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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씨 Aug 03. 2024

광고일 두 번째 단추

어쩌다 이런 일

최대 규모의 글로벌 광고 대행사, 하면 떠오르는 이름이 네 개로 통일된 지도 20년이 넘은 거 같다: 광고계의 빅 4인 옴니콤, IPG, WPP, 퍼블리시스.

각 그룹마다 산하에 숱한 에이전시들이 또 종류별로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도 있고, 미디어 에이전시도 있고, 프로덕션 에이전시, PR 에이전시, 마켓 리서치 등등...) 다 있고, 그 목록에는 아는 사람만 알 transcreation 에이전시도 꼭 껴있다.


옴니콤은 마더텅이랑 카인&에이블(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 아담&이브의 인하우스 언어 에이전시)이 있고, IPG는  크래프트가 있다. WPP는 요즘 AI 쪽으로도 발을 뻗는 프로덕션 에이전시 호가스에서 E2E로 언어 쪽 업무도 다 하고, 퍼블리시스는 퍼블리시스 그룹 브랜드 내에서 언어 관련 업무를 담당한다.  빅 4는 아니지만 최근 덴츠 쪽에서 태그를 인수하기도 했으니 (비록 아는 사람들만 알지만) 광고 관련 카피 번역/언어 및 문화 쪽 일은 좀처럼 숨 돌릴 틈이 없다. (물론 이 또한 언제 과거형으로 변할지 모른다. 광고계에 AI라는 변화의 물결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으니.)




한 1년 정도 번역 프로젝트 매니저로 일하다 보니 프로덕션과 본격적 포스트 프로덕션 사이의 다리 역할만 하는 건 업무 영역도 비좁고 배움의 한계가 있다 느껴져 슬슬 이직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IT계열 딱딱한 일을 많이 맡았지만 (길디 긴 화이트페이퍼를 12개국 언어로 번역하기라던가...) 나중에는 코**라 서유럽 캠페인을 맡으면서 기본 업무도 좀 더 재미있고 복잡해졌고, 에이전시 피칭 준비에도 몇 번 참여하며 경험을 쌓았다... 

쌓았고...

쌓았지만...!


단어 하나 하나와 문자적 디테일에 집요하게 파고들어야 한다는 점과 아무리 파고들어 카피를 완성해 봤자 그다음 단계, 즉 정작 광고에 언어를 접목하는 프로덕션 단계에선 내 의사가 거의 반영되지 않는다는 점이 (언어적 중요성을 고려하지 않는 팀과 일을 하게 될 때면 카피 품질보다 시간과 비용이 효율적인 걸 우선하는 경우가 생기는 등등) 갈수록 풀리지 않는 빡빡한 매듭으로 마음에 자리 잡았다.


재미있는 사람도 많고 재미있는 해프닝도 많은 회사였지만 (생일마다 서로 카드도 만들어주고 선물도 주며 떠들썩하게 축하를 주고받는 게 당연했고, 다양한 배경과 성격의 사람들이 섞여있어 이래저래 시트콤 같은 일이 잦았다. 어째 고등학생 시절 생겼어야 할 것 같은 추억이 많이 생겼다) 회사 안과 밖의 인간관계가 너무 겹치다 보니 생활과 일을 잘 분리하고 싶어졌다.




이직을 생각만 하고 있던 내게 회사 친구 한 명이 어디 어디서 면접을 보고 오퍼를 받긴 했는데 자긴 여기 좀 더 남을 생각이다, 혹시 관심이 있느냐는 말을 꺼냈다. (이 친구는 나중에 그 회사로 이직을 했고, 또 몇 년 후엔 나보다 먼저 지금 우리가 다니는 회사에 들어가서 나를 또 스카우트했다. 여러모로 고마운 친구.)


