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수한 맛이 뭔가요
통알곡 보리차를 한 봉지 사보았다. 뒷면에 조리법을 보니 보리 20그램에 물 4리터라길래 우선 1리터만 끓여 작은 보온병 두 개에 담았다. 따뜻하게도 마시고 맹물이랑 섞어서 미지근하게도 마셨다. 얼마 만에 마시는 보리차람. 내가 마실 보리차를 직접 끓인 건 아마 이번이 처음일 게다. 어릴 땐 구멍이 뽕뽕 뚫린 체망에 보리알을 채워 넣고 큼직한 휘슬러 냄비 한가득 물을 담아 보리차를 끓이는, 그리고 식힌 보리차가 담긴 델몽트 유리병이 냉장고에 나란히 늘어서 있는 게 당연한 풍경이었지만. 다른 한국적인 것과 마찬가지로 보리차는 일용품보다는 사치품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바로 그만큼 깊이 음미하게 되는 보리차의 구수한 맛. (하루 만에 다 마셔버리겠지만 좋군요.)
서울을 처음 방문한 남편에게 보리차는 한 입 마셔본 것으로 족한 음료였다. 음료는 차갑든 (탄산음료나 스쿼시) 뜨겁든 (홍차, 핫초코) 단 맛의 스펙트럼만 장착한 사람에게 구수한 음료는 상당히 충격적인, 벌칙 음료 같은 느낌이었으리라. 혀도 뭘 맛보고 살았는지에 따라, 혀의 경험치에 따라 받아들이고 즐길 수 있는 맛의 범위와 경험하는 맛이 다를 수밖에 없으니까. 그때는 미처 떠오르지 않았던 생각인데, 오늘 보리차 마시다 말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무얼 보고 듣고 읽고 생각하고 배우고 겪는가로 한 사람의 속 세계가 형성되는 건 다들 너무나도 잘 아는 사실이지만, 감각도 그렇다는 걸 가끔 잊는다. 감각을 따질 땐 타고난 기본값을 더 중요히 여길 수밖에 없어서 그런 걸까?
물론 어떤 맛을 즐길 수 있나 없나 너머에는 나라마다 다른 식문화의 틀이 씌워질 수밖에 없다. 문화의 차이란 아주 간단히 말해 짭짤한 (메인 요리, savoury) 거 먹고 단 거 (후식, sweet) 먹어야지 단 걸 먼저 먹다니 이 무슨 혼돈의 카오스야!!! 하는 무리랑 단짠단짠은 쩝쩝 박사의 훌륭한 공식이라 여기는 무리가 서로 '왜 저래 정말' 하는 거니까. 서로 가르치려 하지 말고 존중하면서 조화롭게 공존하는 게 제일이다. 내 상식에도 달콤한 계란말이란 말은 모순이지만 기회가 되면 먹어볼 생각이다. 상상만으로는 알 수 없는 뭔가가 분명 있을 테니까. 이건 정말 아니다 싶은 것도 우선은 먹어보고 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