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치 캔디가 알려준 것들

by 뿌리샘 김여정

여지껏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바람으로 책을 읽고 글을 썼다. 주위에 흔들리지 않기를, 나의 소신을 지키며 살아가기를 원했지만 쿠크다스 같은 성정을 갖고 있는 내가 고른 책의 다수는 “괜찮다”라고 위로해주는 책이었고, 내가 쓴 글의 결론은 대체적으로 “그래도 괜찮아.”였다.


그렇게 책을 읽고 나를 위로하는 글을 쓰면서도 도무지 마음은 먹고 싶은 대로 먹어지지가 않았다. 올해 유독 학교생활이 힘들었다. 학기 초, 굳이 나서지 않아도 되는 일에 나서 다른 이의 잘잘못을 꼬치꼬치 캐어 물은 탓에 불편한 이들이 생긴 탓이었다. 게다가 3년째 비합리적인 학교 시스템을 보고 있노라니 환멸이 났다. 내년에는 꼭 학교를 옮길리라 하루에도 몇 번씩 속으로 다짐했다. 결국 나는 아무리 읽고 쓰며 “괜찮다”, “의미없는 것에 마음 두지 말자”라고 되내었음에도 불구하고 괜찮아지지 않았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 나에게 올해 일곱 살이 된 둘째의 유치원 공개수업은 그 지긋지긋한 학교에 공식적으로 하루 빠져도 되는 나이스한 이벤트였다. 부랴부랴 나서던 평소와 달리 느긋하게 시작된 아침은 나를 행복하게 했다. 첫째 형과 막내에게 엄마를 뺏기기 일쑤였던 둘째도 오롯이 엄마를 차지하게 된 그 시간이 얼마나 기뻤던지 함지박만한 큰 미소를 지었다.


한 시간에 걸친 수업이 끝나고 모든 엄마와 아이들이 바닥에 앉아 선생님의 마지막 얘기를 듣던 찰나였다. 선생님이 나눠 준 사탕을 먹던 둘째가 갑자기 나를 툭 쳤다.

“엄...켁”

아무 생각없이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숨쉬기 괴로워 하는 아이의 얼굴을 본 순간, 직감했다.

아이의 목에 사탕이 걸렸다.


미친 듯이 아이의 등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누구를 부르거나 도움을 요청할 틈도 없었다. 하임리히법이 뭐였지? 아이를 거꾸로 들어서 볼까? 119를 부르면 오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지? 온갖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정신없이 두들겼다. 그 뒤부터는 고장난 테이프처럼 기억이 엉켰다. 수십 명의 학생과 학부모들이 아무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저 어느 아빠가 와서 같이 등을 두드려 주었으며, 선생님 마저 달려와 등을 두드렸을 때 마침내 번들번들한 황토빛 사탕, 그 스카치 캔디가 툭 튀어나온 순간만이 천천히 기억날 뿐이다.


그 날 이후 나는 트라우마처럼 자꾸 그 순간을 떠올리게 되었다. 특히 나중에 영유아 사망률 1위 질식사라는 사실을 알고나서는 마치 무시무시한 폭풍 하나가 종이만큼의 차이로 나를 빗겨간 것만 같았다. 무엇보다 나 자신의 가장 큰 변화는 그 일 이후 나를 괴롭히던 그간의 일들과 학교, 사람들과의 관계가 한없이 가벼워졌다는 것이다. 여지껏 ‘직장은 내 삶의 일부일 뿐이며, 그마저도 시간이 지나면 잊혀질 일들, 보지 않을 사람들’이라고 수십번 수백번 염불처럼 외워왔음에도 되지 않던 마음 먹기가 마치 누군가에게 뒷통수 한 대 맞고 정신차린 것마냥 번뜩 절로 되었다.


오히려 꼿꼿이 내 소신을 지키며 살아가겠다던 나의 마음가짐이, 내 삶이 실상은 사탕 하나에도 뒤집힐 수 있는 대단치 않은 것이라 생각하니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이 글을 쓰며 그날을 회상하는 가운데 몇 번이나 목구멍이 턱하고 막힌 느낌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아무 일 없이 그저 지나간 오늘 하루가 당연한 일이 아님을. 엄청난 행운이자 행복임을. 나와 나의 가족, 내가 사랑하는 지인들이 무탈하게 보낸 하루의 모든 순간이 축복임을 떠올리며 감사함을 느낀다. 오늘도 여기 이곳에서 살아 숨쉬고 있음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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