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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영 Jun 20. 2024

풍요의 비밀 ​

 혜윰노트/ 글 김혜령 (이화여대 부교수) /  그림  핀터레스트

‘강아지똥’의 저자 권정생 선생은 “옛날에는 농사가 식량을 얻기 위한 것이었다면 지금은 돈을 얻기 위해 상품을 생산하는 일이 되어버렸다”고 한탄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농부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농산물을 생산하는 것이 왜 한탄할 일인지 의아할 것이다.

농업사회에서 농사란 좀 덜 풍요롭더라도 우선은 온 가족이 먹고사는 데 필요한 일 년 치 식량을 마련하는 일이었다. 당연히 한두 개의 작물만으로는 식탁을 채울 수 없기에 농부들은 때를 따라 다양한 작물을 심고 거두기를 반복했다.

그러나 농사가 농산업이 되면서 달라졌다. 과학기술을 등에 업은 종묘사업자들은 큰 이윤을 남기기 쉬운 대규모 단일 작물 경작이 제일이라고 농부들을 ‘계몽’했다. 그러자 농부들은 더 이상 내년 농사를 위해 올해 경작한 작물에서 꽃을 틔우고 씨를 받아 보관해야만 하는 ‘귀찮은’ 채종을 그만두었다. 벌레가 덜 먹고 전염병에도 강하며 열매를 더 크고 많이 맺도록 개량된 씨앗을 쉽게 공급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종묘사업자들은 개량 씨앗을 위해 특별하게 개발된 비료와 농약, 농기구까지 함께 판매하며 엄청난 수익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니 농부가 지불해야 할 일체의 비용을 추수 이후로 미뤄주기도 했다. 하지만 순수한 호의는 아니었다. 그것은 차곡차곡 이자가 붙는 빚이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도시건 농촌이건 가리지 않고 더 큰 이윤을 얻기 위해 빚을 내서라도 투자하는 것이 지혜이자 미덕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농부들은 더 이상 대풍년에도 마냥 기뻐하지 못했다. 풍년은 축복이 아니라 공급과잉을 의미하게 되었고, 농산물 가격 폭락은 더 큰 빚을 지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을 불러일으켰다. 권정생 선생이 한탄했던 것은 심을 때부터 값을 먼저 따지는 약삭빠른 ‘장사꾼’이 되도록 압박받는 현대 농부들의 현실을 염두에 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상품이 된 작물들은 더 좋은 값을 받기 위해 아주 귀한 몸이 되었다. 사과나 배는 벌레가 먹지 않도록 일찌감치 종이에 고이 싸여야 했다. 대규모 고추 텃밭에는 전염병이나 잡초의 피해를 보지 않도록 검은 비닐로 뒤덮는 멀칭(mulching) 작업이 꼼꼼히 이루어지며, 여러 차례 비료와 농약이 뿌려진다. 애호박은 일정한 크기와 매끈한 피부로 수확·유통될 수 있도록 꽃이 떨어지기도 전에 비닐봉지 안에 넣어져 길러진다. 더욱 탐스럽고, 더욱 먹음직스럽게 보여야 더 많은 돈을 받고 팔릴 수 있으므로 농부들은 더욱더 철저하게 작물들을 관리하고 선별한다. 눈이 높아진 도시의 소비자도 그냥 손에 닿는 대로 장바구니에 넣지 않게 되었다. 상처 하나 없이 동그란 과일을 고르고, 균일한 형태의 모양을 갖추지 않은 채소는 관심조차 두지 않는다. 소비자들은 그렇게 완전무결한 상품만을 집으로 가져갈 권리가 있다고 확신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비싼 값에 팔리는 최상품의 농산물만이 대접받는 사회에는 숨겨진 비밀이 있다. 온종일 팔을 올려 작업해야만 하는 과수원에는 인건비를 절감하기 위해 저임금의 노인들이나 외국인 노동자들이 주로 고용된다는 사실이 감춰져 있다. 저비용 농사를 위해 사용된 멀칭 비닐은 거의 썩지 않기 때문에 추수 뒤 아무렇게나 땅속에 매장되거나 드럼통에서 검은 연기로 태워진다는 사실도 마찬가지다. 비닐에 싸인 애호박이 대형 슈퍼마켓 매대를 차지한 뒤로 둥글둥글하고 울퉁불퉁한 토종 애호박이 아예 자취를 감췄다는 사실도 의식하는 이가 많지 않다.

그러나 가장 무서운 사실은 사람이 먹을 것을 돈 버는 상품으로만 취급하게 된 사회에서는 먹는 것에 따라 사람 아래 사람이 나눠진다는 것이다. 무엇을 어떻게 먹느냐는 결국 한 사회가 사람을 어떻게 대하느냐와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이다.



< 요약 >


예전의 농사란 우선 가족이 먹고사는 데 필요한 식량을 마련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농사는 생계유지를 위한 생산 방식의 하나가 되었다. 어릴 적 할머니가 그 해 경작한 작물에서 씨를 받아 보관하거나 이웃과 주고받던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이제는 그런 풍경 대신 종묘상에 가서 구입하면 된다. 벌레도 덜 먹고 전염병에도 강한 개량종자를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농부들은 그에 따른 비용을 추수 이후 지불해도 된다는 호의를 받을 수 있고, 종묘사업자들도 수익을 함께 얻을 수 있으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격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농부들은 마냥 기쁘지 않다. 농사가 잘 되었는데, 풍년이 되었는데도 되려 울쌍이다. 과잉공급으로 가격 폭락을 걱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농부로서의 우직함 대신 장사꾼으로서의 약삭빠름이 꾀한 현실이다. 거기다가 더 좋은 상품으로 만들기 위해 작물들을 일찍부터 귀하게 대접해야 한다. 벌레가 먹지 않도록 종이로 씌우거나 검은 비닐로 덮어두고 보살펴야 한다. 온실 속 화초처럼 농부의 애틋한 보살핌을 받아 작물들은 동그랗고 고와야 한다. 그래야 소비자의 장바구니에 들어갈 수 있으며 더 비싼 가격에 팔릴 수 있는 것이다. 도시의 소비자들은 완전무결한 상품만을 집으로 가져가려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최상품 뒤에는 숨겨진 비밀을 사람들은 얼마나 알고 있을까? 인건비 절감 때문에 파생되는 문제, 멀칭 비닐의 매장과 더불어 그것을 태우면서 발생되는 가스 등이 간과되고 있다. 이런 현실 속에서 더 개탄스러운 일이 있다. 어떤 상품을 선택하여 어떤 것을 먹느냐에 따라 사람의 등급을 구분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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