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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한 May 10. 2024

산처럼 마운드에 서다


해가 처음으로 마운드에 섰다. 


지역 라이벌 붕붕초와의 연습경기에서 투수 데뷔전을 가졌다. 1이닝 퍼펙트! 세 타자를 땅볼과 뜬공으로 완벽하게 틀어막았다. 특히 선두 타자의 투수 강습 타구를 숏바운드로 잡아 1루수에게 토스한 장면은 압권이었다. 빠르고 까다로운 타구였는데 여유 있게 처리했다. 재빠르면서도 부드러운 동작이 춤을 추듯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관중석에서 박수와 환호가 터졌다. 팀원들은 엄지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상대팀 감독마저 박수를 쳤다.


"느려서 맞아도 안 아프니까 들이대!" 상대팀의 조롱에도 아랑곳없이 65km짜리 강속구를 한복판으로 씩씩하게 꽂아 넣었다. 세 타자를 상대로 셧아웃 이닝을 만드는 데 필요했던 공은 단 7개. 그중 5개가 스트라이크였다. 그야말로 완벽투였다. 그러나 결과보다 더욱 빛난 건, 뒷모습에서도 보이는 씩씩한 결의였다. 


나는 직구만 던져.

뭐, 한 번 쳐 보든가.


실제로 직구밖에 못 던지기는 하지만 피하지 않고 당당히 맞섰다. 132cm, 27kg의 작고 어린 투수가, 마운드 위에 우뚝 선 산처럼 보였다. 그 산에서 해가 차오르고 빛이 퍼져 나갔다. 숨이 벅찼다.










*2023. 3.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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