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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Booter Jan 10. 2023

군생활 두번째 위기가 찾아오다.

살고자하면 죽고 죽고자하면 산다. 

군생활이 힘든이유

스무해 가량 군생활을 하면서 작년 한해는 가장 큰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사실 부사관 시절에도 때마다 위기 아닌 위기가 있었고 장교로 임관하면 없을 줄 알았던 위기는 각 계급마다 마치 이 위기를 이겨내지 못하면은 다음 계급은 없을 정도의 잔잔하고 큰 위기가 매 순간 끊이지 않았습니다. 


물론 위기의 주요 소스는 업무와 인간관계가 주로 통상 둘중 하나는 기본 베이스로 친구처럼 가져가는데 둘다 동시에 찾아오는 경우는 놀랍게도 위관장교시절 매 계급마다 찾아오며 대위가 됬을때에는 그 주기가 더 빨라 지면서 맡은 직책마다 찾아왔습니다. 


특히나 업무는 부족하면 내시간을 포기해서라도 해결하면 해결 가능했는데 인간관계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특히 인간관계는 동료에서 오는것보다 모시는 상급자를 통해서 오는부분이 대부분으로 소리치고 윽박지르며 어떻게든 내가 원하는 것을 가지고 오라고 요구했습니다. 


이러한 분들 앞에서 소신발언을 하는 경우 열정이 없고 왜 해볼생각조차 하지 않느냐고 온갖 소리를 들어야만 했습니다. 놀라운건 안된다고 이야기 한것을 결국 동료들과 노력을 갈아넣으면 해결이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이럴수록 상급자는 그 임무가 당연한것처럼 그 다음에도 지시가 이루어지고 그때마다 안되는 부분을 어거지로 다시 해야하는 점에서 스트레스를 받아야 했습니다. 


군생활 10년차 전역을 결심하다

이러한 야전생활에서 오는 답답함과 막 태어난 아들을 일주일에 한번도 제대로 못본다는 생각에 내가 과연 이 일을 하는것이 맞는건가라는 생각을 하게됬고 와이프와 몇일간 논의끝에 전역을 결심하게 됬습니다. 


이때가 부사관 경력을 포함해서 딱 군생활 10년이 되가는 시점이었는데 앞으로 9년 6개월만 더하면 군인연금 수혜 자격이 되는데 군생활을 더 이어갔다가는 분명 사고가 날것만 같았습니다. 


그래도 20년을 채우고 그만뒀을때에는 연금이 200만원이라는 생각이 계속 아쉬움을 일으켜서 와이프와 나름 타협점을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현재 내가 힘든것은 지금 하고있는 답안나오는 업무가 비젼이 안보이는데 결국 비젼을 찾는다면 왠지 이겨낼 힘이 생길것 같아서 군생활에서 비젼을 못찼는다면 그때가서 전역을 결심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찾은 비젼은 위탁교육 선발이었습니다. 


비사관, 위탁교육지원을 결심하다

사실 소위때 3월 1일부로 임관해서 첫 자대에 갔을때 육군사관학교, 육군3사관학교, ROTC 등 여러 출신의 장교들이 부대에 있지만 어느새 한해 두해 지나고 나면 육사 동기들은 위탁교육에 선발되어 사라지고 전역을 하는 비사관 동기들이 생기면서 중기복무자인 나혼자만 부대에 남게됬습니다. 


그때의 허탈함은 이루말할 수 없었습니다. 야전에서 열심히 밤낮없이 살아가는데 자대에 함께 전입 왔던 동기들은 어느새 다 가고 나혼자만 고인물이 되어있으니 나만 정체되있는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결국 소위 말하는 엘리트 군인들만 간다는 위탁교육에 엘리트와 거리가 먼 내가 지원해서 합격하는것으로 내 군생활 비젼을 찾자라는 무모한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위탁교육 최대 장애물, 토익점수

준비할 것은 오로지 토익점수이며 국내 석사학위 위탁교육 선발의 경우 610점 기준점수만 넘자는 생각으로 목표점수 610점을 향해서 토익시험을 준비했습니다. 


토익점수 610 점을 준비한다고 우습게 생각하시는 독자분이 있을수도 있겠다 생각했습니다. 필자는 철저한 공고-이과 출신으로 대학교 졸업 이후 근 10년이란 세월을 영어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습니다. 


토익공부라고는 대학시절 교양수업이 전부라 이미 여기서 상당히 두려움이 가득했습니다. 