인사팀 사람, 그리고 팀장, 이렇게 두 명의 면접관과 순서대로 일대일 면접을 봤는데 인사팀 사람과의 첫 면접에서 상당한 정신적 타격을 입었다. (당시 나는 그냥 일만 열심히 하는 사람이었고 자기를 드러내는 방식이나 자신감이 한없이 부족했던 상태였고, 그분의 메스처럼 예리한 질문에 속이 홀랑 까발려진 듯한 느낌이 들어 감정적으로 힘들었지만, 신기하게도 괴롭단 느낌과 동시에 지금의 나에겐 이런 찬물 세례 같은 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론적으로는 오퍼를 받았고 수락을 했고, 다니던 회사에 노티스를 냈다. 정상 근무 2주를 잘 마친 다음 2주 휴가를 가졌고, 그러고 나서 새 회사에 입사했다.


두 번째 광고 일은 어카운트 매니지먼트. 어떤 어카운트(고객님)를 맡느냐에 따라 업무의 형태가 달라지는데, 나는 글로벌 브랜드 하나를 서비스하는 팀에 들어가서 그쪽 프로젝트를 주 업무로 삼게 되었다.


고객님의 필요에 따라 개별적으로 들어오는 일을 하는 게 아니라, 1년 동안 출하(?)할 글로벌 광고 캠페인을 두루두루 관리하며 EMEA (유럽,중동, 아프리카) 각국마다 각기 다른 방영 예산과 시기에 맞춰 광고를 착착 로컬라이징해서 내보내는, 꾸준히 이어지는 일이었다.


이런 경우엔 고객님 전속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에서 영어 광고를 (미국용과 영국용을 따로 만든다) 초판으로 제작해 방송사 측에 전달까지 끝낸다. 그리곤 우리 측에 파일을 모두 보내주는데, 소위 '마스터 핸드오버'라 부르는 이 단계 다음부터는 우리가 아카이빙과 로컬라이징을 전담하게 된다.


간단히 써보자면 이런 식이다.


한 해 마케팅 예산이 결정되면 브랜드 마케팅팀이 내년 광고 캠페인을 기획한다. (광고는 결국 상품을 위한 것인데, 전 세계에 동시에 신상품이 풀리는 경우는 은근히 드물다. 아이폰이 그중 하나고, 자동차 신형  모델이라면 가끔 그러기도 하지만 일상용품, 생필품 같은 경우는 차근차근 풀리기 때문에 그나마 단계별로 해치울 수 있다. 물론  코카콜라의 크리스마스 캠페인 같은 건 좀 다른 경우.)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에게 브리핑을 한다. (전속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가 없는 경우에는  피칭으로 에이전시를 발탁하고, 있는 경우엔 그쪽에서 피칭을 한다.)

아이디어가 정해지면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 쪽에서 외주 에이전시와 협업하며 광고 제작을 한다. (스크립트 캐스팅 로케이션 승인받고... 촬영 스케줄 정하고... 큰 회사일 수록 승인할 사람이 많아서 아이디어가 바뀌기도 하고 스케줄이 미뤄지거나 앞당겨지기도 하고... 아이디어가 뒤집히기도 하고...)

큰 회사일 경우 광고를 내보낼 채널은 1년 전에 이미 사재기를 해놓은 상태. (이런 건 글로벌 팀에서 다 사주는 경우가 많은 거 같다.) 광고 제작하는 동안 미디어 에이전시에선 언제 어떤 광고를 어느 나라에 내보낼지 플래닝을 해놓는다.

우리 쪽도 그 사이 고객님에게 올해는 유럽 XX국에 이러저러한 캠페인이 나갈 거라는 정보를 받은 걸 토대로 로드맵을 만들고 예산 보내서 승인을 받는다. 프로젝트 당 깨작깨작 인보이싱하면 피차 힘드니 한 해 로드맵 총액 PO를 받는다. (이러면 프로젝트 하나 끝날 때마다 PO 넘버 적어서 인보이스 보내면 된다. 물론 이것도 딱 들어맞는 일은 없으므로 연말엔 숫자랑 씨름을 해야 하지만.)

협업이 잘 되는 경우는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에서 콘셉트 단계 때 우리 측에 언질을 주고 로컬라이징 측면에서 문제점이 있을지를 논의한다. 예를 들어 주방 청소용 스프레이 광고라면 나라/지역마다 스프레이의 포장이나 용기의 모양이 다를 수 있는데, 이걸 어떻게 찍느냐에 따라 우리 쪽에서 이걸 다 트래킹 해서 포장지 라벨을 싹 다 바꿔야 할 수 있으니 스토리보드 단계에서 제품 풀샷은 마지막 장면에만 보여주고 모델이 스프레이를 뿌리는 장면 등 역동적 장면에선 노즐 부분만 보이는 게 더 편하다고 조언을 하며 조정을 할 수 있으면 나중에 편리하다.

