤 유의미한 확률로 남의 예식날 "하객 수가 왜 이렇게 적냐"며 뒤에서 수군거리는 무리가 끼어있곤 하니 사실 나도 남들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현상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었다. 또 학창 시절 나를 따돌리는 데에 앞장섰던 아이 중 하나가 정말로 뜬금없이 청첩장을 보내며 지난 일에 대한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놓는 것을 들어주었던 어느 날에는, '얼마나 부를 사람이 없었으면 나한테까지 연락했을까' 하는 데에까지 생각이 미치니 그 입장이 이해됨을 넘어서 참 서글퍼지기까지 하는 것이었다. 언제부터 결혼식이 이렇게까지 타인의 시선에 절절매는 행사가 되어버린 것일까? 하지만 그런 의문은 참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의 신랑과 결혼 준비를 시작하게 되었던 22년도의 내 머리 위에 고스란히 같은 모양새의 굴레로 덧입혀지게 되었다.


웨딩홀과 계약을 하게 되면 1차로는 대략적인 하객 수를 예상하여 보증 인원을 설정하지만, 예식 일자가 다가옴에 따라 대개 한 번은 더 정확한 하객 수를 체크하여 웨딩홀 측으로 전달하게 된다. 따라서 굵직한 준비 과정을 지나고 나면 자연스럽게 예식에 초대할 하객의 리스트를 만들어보는 때가 오고, 나의 고민도 결혼을 앞둔 여느 누구와 다를 것 없이 이 시기에 시작되었다. 내가 알고 지내던 사람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가깝고 편하게 느껴지는 순서대로 차례차례 이름을 적어 보았다. 진심으로 대할 수 있는 친구는 몇 안 되어도 그냥 눈 딱 감고 초대하자면 할 수는 있겠다 싶은 인원이 기십은 되었다. 하지만 초대하기가 썩 내키지 않는 내 마음과 마찬가지로 이 기십의 인원 중 대다수도 내 초대에 응하기가 썩 내키지 않으리라는 점은 불을 보듯 뻔하였다. 하객 수가 적을 때 그것을 바라보는 남들의 시선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그것을 해소하기 위해 하객 알바라도 써가며 어떻게든 자리를 채워보려던 결혼 선배들의 초조함이 다양한 루트로 학습된 상태였던 나는, 이즈음에서 결국 그들과 다를 바 없이 두렵고 초조한 상태가 되고 말았다. 단순히 '친한 사람이 적어서'라는 이유뿐만이 아닌, 좋고 싫음이 확실한 본래 나의 성격상으론 완전히 마음 편한 관계가 아닌 사람들까지 굳이 초대할 일이 애초에는 없었을 텐데도 이제는 그걸 견뎌야만 한다는 큰 과제가 추가되었다는 이유에서 더욱 가슴이 답답할 수밖에 없었던 것. 그런 상태로 꾸역꾸역 청첩장 전달을 위한 약속을 달력에 하나씩 채워 넣으며 죄인처럼 첫 모임 날짜를 무거운 마음으로 기다리던 어느 날이었다.


당시 나에게는 관계가 상당히 뒤틀어진 친구가 하나 있었다. 오래된 친구였지만 대학 및 사회생활을 거치며 워낙 다른 길을 걸어오다 보니 삶의 온도 차가 너무나도 벌어진 데다, 충돌을 해결하는 데에 있어 '입장을 이해하고 이견을 조율하는' 방식을 선호하는 나와 달리 '싸우며 격한 감정을 공유한 후 그 후회를 기반으로 돈독해지는' 방식을 선호하는 그 친구 사이에는 근본적으로 아주 큰 벽이 존재했다. 게다가 결혼과 출산에 다소 회의적이었으나 연애만큼은 누구보다도 열심히 해오고 결국 어렵게 결혼을 결심한 나와는 반대로, 그 친구는 결혼과 출산을 강렬하게 희망함에도 제대로 연애를 해본 일이 없는 일명 '모태솔로'라는 면에서 더더욱 서로에게 공감할 포인트가 남지 않게 되고 만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결혼을 앞둔 나의 신경을 자꾸만 살살 긁던 그 친구는 기어코 악담을 쏟아내기에 이르렀다. 그러면서도 "네 결혼식이 기다려진다", "청첩장이 나오면 꼭 가장 먼저 달라"며 참석 의사를 적극적으로 어필하였는데, 어느 날 문득 그런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갑자기 어찌나 정신이 퍼뜩 들던지. 나를 '신부님'이라 부르며 꼬드기는 수많은 업체가 늘 한입처럼 말해오던 그 '한 번뿐인 결혼식'에 굳이 이런 사람까지 초대해야 한다고? '귀하신 내 결혼식에 누추한 네가' 함께하는 상상을 하니 견딜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그깟 하객 수가 뭐길래 주인공인 내가 이렇게까지 전전긍긍해야 한단 말인가? 당연히 다른 관계들은 끽해야 서로 데면데면한 수준일 뿐 그 어느 관계도 이 친구와의 그것처럼 극단적이지는 않았지만, 아무튼 그날의 깨달음을 계기로, 초대하기에는 어딘가 마음 한구석이 불편한 모든 사람들에 대하여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렇게 나의 하객 리스트는 쥐어짜고 쥐어짠 78명의 이름을 무겁게 담고 있던 리스트에서 단 5명의 이름만을 담은 가볍고 날씬한 리스트로 새로이 거듭났다.


불편할 뻔했던 청첩장 모임은 단순히 결혼을 앞두고 기분 좋게 한턱내는 자리가 되었고, 대부분의 지인들에게는 우리의 결혼식에 대해 '친지 및 부모님 지인들 위주로 초대하는 작은 행사' 정도로 일러두었다. 굳이 축의금 회수를 위해 여기저기에 계좌를 돌리지도 않았으며, 그래서 오히려 축하 메시지들이 빚처럼 느껴지지 않을 수 있었던 듯도 하다. 결혼식 당일엔 내가 꼭 초대하고 싶었던 다섯 명의 친구와만 함께 하였고, 덕분에 예식 자체가 부담이 아닌 '온전한 나의 날'로 느껴졌기에 더더욱 즐겁게 다가왔다. (물론 어느 집에나 얄미운 친척 한둘은 꼭 있게 마련이라 역시나 하객 수를 꼬투리 잡아 뒤에서 험담을 나누었다고는 하지만, 그 외의 부모님 지인들은 오히려 "딸내미가 실속 있고 야무지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는 후문에 내심 뿌듯하기도 하였다.) 처음 하객 리스트를 작성하며 내가 느꼈던 두려움과 초조함은 결국 내 것이 아닌 감정이었던 셈이다.


내 하객이 딱 다섯 명이었던 결혼식에 대한 이야기는 당시 활동하던 웨딩 카페, 그리고 운영 중인 블로그 채널에도 간략하게나마 공유한 일이 있었다. 지금까지도 간간이 발생하는 유입을 통하여 이따금 '후회하지 않느냐' 등의 질문을 받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자랑스럽게 대답을 건넨다. "진심으로 축하해 줄 사람들로만 채워서 더욱 빛났던 날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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