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유를 오조오천억 개까지는 아니어도 두 개는 확실히 댈 수 있다. 그만두고 싶은 그 일이 중요하거나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 가지처럼 보인다면 다시. 첫째 그 일이 더없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둘째 그 일이 하잘것없기 때문이다.
중요한 일은 어떻게든 하게 되어 있다. 지금 그 일을 그만두어도 언젠가는 다시 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그만두고 싶다면, 그래도 좋다.
다만 따져보자. 꼭 지금이 아니어도 여전히 중요한 일일까?
지금 당신이 그만두고 싶은 중요한 일이 나중에도 여전히 중요할까? "지구엔 공기 때문인지 유통기한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가치라는 것도 변하기 마련이다. 이는 세대의 문제가 아니라 시대의 문제이며(요즘 것들은 당최, 라떼는 말이야는 넣어두자), 옳고 그름이 아닌 다름의 문제이다. 지금 당신의 일이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중요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당장 눈앞의 일도 예측하기 힘든 시대를 살고 있지만, 이 질문에 '그렇다'라고 답할 수 있다면, 그만두어도 좋다. 왜냐하면 시간을 초월하는 가치를 지닌 일, 가치의 유통기한이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일단, 잘못 판단했을 확률이 높다. 그런 일이란 흔치 않다. '사랑'이라고? 정말 사랑을 그만하겠다는 건가? 사랑이야말로 시간을 초월하는 가치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당신이 그만두고 싶은 것은 사랑이 아니라, 누군가와의 '관계'일지 모른다. 그것을 사랑이라고 생각했을 확률이 높다. 관계 역시 중요하다. 그러나 세상에 끊지 못할 관계란 없다. 일? 말해 무엇하겠는가. 일 역시 다른 그 어떤 일보다 중요한 일이다. 그렇다면 지금, 그 중요한 '일'을 그만두겠다는 것인가? 아마 아닐 것이다. 일이라는 것을 하지 않겠다는 게 아니라, '지금 하고 있는 그 일'을 그만두고 싶은 것일 게다. 그 관계를 그 일을 그만두고 싶다면, 그래도 좋다.
만약 지금 그 일이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중요할 것이라는 당신의 판단이 틀리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그만두어도 좋다. 깊게 고민할 것도 없다. 그 정도로 중요한 일이라면 지금 그만두는 것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앞으로 다시 해야 할 기회가 수백 번은 될 것이고 혹시 그 수백 번을 다 날려도 기회는 계속 생길 것이다. 그렇게 중요한 일은 삶의 필요조건이므로 충족하지 않고 넘어갈 수는 없다. 당신이 포기해도, 그 일이 당신을 포기하지 않는다. 지금 그만두고 싶다면 그만두자. 다음에 하면 된다.
지금 당신이 그만두고 싶은 일이 지금은 중요하지만 나중에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이 또한 그만두어도 괜찮다. 사실 나중에도 중요한 일인 것보다 훨씬 복잡한 문제이기는 하다. 그렇다고 죽어도 그만두지 못할 일은 아니다. 지금 중요하지만 나중에는 그렇지 않을 일은 지금 꼭 해야 하는 시급하고 중요한 일이거나 혹은, 전혀 중요하지 않은 일이다.
만약 전혀 중요하지 않은 일을 하고 있다면 그로 인해 그만두고 싶다면, 당장 그만두어야 한다.
벽돌을 쌓고 있는 세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첫 번째 사람은, 보면 몰라요? 벽돌 쌓고 있지. 하고 퉁명스럽게 말했습니다. 두 번째 사람은, 일당 팔만 원짜리 일을 하고 있습니다만. 하고 무심하게 말했습니다. 세 번째 사람은, 저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을 짓고......
그만두자. 포장하지 말자. 냉정해지자. 중요하지 않은 일을 하고 있다 생각이 든다면 그만두는 게 맞다. 그렇다면 중요하지 않은 일은 무엇일까? 정신적, 신체적으로 그 어떤 만족감이나 안정감을 주지 못하는 일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일'의 예를 들어보자. 일반적으로 일을 하는 이유는 크게 여섯 가지를 이야기한다. 일의 즐거움, 의미, 성장, 경제적 안정감, 정서적 안정감, 그리고 관성이다. 이 중 그 어느 것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일은 중요하지 않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학자들은 일의 즐거움, 의미, 성장을 내적 동기 또는 직접 동기라 하여 긍정적으로 보고 경제적, 정서적 안정감 추구, 관성은 외적 동기 또는 간접 동기라 하여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오래된 이야기이다. 그런데 노동자 입장에서 본다면 경제적 안정감, 정서적 안정감을 추구하는 것이 지양해야 할 일일까? 매일 해오던 익숙한 일에서 오는 심리적 안정감이 꼭 나쁘기만 할까? 외적 동기와 내적 동기는 현실과 이상일 수도 있고, 기본과 심화 조건일 수도 있으며, 상호보완적 관계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이분법적인 잣대는 바람직하지 않다. 여섯 가지 일의 동기 중 어느 것이라도 만족시킨다면 중요한 일이고 그 어느 것도 만족시키지 못한다면 중요하지 않은 일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는가? 그 일이 즐겁거나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가? 일을 할수록 성장한다고 느끼는가? 그 일을 함으로써 경제적, 심리적 안정감을 얻고 있는가? 이 질문들 중 단 한 가지에도 그렇다고 답할 수 없다면 중요하지 않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만두고 싶다면, 그래도 좋다.
문제는 시급하고 중요한 일이다. 지금 당장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라면, 몇 번을 다시 따져보아도 틀림없이 그러하다면 지금 하는 게 맞다. 특히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는 일이어서 내가 그만두면 진행이 되지 않는 일이라면 더욱, 지금 해야 하는 게 맞다. 그런데 꼭 그래야 할까? 굳이 전문가들의 이야기(이를테면 팀 페리스의 "지금 하지 않으면 언제 하겠는가" 같은)를 들지 않아도 주변에서 늘 비슷한 이야기를 듣는다. 지금 해야 한다, 당장 해야 한다, 지금 당장 해야 한다. 아는데, 너무 잘 아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만두고 싶다면? 그래도 된다. 여기에도 두 가지 이유가 있다. 그 누구보다 당신이 중요하기 때문이고, 생각보다 당신이 중요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 누구보다 당신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선택은 온전히 당신의 몫이다. 존중받아 마땅하다. 당신에게는 그만둘 권리가 있다. 그렇다고 평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당신이 그 누구보다 중요하듯, 그 누구들은 각 개인으로서 당신과 동일하게 다른 그 누구보다 중요하다. 그러므로 그들이 당신의 결정에 대해 평가하고 판단할 자격은 있다. 그러나 그 누구도 당신의 '결정'을 대신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그만두고 싶다면, 그래도 좋다.
다행히도, 생각보다 당신이 중요하지는 않다. 당장 하던 일을 그만두면 큰일이 날 것 같다. 프로젝트가 엉망이 되고, 관계가 끊어지고, 회사가 망하고, 삶이 우울해질 거라고 생각할 것이다. 미안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어떤 프로젝트든 플랜 B가 있고, 사람들의 이해심은 생각보다 넓고 깊다. 회사에, 그만둔다고 회사가 망하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당신 일리는, 더욱 없다. 우울해할 것 없다. 당신이 그렇게 대단한 사람은 아니다. 누구도 그렇게 대단하지는 않다. 너무 큰 부담은 내려놓자. 해야 할 일이 있으면 하고 그만두고 싶다면, 그래도 좋다.
*제가 지금 그만두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서 글로 푼다고 생각하신다면 아닙니다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