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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한 Apr 23. 2024

당당하게, 라면

점심에 라면을 먹었다. 라면을 먹겠다고 했더니 팀원들이 따라가겠다고 했다. 평소엔 주로 (다이어트를 한다며) 도시락을 먹는다고 해서 혼자 먹는 날이 많았는데, '라면 맛있겠다 ㅠ ㅠ' 하며 따라붙었다. 조금 얄밉기도 했지만 같이 먹는 게 좋아 그러라고 했다. 혼자 먹는 게 나는, 영 쉽지가 않다. 나는 고독을 즐기지 않고 미식가도 아니다. 


해장 라면을 주문했다. 전에 해장 라면을 주문할 때는 약간의 용기가 필요했다. 해장 라면? 과음했구나, 의그 술 좀 작작 먹지, 아직도 스무 살 청춘인 줄 알어? 라고 아무도 말하진 않았지만, 괜히 어쩌면 혹시나 만약이지만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콩나물이 들어가서 시원하고 맛있더라고. 술은 많이 안 마셨어, 어젠. 소주 한 병 정도? 맥주 두어 병이랑......" '안물안궁'한 동료들에게 TMI를 전하고 머쓱해하곤 했다.


해장 라면 주세요!


오늘은 당당하게 주문했다. 당당하게 해장 라면을 먹든가, 당당하게 죽든가 둘 중 하나.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마흔이 넘으니 숙취도 달라졌다. 심해졌고 길어졌고 늦어졌다. 전엔 오전에 오더니, 지금은 오후에 온다. 어라, 숙취가 없어진 건가? 술도 마실수록 는다더니...는 개뿔, 실상은 숙취가 오는 시간이 늦어진 것뿐. 술이 점점 늦게 깬다는 증거다. 그리고 우울감을 동반한다. 이게 진짜 별로다. 그래서 술을 끊어야겠어 했더니, 실현 가능한 목표를 세우심이... 했다. 요즘 친구들은 역시 똑똑하다.        


국물 먼저, 크아- 이제 좀 살겠다. 해장 라면은 辛라면에 콩나물을 가득, 고춧가루를 듬뿍 더한 것이다. 가격은 일반 라면보다 천 원 더 비싸다. 그 천 원 덕에 살아났으니 목숨 값 치고는 싼 편이다. 매운 당면 김말이와 함께 먹으니, 이걸 먹으려고 어제 그렇게 달렸던 거구나 싶었다. 


라면과 같이 맵고 짠 음식으로 해장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한다. 그런데 어차피 해장을 해야 할 정도로 술을 마신 거면 무엇으로 해장을 한들 몸에 좋을 리는 없는 것 아닌가. 그러니 다음에도 당당하게 해장 라면을 주문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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