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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otsoo Jun 07. 2024

[넷플릭스] 애슐리 매디슨(Ashley Madison)

넷플릭스 다큐 애슐리 매디슨을 봤다. 한국에서는 조금 생소한 앱이지만 꽤나 유명한 사건이었나 보다. 애슐리 매디슨은 기혼자들을 위한, 불륜을 위한 데이팅 앱이다. 존재부터 엄청 자극적이다. 그리고 이 앱의 존재를 반대하는 세력이 이 데이팅 앱의 데이터를 해킹하고, 사용자들의 정보를 다크웹에 뿌리는 일련의 사건을 보여주는 다큐였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사용자 정보가 공개되고 많은 사람들이 곤란한 상황에 빠진다. 많은 사람들 이래 봤자 불륜을 목적으로 데이팅앱에 가입한 사람들이다. 이 중 (다큐에는 제대로 소개되지 않은) 유명인도 있고, 다큐에서 주로 소개되는 유튜버도 있었으며, 또 누군가는 직장에서 짤리기도, 누군가는 자살을 선택하기도 한다. 


인간은 누구나 숨기고 싶은 사생활이 있다. 그리고 사생활이라 표현되기도 어려운 내면의 욕망도 있다. 마음 깊은 곳에 있어 겉으로 드러내기 어려운 그런 내면의 욕망말이다. 그리고 그 욕망과 관련된 나만의 비밀 같은 것이 있다. 완벽히 선한 사람은 없고, 이런 욕망이 있다고 무조건 더럽거나 추악한 인간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보다 중요한 것은 이런 내면의 나를 '어떻게 컨트롤하고 살 것인가'다. 내 욕망만을 중요 시 하면서 타인과의 관계, 사회의 룰 따위는 아무 필요가 없는지, 혹은 다른 소중한 것을 위해 욕망은 마음속 깊은 곳에 묻어두고 살 것인지 말이다. 대부분 또 이렇게 살아가기도 한다.  


그런데, 들키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인간의 자제력을 잃게 만든다. 애슐리 메디슨에 가입한 사람들도 그랬다. 안정적인 결혼생활은 파탄내고 싶지 않지만, 새로운 자극은 필요했기에 외도라는 선택지를 택했다. 여기서 이들이 쉽게 넘어간 이유는 "비밀의 보장"이다. 아내에게 알려지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이들을 유혹에 빠지게 했다. 자신의 가입 정보가 공개될 줄 알았으면 누가 이 앱에 가입했겠는가? 


또, 그런 욕망을 행사할 수 있는 상황이 되면 자제력을 잃기도 한다. 이 다큐와는 상관이 없지만, 돈을 많이 벌자 아내를 버리고 바람이 나는 사업가 이야기는 우리 주변에 흔하다. 그리고 여러 이유들로 구설수에 오른 유튜버나 연예인들은 늘 기사거리가 된다. 사실은 원래 욕망을 마음껏 추구하는 그런 사람들이었는데, 기회나 권력, 돈이 없어서 표출하지 못했다가 표출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생각해 보게 된다. 어떻게 살아야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리스크를 절대 과소평가 하지 말아야 한다. 잃어나지 않을 것 같은 적은 가능성은, 인간은 누구나 그 일이 실제보다 더 희박하게 일어날 것처럼 인지하는 과소평가 오류를 범하게 된다. 투자시장에서의 예외적인 폭락도 마찬가지고, 애슐리 메디슨을 사용하면서 이것이 들통날 것이라는 걱정도 그렇고, 내가(또는 유명 유튜버나 연예인, 사업가가) 타인에게 행하는 갑질이나 폭력, 음주운전, 외도, 나에게 소중한 사람에게 거짓말을 치는 일, 모두 "괜찮겠지", "들통나지 않겠지" 하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그런데, 내가 하는 그런 행동들이 세상에, 타인에게, 소중한 사람에게 알려졌을 때의 그 피해(상대에게든, 자신에게든)는 굉장히 크다. 그렇다면 그런 행동들의 기대피해량은 과소평가된 우리의 생각보다 아주 클 수 있다. 

그리고 하나의 문제가 더 있다. 대부분의 행동은 한 번에서 끝나지 않는다. 99% 확률로 소액을 이기는 대신, 1% 확률로 전 재산을 잃는 도박이 하는 것과 같다. 오히려 도박이면 확률은 인지하고 겁내서 금방 그만둘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이런 숨겨진 욕망을 분출하는 짜릿함과 도파민은 쉽게 끊을 수 없다. 이번에도 안 걸리면 다음에도 안 걸리겠지 하는 마음이 언젠가는 파멸로 인도하게 된다. 


결국 답은 그런 행동을 안 하는 것이다. 안 걸리는 짜릿함이 주는 도파민보다 당당함과 평온함이 주는 마음의 안정을 더 큰 행복으로 삼을 줄 알아야 한다. 확률과 기댓값을 인지하지 못하는 도박의 끝은 파산뿐이다. 그리고 그런 권력과 환경이 생기기 전부터 미리 생각하고 다짐해야 한다. 언제인가 내가 과거에 생각 없이 했던 행동이 내 성장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그러지 못했던 지난날을 반성하며 다짐해 본다.  


타인과의 신의를 지키고, 타인에게 어떤 해를 입히지 않기 위한 자제의 이유가 자신에게 돌아오는 피해를 인지하라는 말이 좀 우습거나 어이없게 생각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어떤 당위적인 선함을 강요하는 것보다 이런 현실적인 이유가 더 강한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요새 아이들이 학교폭력 행사를 조심하는 이유는, 예전보다 선해져서이거나 도덕적 규범이 강해져서가 아니라, 학폭위라는 즉각적인 제재의 가능성과, 이 꼬리표가 평생 남아 자신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걱정 때문일 것이다. 인간은 그런 존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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