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넷에 떠났던 한 달간의 유럽여행은 십 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 머릿속에 여전히 남아있다. 루브르 박물관이나 구엘공원, 독일의 노이수반슈테인 성 같이 손꼽히는 관광지들도 물론 좋았지만 베토벤이 날마다 산책했다던 베토벤 강이나 스위스 그린데발트의 작은 산책길 같은 곳도 소중한 추억이다. 카프카가 자신의 대표작 ‘벌레’를 집필했던 생가 또한 그러한 곳 중 하나였다. 프라하에 있던 그의 생가 2층에 올라 그 방에 들어선 순간을 나는 여전히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책상 어딘가의 남아 있는 그의 온기와 미처 그가 글로 쓰지 못했던 이야기를 마주한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그곳에는 단순히 카프카가 머물렀다는 역사적 사실 이상으로 또 다른 의미가 있음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카프카의 방을 잊지 못하고 있는 내가 현재 남편, 세 아이와 살고 있는 곳은 방 3개, 화장실 2개인 국민평수의 아파트다. 부부 침대가 있는 안방과 아이 셋의 장난감을 한꺼번에 욱여넣은 장난감 방, 첫째아이의 책상과 아이들의 2층 침대가 있는 공부방이 우리 집 각 방들의 역할이다. 거실엔 아이들의 책을 잔뜩 꽂아놓은 책꽂이와 피아노가 있고 부엌엔 식탁, 세탁실엔 세탁기와 건조기가 모두 제각각 한 자리 씩 차지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내가 글을 쓰거나 책을 읽을 때 머무는 공간은 식탁이었다. 하지만 글을 쓰기 위에 앉을때면 꼭 눈에 띄어 집중력을 흐트러뜨리는 얼룩이나 엄마의 노트북이 궁금해 아이들이 달려오는 경우가 빈번하여 작지만 절실한 바람이 생겼다. 나도 나만의 방이 있었으면. 우리 집 어디에도 내가 편히 글을 쓰거나 책을 읽을 수 있는 곳은 없는 것 같았다.
그동안 열심히 돈을 모아 마련한 내 집임에도 불구하고 나만의 공간이 어디에도 없다는 게 서글펐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집을 곰곰이 살피던 마침내 서재로 삼기에 알맞은 곳을 찾아냈다. 바로 팬트리 앞 공간이였다. 우리 집 구조는 꽤나 독특해 부엌의 경계가 되는 기다란 기둥이 화장실과 세탁실 사이에 있다. 그 기둥은 한 사람이 지나다닐 만한 좁은 통로를 사이에 두고 팬트리와 마주하고 있었다. 그동안 그 팬트리에 채워두었던 아이들 전집 대신 나의 책을 넣어두고 그 앞 통로에 책상을 넣으면 그럭저럭 쓸 만 한 나의 공간이 될 것 같다는 느낌이 왔다.
계획대로 나는 흩어져 있던 내 책들을 한 곳으로 모아 팬트리에 정리했고, 며칠 동안 슬림한 사이즈의 책상을 찾아 헤매던 끝에 원하던 사이즈의 책상을 찾아 첫 서재를 완성하였다. 서재는 0.5평도 되지 않고, 왼편엔 화장실이, 오른 편엔 세탁실이 있는 작디작은 공간이었다. 의자를 조금만 뒤로 뺄라치면 책꽂이에 부딪힐 정도로 비좁고 키 180에 배가 나온 남편은 사람은 책상에 앉을 시도도 해 보지 않았다. 요즘 글쓰기 수업을 받는 작가님 댁에는 글쓰기에만 매진할 수 있는 공간이란 의미를 담아 글쓰기 감옥이라 칭하는 멋진 방이 있는데 아무래도 감옥이라면 이쪽에 훨씬 가깝지 싶다. 그것도 정말 지독한 범죄자나 들어갈 만한 독방 말이다.
그럼에도 이 독방에 자진해 들어간 수감자인 나는 감사하고 행복한 마음이다. 가족들이 다 잠든 밤에 팬트리 등 하나 켜고 책을 읽기도 하고, 내 마음 속 한 귀퉁이 이야기를 한 가닥씩 풀어내 본다. 가끔씩 책상 앞에 놓인 벽처럼 글쓰기 역시 막힐 때면 잠시 눈을 감는다. 그렇게 눈을 감고 긴 호흡을 하고나면 어느새 의식은 어느새 생각치도 못했던 곳으로 나를 데려가 나의 우주를 만나게 된다. 그러고 보니 카프카가 머물렀던 그 방도 그렇게 구석구석 카프카의 고민과 호흡을 머금고 있을 터였다. 나는 그제야 카프카의 방이 가진 비밀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지금 내가 앉아 있는 공간을 둘러본다. 우리 가족 중 누구도 그렇게 여기지 않았지만 오늘부턴 작가의 방이라 부르기로 나 자신과 약속했다. 작가의 방이라니, 가당키나 싶은 말인가 싶기도 하지만 일단 그렇게 부를 것이다. 나는 이 곳에서 생각을 하고 고민을 하며 글을 쓴다. 그러니 여기서 만큼은 나는 틀림없이 작가이다. 이 책상에 앉아 나는 앞으로 얼마나 많은 나를 만나고, 얼마나 큰 우주를 만나게 될까. 이 좁은 공간 구석구석에 나의 고민과 번뇌, 호흡이 묻어나 성장의 농도가 점점 짙어지기를, 오늘도 나는 이 곳에서 꿈을 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