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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도 Apr 05. 2023

나에게 필요한 건 완전한 휴식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못한 2주가 지났습니다. 담이는 다시 일상을 하나씩 회복하려 합니다. 2주간 참여하지 못한 프로젝트 회의에도 복귀를 하고, 이렇게 저렇게 미룬 약속들도 보상을 하고, 2주간 다 큰 딸래미 밥 해주느라 고생한 엄마에게도 감사를 하고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흘러간 시간이 아깝고 또 미안해서 다시 일어서려 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몸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


늘 에너지가 넘치던 담이였습니다. 학부 시절에는 동기에게서 "너는 하루가 30시간이지? 그렇지 않고서야 그 모든 걸 도저히 다 할 수 없어."라고 말을 들을 정도로 하고싶은 것, 해야하는 것들을 모두 척척 처리해내던 사람이었습니다. 


학교공부, 놓치지 않는 장학금, 과외 아르바이트, 취미생활까지. 


아침부터 밤까지 빽빼히 들어찬 일정으로 늘 아드레날린을 뿜던 청년이었습니다. 회사에서도 하루에 몇가지씩 일을 소화해내고, 크게 미루거나 약속을 지키지 못한 적도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하루에 한 가지 일을 하는 것만도 너무 피곤합니다. 

아니, 심지어는 일이 아닌 일들에도 부담을 느낍니다.


아픈 기간을 기다려준 친구와 저녁식사를 한 번 하자고 이야기가 오갑니다. 상사도 아니고 싫어하는 사람도 아니고 마음 편한 친구를 만나는 자리입니다. 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 시간 맞추어 씻고, 단정한 외출용 옷을 갖추어 입고, 대중교통을 타고 약속장소에 나가야한다는 이 작고 가벼운 책임마저도 너무 무겁게 느껴집니다.


무언가를 하려하면 할수록, 마음은 더 강하게 저항합니다. 


"하기 싫다"고.. 


그리고 마음이 말합니다.


"난 지금 완전한 휴식이 필요해..."







의지로 일어나려 해보지만 감당할 수 없는 강한 마음의 저항에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퉁퉁 부어서 떠지지도 않던 눈을 이제 뜰 수 있다고, 시신경을 위협하던 바이러스가 멈추었다고 해서 다 나은 것이 아니란 것을. 겉으로 보이는 눈에 띄는 증상만이 사라졌을 뿐, 담이는 여전히 아프고, 회복하는 중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마음 속 갈등은 여전합니다. 


'프로젝트 약속은 어쩌지? 너무 무책임한 거 아닌가.. 이거 기한 맞추어야 하는데, 내가 지금 갑자기 일에서 빠지겠다고 하면 사람들이 뭐라고 할까.. 완전히 쉬어도 나중에 다시 일할 기회가 생길까..'


꼬리를 무는 생각들은 끊임없이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이러면 안된다. 저러면 안된다."


책임과 의무, 판단, 그리고 두려움만을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담이 안에서 일어나는 생각에 자신을 위하는 말은 한마디도 없었습니다. 자신을 채찍질하고 다그치는 말만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이를 깨달은 담이는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한 기분입니다. 스스로 얼마나 남을 위해 살아왔는지, 남의 시선에 맞추어 자신의 행동을 정하였는지.. '하고싶다"보다 '해야한다'에 삶이 맞추어져 있었는지..


모든 책임과 의무를 내려놓고 싶습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싶습니다. 

지푸라기 하나도 무겁게 느껴집니다. 

어떠한 책임도, 의무도, 판단의 시선도 없는 곳에 있고 싶습니다. 


자극이 너무 많은 서울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여전히 미안한 마음이 앞서지만, 마음을 굳게 먹습니다. 그리고 팀에 연락을 하여 이야기를 합니다..


"도저히 안되겠어요.. 지금 저한테 필요한 건 완전한 휴식이에요.. 한 달 정도 산에 좀 들어가 있고 싶어요.. 일을 못할 것 같은데 괜찮을까요?"


입 밖으로 내뱉고 나니 속이 후련합니다. 

남이 원하는 바가 아닌 스스로가 원하는 바를 말하니 마음이 가볍습니다. 


그렇게 담이는 마음의 책임감을 내려놓고, 서울을 떠나기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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