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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씨 Aug 06. 2024

짐을 정리하는 마음

덤을 줄이는 인생

우리 부부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약 30분 되는 거리를 함께 걷는다. 걸으며 오로지 대화하는 이 시간을 나는 무척 좋아한다. 지난 주말, 문득 떠오른 질문을 해봤다.

-정리하는 게 괴로워?

-정리는 나쁜 일이 있을 때 하는 거니까.

이렇게 나는 신랑에게 '정리=상실, 이별, 분리'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랑 하는 물건 정리는 공간이 생기는 건 좋지만 따분하고 재미없단다. (정리랑 재미없단 말이 어떻게 한 문장에 공존하지???) 뼛속까지 정리형 인간인 나는 정리를 하면 머리가 맑아지고 스트레스가 풀리고 숨통이 트이고 기분이 좋은데, 새삼 사람의 마음이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그 전날 부모님 댁에 가서 정리하시는 걸 좀 돕고 왔다. 정리를 힘들어하시고 무척 싫어하시는 부모님께선 짐을 싸고 정리를 해야 할 이유가 없으면 정리를 안 하고 사신다. 마지막으로 물건 정리를 하신 게 십여 년 전 이사하실 때였는데, 이때도 이사하는 날은 정해져 있는데 짐을 안 싸고 계셔서 2주 동안 몸을 불사르며 짐을 싸드렸던 아픈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하기도 하지만, 부모님의 위기감을 높이높이 드높여야 한다는 분명한 방문 목적이 있었다. 사람은 늘 오늘 하루가 인생에서 가장 젊은 날이다, 그러니 오늘 많이 해야 한다, 지금 잘해놔야 편하다, 하루에 2시간씩만 무리하지 말고 하시라, 이런 식으로 독려(?) 한 후 그나마 쉽게 정리할 수 있는 두어 곳을 같이 정리했다.

-사진은 어떡해?

-가족사진은 두셔야지.

-(엄마가 모으시는 작은 도자기 장식을 정리한 후) 음반도 다 샥 치울까?

-어머니, 아빠 시디랑 스테레오는 절-대 건드리지 마셔. 아빠 건 왜 다 버릴라 해.

-(가구 정리하는 이야기를 하던 중) 테레비도 버려야지?

-(아빠와 나 한 목소리로) 테레비는 왜 버려요.

처음엔 죽는 연습 하는 거지 뭐!라는 말도 안 되는 말을 자꾸 반복하시던 엄마는 부엌 찬장 두 칸을 치우고 나서는 이틀이면 다 하겠다! 고 호탕해지신다. 호탕한 본인 말씀을 너무 신봉하시는 거 같아 이건 시작도 아니라고, 맘 단디 먹으시고 다음 주에 이거저거는 꼭 좀 하시라고 (나로서는 해야 할 일이라 하는)(아마도 귓등에서 미끄러지고 말았을) 신신당부를 했다. 피곤하다고 엄마는 누우시고 나도 체력이 달려서 하던 정리를 마무리한 후엔 집에 와 뻗었다. 체력도 집중력도 옛날 생각하면 안 된다니깐.
 


엄마의 언니가 돌아가신 지도 이제 오래되었다. 장례식 다녀오신 엄마는 사촌언니들이 이모 입으시던 옷을 가져가시라고 했다며 근처 친척들보단 멀리 사는 이모가 가져가는 게 맘이 편했을 거라 하셨다.

-사람이 가면 입던 옷도 그렇게 다 뿔뿔이 흩어지구... 그렇더라.

-그러니까 자식들 생각해서 정리는 할 수 있을 때 많이 하는 게 좋은 거 같애.

-그러게.

그러니 신랑 말이 맞긴 하다. 정리는 떠남과 이별의 순서 중 하나였을 거다. 옛날엔 지금처럼 소지품이 많지 않았을 테고 물건을 버리는 일도 없었을 테니까. 정리도, 정리를 해야 할 이유가 생긴 것도, 다 현대사회의 부산물이겠지. 스웨덴식 죽음 청소법도 처음 이야기를 들었을 땐 나도 저런 마음가짐으로 정리에 정진해야겠단 생각만 들었는데 요즘엔 앉은자리 흔적조차 남김없이 너무 싹 다 정리를 해버리면... 그것도 남겨진 사람들은 또 서글플 거 같단 생각이 든다. 있었으면 있었던 티가 나야지.


아빠랑 책이 두 겹으로 쌓인 7단 책꽂이를 정리하다가 (이건 그날 다 끝냈다!) 영어공부 책을 하나 훌훌 털었더니 엄마가 메모하신 이면지 종이쪽지가 낙엽처럼 떨어졌다. 언제 공부하신 건지도 알 수 없지만 늘 뭔가를 열심히 공부하시엄마답다. 엄마, 공책이랑 기록하신 건 뭐든 버리지 말고 모아두셔,라고 나중에 통화할 때 말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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