하지만 방법은 단순했습니다. 교양수업때 모의토익을 본 토익점수가 500점으로 딱 110점만 넘으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110점 그까짓거 500점에서 22문제만 더 맞으면 되는거 아니야?! 라는 단순무식 회로가 내 의지를 더욱 불태우게 만들었고 앞이 안보이는 부대생활 비젼이 있기에 극복이 가능했습니다.


토익시험, 기회는 단 두번

그렇게 위탁교육 선발까지는 2달도 채 안남은 상황으로 보름마다 열리는 토익 시험과 시험 이후 발표가 나는십여일의 시간을 고려하면 내게 남은 기회는 오로지 두번뿐이 었습니다.


그 기회마저도 위탁교육 선발 정시모집에서 미달나는 학과가 생기면서 추가모집이 생겨 만들어진 천재일우와 같은 기회였습니다. 그렇게 한달하고 보름의 시간동안 단기간 성적을 올리는 비결인 독해는 포기하고 리스닝 공부만 죽어라고 했습니다. 


출퇴근길 리스닝 파트를 아이돌 노래처럼 틀어놓고 흥얼거리며 잠들기 전에도 자장가처럼 듣기를 반복했습 니다. 물론 애시당초 독해는 버렸지만 화장실에 들어가는 순간 매일 제공되는 해커스 어플속 독해 3 문제를 뇌가 닳도록 반복 숙달했습니다.


그렇게  2주뒤 첫번째 토익 기회인 시험을 보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듣기의 경우 느낌이 너무 좋아 왠지 다 맞은것 같은 기분이 들정도였고 독해는 40문제 정도 못풀어서 대부분 C로 막대기를 세웠습니다. 


떨리는 첫번째 시험결과 . . . . .


첫시험에서 610점 이상이 나온다면 더 공부할 필요가 없는데 하면서 열어본 결과는 500점 ;;;; 하 대학시절 교양점수 잊지말라고 이렇게 노력의 결과를 배신하다니 정말 쉬운거 하나 없다고 하늘을 원망했습니다. 


첫번째 기회는 사라지고, 이젠 마지막

하지만 이렇게 원망만해서는 답이나오지 않았고 열심히 위탁교육에 선발이되서 갬퍼스 교정을 2년간 거느린 내 모습을 상상하며 다시한번 남은 마지막 기회에 내 모든것을 걸고 모든 역량을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2 주만 죽어라고 한다면 위탁교육받는 2년은 지금과는 정말 다른 새로운 세상이 펼처질거야라며 스스로 온갖 최면을 걸고 토익에 남은 모든 에너지를 쏟아넣었습니다. 


그렇게 2주뒤 마지막 기회를 살리러 시험장에 입장합니다. 손에서 땀이나고 입이 바짝 마릅니다. 왠지 모를 자신감이 마음속에서 넘쳐흘렀다가 사라졌다가 요동을 칩니다. 


이게 머라고; 이거 망하면 그냥 전역하는거야 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머릿속을 정리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 지면서 이내 시험에만 집중할 수있어졌습니다. 


그렇게 시험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길 그냥 오전에 있을 예배나 다녀올걸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린다고 이 고생을 사서하나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날은 듣기 시험이 어렵게 나와서 절대 실수하면 안되는 파트 1에서부터 긴가민가하는 문제가 정말 절반이 넘을 정도로 그동안 노력한게 후회될 정도로 시험을 못봤다고 생각했습니다. 


지난 시험은 기분이 좋아서 가채점도 했는데 이번에는 망한것이 확실해 가채점도 제쳐두고 점수 발표가 나올 때까지 한동안 잊고 살았습니다. 


그렇게 대망의 점수 발표날!  점수를 보고 도저히 믿기지가 않습니다. 


듣기가 어려웠다는데 370점이 나오는 대박이 터졌습니다. 독해 역시 지난번 C로 막대기를 세운것이 별로라 D로 밀었는데 270점이나 나왔습니다. 


이로써 640점으로 위탁교육 선발 기준 점수인 610점을 가볍게 누르고 지원할 수 있게됬습니다. 


군번줄만 챙겨간 위탁교육선발 면접장 

그렇게 위탁교육 선발의 최저 기준인 영어점수를 달성하고 지휘관으로부터 확인서를 받은 뒤 위탁교육선발 면접을 보러 갈 수 있었습니다. 내심 미달 학과의 추가모집이라 이번에도 미달이 났기를 기도하며 갔습니다.


그런데 이게왠일입니까?! 제가 지원한 학과에 2명 모집에 지원자면 10명이 넘게 왔습니다. 