여차저차해서 영어판 광고가 잘 완성되면 우리 쪽으로 이게 다 넘어온다. 고화질 HD 동영상으로 가장 긴 컷 (60초)부터 소셜에서 쓸 짧은 컷 (5초), 프로젝트 파일, 라이센싱 정보 (사운드트랙정보와 사용 기한, 각 장면마다 등장하는 배우 정보와 사용 기한 등), 대본 등, 또 배너라면 포토샵 파일과 HTML5 파일 등...인데 이게 또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에서 다 만드는 게 아니라 외주를 주기 때문에 포스트 프로덕션 에이전시, 그래픽 에이전시, 애니메이션 하우스, 오디오 하우스 등에서 각 요소를 모아 모아 보내주는 지라 으레 이거 저거 빠져있는 경우가 많다. 체크리스트 꺼내놓고 와야 할 게 다 왔는지 확인해 놓는 게 좋다. 다 잘 받았으면 동영상 관련 파일은 QA 팀에 보내서 한 번 더 체크하고 배너 파일도 디지털 QA 팀에 보내본다.

여기까지 오는 길이 길다... 파일 잘 받았고 로드맵이 어느 정도 정확하며 광고 나가는데 영향을 미칠 큰일이 없는 이상 (코로나 사태라던가) 이제 슬슬 로컬 팀에서 브리핑을 시작한다. 계약상 정해진 기한과 프로세스가 있지만 모종의 이유로 (마스터 파일이 늦게 왔다던가 혹은 갑자기 싸게 TV 에어타임을 사게 됐다던가 또는 그냥 우리에게 정확한 정보가 넘어오지 않았다던가) 급하다며 오는 일도 많다. 여하튼 일이 들어온다.

영어 대본 번역해서 고객님께 승인받으면 이제 본격적으로 로컬라이징 프로덕션 시작이다. 오디오 프로듀서랑 광고 더빙 진행하고 비디오 프로듀서랑 영상적으로 로컬라이징해서 버전 1 고객님께 제출하고 피드백받고 고친 후 비즈니스 어페어 팀으로 보내 슬레이트 넘버 받아 동영상 맨 앞에 슬레이트 넣은 후 미디어 에이전시에게 받은 채널 목록에 따라 슝 보내면 된다. 그리고 POD (배달 확인서) 받은 거 고객님께 보내면 끝!


(여기 따르는 다양한 사무적 기타 등등이 있고 아카이빙이나 인보이싱 같은 이런저런 할 게 많지만 넘어가자.)


브리핑에서 방송 매체로 전달까지 로컬라이징 단계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하며 고객님과 직접 대응하는 일이라 배울 게 많았다. 저번 에이전시와는 달리 사수가 일을 하--도 가르쳐주질 않았고 (나중에 보니 영 가르칠 줄을 모르는 분이었다...) 팀워크는 물론이요 대화도 없이 한없이 바쁘기만 한 팀이어서, 처음 몇 달은 갑작스레 외국 학교에 던져진 초등학생이 몸으로 부딪치며 언어를 배우듯 어찌어찌 일을 배웠다. 나중엔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지만 돌이켜보면 팀원들 중 끈끈한 파트너 관계인 사람들이 생기긴 했어도 전체적으로 건강한 팀은 아니었다.


글로벌 클라이언트, 로컬 클라이언트, 피칭을 통해 고객님의 광고 캠페인을 따낸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와 그들의 외주를 받아 실질적 광고 제작을 하는 크고 작은 프로덕션 하우스나 부티크 에이전시, 그리고 그렇게 제작된 광고의 포스트를 맡는 포스트 프로덕션 하우스와 2D 광고를 제작하는 디자인 에이전시와 디지털 에이전시, 그에 더해 브랜딩 에이전시, 고객님을 대신해 미디어를 구매한 미디어 에이전시, 그리고 빠질 수 없는 (저번 에이전시부터 관계를 이어온 사람들도 몇 있는) 카피 번역 프리랜서들, 그에 더해 영국이나 프랑스의 광고 승인 단체 (영국은 클리어캐스트, 프랑스는 ARPP) 등등의 외부 사람들...

