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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뿌리샘 Oct 18. 2023

작가의 방

0.5평의 우주

 스물넷에 떠났던 한 달간의 유럽여행은 십 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 머릿속에 여전히 남아있다. 루브르 박물관이나 구엘공원, 독일의 노이수반슈테인 성 같이 손꼽히는 관광지들도 물론 좋았지만 베토벤이 날마다 산책했다던 베토벤 강이나 스위스 그린데발트의 작은 산책길 같은 곳도 소중한 추억이다. 카프카가 자신의 대표작 ‘벌레’를 집필했던 생가 또한 그러한 곳 중 하나였다. 프라하에 있던 그의 생가 2층에 올라 그 방에 들어선 순간을 나는 여전히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책상 어딘가의 남아 있는 그의 온기와 미처 그가 글로 쓰지 못했던 이야기를 마주한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그곳에는 단순히 카프카가 머물렀다는 역사적 사실 이상으로 또 다른 의미가 있음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카프카의 방을 잊지 못하고 있는 내가 현재 남편, 세 아이와 살고 있는 곳은 방 3개, 화장실 2개인 국민평수의 아파트다. 부부 침대가 있는 안방과 아이 셋의 장난감을 한꺼번에 욱여넣은 장난감 방, 첫째아이의 책상과 아이들의 2층 침대가 있는 공부방이 우리 집 각 방들의 역할이다. 거실엔 아이들의 책을 잔뜩 꽂아놓은 책꽂이와 피아노가 있고 부엌엔 식탁, 세탁실엔 세탁기와 건조기가 모두 제각각 한 자리 씩 차지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내가 글을 쓰거나 책을 읽을 때 머무는 공간은 식탁이었다. 하지만 글을 쓰기 위에 앉을때면 꼭 눈에 띄어 집중력을 흐트러뜨리는 얼룩이나 엄마의 노트북이 궁금해 아이들이 달려오는 경우가 빈번하여 작지만 절실한 바람이 생겼다. 나도 나만의 방이 있었으면. 우리 집 어디에도 내가 편히 글을 쓰거나 책을 읽을 수 있는 곳은 없는 것 같았다.

 

 그동안 열심히 돈을 모아 마련한 내 집임에도 불구하고 나만의 공간이 어디에도 없다는 게 서글펐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집을 곰곰이 살피던 마침내 서재로 삼기에 알맞은 곳을 찾아냈다. 바로 팬트리 앞 공간이였다. 우리 집 구조는 꽤나 독특해 부엌의 경계가 되는 기다란 기둥이 화장실과 세탁실 사이에 있다. 그 기둥은 한 사람이 지나다닐 만한 좁은 통로를 사이에 두고 팬트리와 마주하고 있었다. 그동안 그 팬트리에 채워두었던 아이들 전집 대신 나의 책을 넣어두고 그 앞 통로에 책상을 넣으면 그럭저럭 쓸 만 한 나의 공간이 될 것 같다는 느낌이 왔다.

 

 계획대로 나는 흩어져 있던 내 책들을 한 곳으로 모아 팬트리에 정리했고, 며칠 동안 슬림한 사이즈의 책상을 찾아 헤매던 끝에 원하던 사이즈의 책상을 찾아 첫 서재를 완성하였다. 서재는 0.5평도 되지 않고, 왼편엔 화장실이, 오른 편엔 세탁실이 있는 작디작은 공간이었다. 의자를 조금만 뒤로 뺄라치면 책꽂이에 부딪힐 정도로 비좁고 키 180에 배가 나온 남편은 사람은 책상에 앉을 시도도 보지 않았다. 요즘 글쓰기 수업을 받는 작가님 댁에는 글쓰기에만 매진할 있는 공간이란 의미를 담아 글쓰기 감옥이라 칭하는 멋진 방이 있는데 아무래도 감옥이라면 이쪽에 훨씬 가깝지 싶다. 그것도 정말 지독한 범죄자나 들어갈 만한 독방 말이다.

 

 그럼에도 이 독방에 자진해 들어간 수감자인 나는 감사하고 행복한 마음이다. 가족들이 다 잠든 밤에 팬트리 등 하나 켜고 책을 읽기도 하고, 내 마음 속 한 귀퉁이 이야기를 한 가닥씩 풀어내 본다. 가끔씩 책상 앞에 놓인 벽처럼 글쓰기 역시 막힐 때면 잠시 눈을 감는다. 그렇게 눈을 감고 긴 호흡을 하고나면 어느새 의식은 어느새 생각치도 못했던 곳으로 나를 데려가  나의 우주를 만나게 된다. 그러고 보니 카프카가 머물렀던 그 방도 그렇게 구석구석 카프카의 고민과 호흡을 머금고 있을 터였다. 나는 그제야 카프카의 방이 가진 비밀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지금 내가 앉아 있는 공간을 둘러본다. 우리 가족 중 누구도 그렇게 여기지 않았지만  오늘부턴 작가의 방이라 부르기로 나 자신과 약속했다. 작가의 방이라니, 가당키나 싶은 말인가 싶기도 하지만 일단 그렇게 부를 것이다. 나는 이 곳에서 생각을 하고 고민을 하며 글을 쓴다. 그러니 여기서 만큼은 나는 틀림없이 작가이다. 이 책상에 앉아 나는 앞으로 얼마나 많은 나를 만나고, 얼마나 큰 우주를 만나게 될까. 이 좁은 공간 구석구석에 나의 고민과 번뇌, 호흡이 묻어나 성장의 농도가 점점 짙어지기를, 오늘도 나는 이 곳에서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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