그것도 저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이미 1차 시험에 다들 지원했던 사람들인 것을 나중에 알게됬습니다.  전 그것도 모르고 미달이니까 쉽게 합격하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세상에 쉬운건 하나도 없습니다. 


추가적으로 더 큰일난것은 단순히 면접본다길래 전투복 다림질하고 전투화에 구두약 듬뿍 바른다음 군번줄 챙겨서 면접장에서 제 거창한 포부를 밝힐 계획으로 왔는데 다들 자기가 지원하는 학과의 전공서적부터 최신 무기체계 발전 동향에 관련된 면접자료를 만들어서 서로간에 압박면접을 하고있는거 아니겠습니까?!


아는사람 한명도 없는 그곳에서 저혼자 애먼 전투복만 만지며 뻘줌해 있는 찰나 진행요원이 블라인드 면접을 위해 부대마크도 제거하고 들어오라고 합니다. 


천만다행인 면접순서

아마도 원서지원을 제일 나중에해서 그런지 제 면접번호가 모든 지원자들 중 가장 마지막인데 한명 두명 면접 마치고 온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머가 나왔는지 귓속말로 알려주더니 이내 절반쯤 이상 진행됬을때는 어떤게 질문이 나올지 저 스스로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오후1시부터 시작된 면접은 제 차례가 올때쯤 시계를보니 5시를 향해가고 있었습니다. 이쯤되니 머릿속에 심사위원들의 질문이 그 어떤게 나와도 완전하게 대답이 될 만큼 모든 예상 시나리오가 머리에 들어섯고 이것은 곧 자신감으로 연결되었습니다. 


영어는 좀 부족하지만. . .

제 차례가 되어서 면접관실에 들어가자마자 큰 목소리로 이 분야를 지원하게된 동기와 관련된 제 전문지식을 말씀드리며 그간의 준비노력에 대해서 차근차근 이야기했습니다. 


사실 실업계고등학교 출신인 저에게 있어서 각종 기사자격증과 관련분야 국제자격증 등은 영어점수의 부족한 부분을 매울수 있는 절대적인 부분으로 반드시 그부분 어필이 필요했습니다. 


이러한 능력을 면접관 분들께서는 높게 평가하시고 실제로 제가 야전에서 중대장 임무를 수행하면서 느꼈던 어려움을 관련 학위 공부를 통해서 발전시키고 싶다고 하니 열심히 해보라고 응원까지 해주셨습니다. 


그렇게 면접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는 차에 시동을 거니 어느새 6시가 넘어가며 해가 지기시작했고 집에 도착하니 밤 10시가 훌쩍 넘어 버렸습니다. 


사실 위탁교육 지원하고 면접본 자체만으로도 나름 무언가 의미있는 시간을 가졌다고 볼만큼 스스로에게 큰 자극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위탁교육에 선발되지 않는다면 전역하는것은 변함없을거라 생각했습니다. 


사면초가와도 같은상황

그 무렵 전방에서 중대장 보직이 마무리되는 시점이어서 중대장을 한번 더 하러 다른곳으로 보직을 이동해야 하는데 이미 제 다음 보직은 정해져있었습니다. 


바로 장비와 병력이 여러곳에 분산되어있어 지휘화는데 어려움이 많은 곳이었습니다. 내심 그곳만은 피하자 라고 생각했는데 이미 그곳으로 정해지고 일면식이 있는 해당 부대 과장님한테 언제 오냐는 전화까지 받으니 머릿속이 복잡해졌습니다. 


과장님께 솔직하게 현재 위탁교육 선발을 지원한 상태임을 밝히고 만약 합격하면 해당 보직을 못한다고 말씀 드렸더니 과장님은 "합격" 누가 시켜준다냐 라면서 위탁교육 안가면 안되겠냐며 본인과 군생활 하자고 이야기 하셔서 참 난감했습니다. 


그렇게 가야할 부대에는 다른곳을 가려고 했던 녀석이라고 안좋은 이미지만 각인시킨채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는데 정말 놀랍게도 제 이름이 위탁교육 선발자 명단에 들어가 있는것입니다. 


그때의 기분은 이로 말할 수 없었습니다. 야전에서의 어려움으로 매순간 포기하고 싶었던것이 오늘날 나에게 이런 위로를 안겨주려고한 복선이였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인생 최고의 기쁨을 맞이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렇게 나도 엘리트 군인들만 간다는 위탁교육이라는것을 받아보는 구나 라는 기대감에 나도모르게 탄성을 질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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