거기다 회사 사람들- 프로듀서, 오디오 프로듀서, 모션 디자이너, 3D 아티스트, 디지털 팀, TV 광고 트래픽킹을 하는 BA팀 등등 다양한 팀, 사람들과 일을 하게 되어 전 직장에서 하던 협업과는 스케일이 달랐다.


많이 배우고 많이 자랐고, 가장 오래 근속한 회사, 하지만 그와 동시에 열정페이로 일한 시간이 너무 길었던 회사였다. 복잡한 프로젝트를 기꺼이 맡고, 일 잘하는 동료 P와 함께 큰 브랜드를 여럿 담당하고, 새로 들어온 (나중에 알고 보니 나와 연봉이 비슷했던) 신입 사원을 가르치고, 피칭 프로젝트를 담당하고, 이게 잘 되면 새로 들어오는 브랜드나 어카운트가 안정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판을 깔고, 그러면서 또 짬짬이 망중한에는 우렁각시처럼 잡무를 하곤 했다. (폴더 분류나 문서가 지저분한 것도 못 참고 틀린 데이터도 못 보는 성격이라 팀원들 모르게 프로젝트 트래커나 팀 폴더 정리를 하는 등등등. 왜 그랬지??) 


일은 끝이 없고 고객님은 만족하는 법이 없었다. 아침 8시 즈음 자리에 앉은 다음엔 그 자세 그대로 오후 4-5시까지 점심도 거르고 죽 일하다가 7시 넘어 퇴근을 하는 나날이 일상이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2리터짜리 큰 물병을 사기 시작했다. 자꾸 물을 마심으로 자리에서 일어나야 할 생물학적 이유를 만드니 그나마 몸이 좀 덜 뻐근했다.


다르게 일했을 수도 있었다. 리더십을 발휘했어도 되는데 회피성인 나는 반대로 갔다. 전혀 만족을 모를 것 같은 고객님은 윗사람들이 출장을 가서 만나면 수씨랑 일하는 게 너무 편하고 좋다고 그렇게 칭찬을 했다는데, 내가 좀 더 전략적이었다면 고객님의 생태를 좀 더 이해하고 파악해서 보다 효율적인 협업을 모색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일의 부담은 덜고 그 대신 좀 더 당당하게 네고를 해서 내 몸값과 가치를 올렸을 수도 있었겠지. 미래에서 돌아본 과거 너무나 선명하고 훤하지만, 미숙했던 그 당시에는 그저 눈앞에 닥친 일을 하느라 급급하고 바빠서 그런 생각을 할 수조차 없었다.




2019년 3월, 여느 때와 다름없던 어느 날. 촉이 좋은 윗분이 오늘부터는 퇴근할 때마다 회사 노트북을 가져가는 게 좋겠다고, 또 사무실 짐도 좀 정리해 놓자고 하셨다. 며칠 후 전국적 록다운이 시작되었고, 사측에서는 집으로 사무실용 의자를 배달해 주었다. 주방과 거실 사이 식탁에 자리를 잡고 일을 했다. 2019년 겨울, 크리스마스가 얼마 남지 않았던 어느 저녁엔 클라이언트와 프로듀서와 함께 동유럽에서 진행 중인 촬영을 원격으로 모니터링하며 하루를 꼬박 보냈다. 2020년 여름, 코로나 사태로 취소되었던 수술을 했다. 2020년 겨울, 슬슬 이직 준비를 시작했다. 2021년 3월, 팀과 원격 작별인사를 하기 앞서 오랜만에 사무실에 가서 사원증을 반납하고 사무실에 남겨둔 짐을 가져왔다. 간 김에 록다운을 앞두고 출산휴가를 갔다가 임원 감축에 휘말려 해고된 동료의 짐도 치웠다. 이래저래 뒤처리를 많이 했던 회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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