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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흰 Jul 22. 2024

욕심에 눈 먼 얼굴에 대하여

결시친에서나 볼 법한 일이 내 결혼식에서 벌어질 줄이야


사촌 오빠의 득녀 소식을 들었다.



지난 명절에는 2세 계획 없다더니, 아무튼 너무 잘됐다며 축하하다가 불현듯 궁금했다. 새언니가 임신 한 줄도 몰랐는데? 벌써 출산을 한거야? 동생에게 물어보니 내가 몰랐던 얘기를 해줬다.

"언니(나) 결혼식이라 몰랐나보다. 바로 전날 밤에 전화가 왔었어. 새언니가 임신했다고 해서 나도 그때 알았어. 다음날 식장에서 가족들 다 모이면 말할 수도 있긴 했는데, 언니(나) 경사인데 그 자리에서 임신했다고 요란하게 축하받는건 경우가 아닌 것 같다면서 미리 알려주려고 전화했더라고"

내 결혼식에는 많은 사람들의 소중하고 깊은 배려도 있었구나. 새언니와 사촌오빠 역시 충분히 축하받을 만한 일임에도 기꺼이 우리를 위해 양보한 그 귀한 마음. 말로 다 하지 못할 정도로 고마웠다.

행복만 했던 우리 결혼식. 그 곳에서의 단 하나의 뒤통수. 그 얼얼함이 곧바로 생각났다. 여기선 그 유일한 오점에 대해 써보려고 한다.



얼마 전 신랑을 통해 신랑의 동생, 그러니까 시동생이 여자친구와 헤어졌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다. 우리는 이내 심각해졌다. 연애하다 헤어지는, 그 흔하디 흔한 일에 왜 우리 부부가 심각해지기까지 했냐. 시동생의 여자친구(이제는 전여친)이 내 결혼식에서 원판 가족사진을 찍었기 때문이다.

어쩌다 이 사단이 났는지를 먼저 설명해야 한다.(롱- 스토리지만 줄이고 줄여보겠다) 가족 사진을 찍을 때 작가님 옆에서 기웃거리건 그녀. 친정 식구들의 원판 사진 촬영을 마치자 그녀는 시댁 식구들 옆에 자리 잡았다. 작정한 것이 분명했다. 어딘가 잘못된 것을 어렴풋이 알았지만, 아쉽게도 그것이 가져올 여파까지는 몰랐다. 더 아쉽게도 나 포함 모든 식구들까지 비슷한 마음으로 그녀를 제지하지 못했다.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이라는 상상을 골백번도 더했다.

이곳에 다 열거하진 않겠지만, 신혼여행에서 돌아와 파악한 그날의 경거망종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나와 막역한 지인들(특히 기혼자들)은 그 여자가 누구냐고, 사실 그가 좀 이상했다고 조심스럽게 털어놨다. 본식스냅 원본을 받고서야 그 여파를 확실히 알게됐다.

처음 치루는 결혼식인데, 그것이 또 마지막이라 오점을 만회할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전여친에게 두 번의 기회를 줄 수도 없었다.(주기도 싫고.) 신랑은 이런 일을 만든 것이 결국은 자신의 잘못이라고 여러차례 사과했다. 사과를 받아도 화는 풀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 이야기를 주변에 잘 털어놓지 못했다. 입 밖으로 꺼낼 수도 없는 분노였다.

그녀가 욕심의 무대로 이용하기 좋았던 결혼식. 그 자리에 있는 양가 부모님과 친지의 입장은 당연히 고려되지 않았고, 하객들의 시선은 그녀를 그저 신나게 만들었을 것이다. 남자친구와의 관계가 얼마나 깊고, 결혼약속 또한 얼마나 공고한지를 과시할 수단으로만 고려됐을 그날.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이나 인스타그램 피드 쯤에서 멈췄어야 할 과시욕은 결국 남자친구의 친형 결혼식까지 이어지고 말았다. 욕망 가득한 얼굴을 기어코 사진에 박아 넣었으니 추잡한 과시욕은 비로소 멈췄을까?

근 몇 년간 느낀 적 없었던, 순수한 증오와 혐오를 어딘가에는 갈무리 해야 할 것 같아 이렇게 글을 남긴다. 이 글이 경거망동의 그녀에게 언젠가 꼭 가 닿길 바라며.




문제의 그녀는 감쪽같이 지웠다. 적어도 사진에서의 그녀의 흔적은 없다. 하지만 허무하고도 맹랑한 결혼약속을 철없이 과시하고 싶어했던, 욕심으로 멀어버린 두 눈이 징그럽게 이글대던 얼굴은 내가 똑똑이 기억하고 있다.

청담 모처 헤어샵에서 신부들 머리를 해준다는, 욕망으로 가득한 그 얼굴을 말이다.



후일담 1

사진 속 경거망동의 그녀를 흔적도 없이 지워준 언니는 말했다. "다흰아 앨범 펼칠 때 걔 생각도 안나게 해줄게" 그 마음이 너무 고마워 목이 울컥 매였었다.

후일담 2

신혼여행에서 돌아와 본식스냅 원본을 다운받아 열었는데, 경거망동의 그녀가 혼자 식장 로비에서 온갖 포즈를 잡고 사진을 찍은 것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본인 결혼식에서도 저정도로 나대진 않겠다. 진지하게 물어볼게, 너 뭐 돼?

후일담 3

​그 뿐이랴. 밥도 혼주석에 앉아서 맛나게 처 잡수셨다. 신혼여행까지 아주 따라오지 그랬냐..

후일담 4

인륜지대사를 앞두고는 입조심을 해야 하는 법이라고 생각한다.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오바육바를 떨어대면 될 것도 안되는 법. 상식선 이상으로 유난 피워놓고 잘되는 꼴은 잘 못봄. 반드시 그렇다는 연구 결과 같은 게 있는 건 아닌데 적어도 내 인생의 빅데이터는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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