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일은 조용히 우리 곁을 파고든다.
벚꽃이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하던 지난 금요일 오후.
아빠는 왼손에 힘이 빠지고 몸을 가누기 힘들다며 둘째 언니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둘째 언니는 구급차를 수배해 아빠 댁으로 보내고 형부와 함께 조선대병원으로 달려갔다.
그 시각 전화를 받은 나머지 형제자매들은 별것 아닐 거야 하는 마음으로 불안하고 초조한 시간을 보내며, 저녁 늦은 시간까지 둘째 언니의 전화를 기다렸다.
뇌졸중은 그렇게 조용히 아빠를 흔들었다. 병원에 입원하여 8일 동안 집중치료실에서 약물치료를 하고, 신경손상이 덜 되길 바라며 기다렸다. 아빠 또한 매우 힘든 시간을 오롯이 혼자 견뎌내셨다. 집중치료실에 계시는 동안 면회가 되지 않아 전화 통화로 아빠의 컨디션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빠는 다행히 정신도 맑고 기억력까지 여전하셨지만 정확하지 않은 발음과 어눌한 말투로 인해 통화하는 내내 무거운 마음을 어찌할 수 없었다.
병원에서 이야기했던 시간보다 늦춰진 그다음 주 목요일 오전 아빠는 일반병실로 오시게 되었다. 일반병실로 옮기기 위해 둘째 언니가 병원을 찾았을 때 아빠는 침대에 누워 계셨는데 그때까지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당연히 아빠가 일어나서 걸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아빠는 걷지도 왼쪽 팔을 움직일 수도 없었으니 말이다. 둘째 언니가 놀라고 당황했던 순간보다 아빠는 그 순간 얼마나 착잡하셨을까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난다. 자식에게 몸을 맡겨야 하는 그 마음이 오죽하셨을까? 아빠는 무기력하게 그 상황을 받아들이며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채 일반병실로 움직이셨다.
둘째 언니는 일반병실로 옮길 당시 아빠의 상태를 확인했던 순간 아빠에게 괜히 바쁜 척 정신없는 척하며 슬프고 절망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애썼다고 했다. 마음으로 울었고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괜찮다고 아빠를 대했다고 했다. 아빠가 느끼는 충격이 더 클 것이기에 언니는 나중에 전화통화로 이야기하며 너무 속상해하고 슬퍼했다.
아빠는 뇌졸중과 관련한 여러 기준 수치가 안정적일 때까지 일반병실에 계셔야 했다. 어쩌면 길고 긴 어둠의 터널을 이제 막 들어서고 있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반병실로 옮긴 첫날 아빠는 거의 잠을 이루지 못하셨다. 간호를 맡은 둘째 언니도 아빠 곁을 지키며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고, 아빠의 현재 상태를 가족들 모두 마음과 머리 어느 한쪽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나의 형제자매들은 긍정적인 삶의 태도를 지닌 사람들이다. 기대효과를 바라는 마음으로 카톡방에서 또는 전화통화로 서로서로의 마음을 나누며 아빠의 간호를 위해 힘써보자는 의지를 다졌다. 아빠 역시 상당한 의지를 보이고 계셔서 재활을 위해 우리 가족 모두 마음을 하나로 모아보자고 했다.
나는 토요일 오후부터 일요일까지 아빠의 간호를 담당하기로 했다. 간병인을 쓸 수 있지만 형제자매들 모두 순서를 정해 돌아가며 해보자고 했다. 일반병실로 오시고 나서 입원 후 처음으로 엄마도 아빠를 만나 보실 수 있었고, 동생네도 아이들을 태우고 비슷한 시각 도착하여 아빠를 면회하고 있었다. 둘째 언니가 휠체어에 아빠를 태워 병원 1층의 카페에서 만날 수 있었다.
곧 군에 입대할 아이도 함께 할아버지의 병문안을 했다.
얼마 전까지 할아버지와 할머니이신 나의 부모님은 군입대하는 손자를 함께 배웅해 주시겠다고 하셨었다. 아빠가 군 생활을 하셨던 곳이기도 했고, 어떻게 변했는지 세월의 흔적도 보고 싶으셨던 이유도 있었기에 그러시자고 하며 내려가셨는데 병원에 입원을 하시게 되었다. 아이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할아버지 손을 잡으며
"할아버지, 제 수료식 때 오세요. 그때는 날씨도 더 좋고 5월이라 나들이도 더 좋으실 거예요. 아셨죠? 할아버지."
하며 웃으니 아빠는 고개를 끄덕이며 손자를 바라보셨다.
가족들이 모두 돌아가고 아빠는 저녁 식사를 드시고 일찍 병실에서 잠이 드셨다. 잠이 들기 전 아빠의 다리와 팔을 주물러 드리니 일하고 내려와 너도 힘들 텐데 그만하라 신다. 하지만 고작 이틀 동안인데 힘들지 않다고 말씀드리고 한참을 주물러 드렸다. 밤사이 소변을 자주 보시느라 1시간에 1번씩 일어나게 되었다. 그러면서 자꾸 미안해하신다. 자식들 힘들게 한다고, 잠 못 자서 어떻게 하느냐며 걱정을 하셨다. 매우 짧은 시간이기도 했지만 힘들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빠가 이만하셔서 감사하고 재활을 할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아빠의 곁을 지켰다.
일요일 오전 둘째 언니는 나와 교대를 위해 병원으로 복귀했다. 날이 따뜻해서 서울로 올라가는 나를 배웅해 주신다고 언니와 함께 휠체어를 타고 주차장입구까지 따라 나오셨다. 차에 타 시동을 걸고 아빠를 쳐다보니 나의 눈을 피하신다. 애써 괜찮은 척하시려는 아빠의 모습이 나의 마음을 후빈다.
다음 주 토요일 오후에는 조금 더 좋아진 아빠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