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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애인권법센터 Aug 08. 2023

13. 피해자 진술 영상녹화물이 증거가 되려면?

반대신문의 산을 넘어야 된다고요? 법이 바뀌어 예외가 생겼어요!!

지난 글에서 가해자의 진술이 담긴 영상녹화물을 증거로 쓸 수 있는 방법이 현재로서는 전혀 없다는 것을 말씀드린 이후 많은 분들이 안타까워하시면서 "그렇다면 피해자의 진술이 담긴 영상녹화물은 없는 것인지, 있다면 증거로 쓰일 수 있는 것인지" 물어봐주셨어요.


물론 피해자의 진술도 영상녹화물로 남길 수 있습니다. 피해자가 수사기관에 직접 가서 경찰과 함께 물어보고 답하고 물어보고 답하고 해서 나오는 종이를 '진술조서'라고 하고, 피해자가 직접 종이에 손이나 컴퓨터로 써서 못한 말들을 적어 내는 종이는 '진술서'라고 해요. 그리고 피해자가 카메라 앞에서 사건에 대해서 진술하는 내용을 찍은 것을 '피해자 진술 영상녹화물'이라고 합니다. 


혹시 '해바라기센터'라는 것을 들어보셨나요? 지역에 규모가 큰 병원에 설치되어 있는 센터인데요. 그 안에는 경찰도 있고 간호사도 있고 상담사도 있고 어떤 곳은 변호사까지 있기도 해요. 범죄 피해자가 해바라기센터를 찾아오면 거기서 증거도 채취하고(채증), 의료적인 검사도 하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진술도 받는 곳입니다. 

성폭력 사건, 아동학대 사건, 장애인 학대사건 등 일반 경찰서에서 기존의 방식대로 진술하기가 어려운 사건들에 대한 진술을 주로 받고 있는데요. 진술을 하는 방에는 카메라와 마이크가 천장에 달려있고요, 크게 보면 두 개의 방으로 나뉘어 있어요. 


한쪽 방은 의자와 탁자가 있는데 그 곳에서는 진술하는 피해자, 물어보는 경찰(해바라기센터 소속 경찰), 옆에서 진술을 도와주는 진술조력인, 국선변호사나 상담소 직원과 같은 신뢰관계인이 한 방에 들어가 있어요. 

다른 한 방은 유리로 나뉘어져 있는데요, 진술하는 사람은 그 유리 너머가 보이지 않아요. 그 곳에는 속기사가 진술을 받아쓰고 있고요. 가끔 진술을 분석하는 전문가가 들어가 있기도 하고, 이 사건을 처리해야 하는 경찰서 소속 경찰관이 여기서 진술을 모니터링 하기도 해요.

진술이 다 끝나면 CD가 나오는데요. 이 CD는 나오자마자 종이케이스에 넣어 밀봉하고 참여자들이 그 밀봉 부분에 도장을 찍어서 나중에 판사님이 열어보기 전까지 조작할 수 없도록 보호해요. 

해바라기센터가 아닌 일반 경찰서에도 영상녹화할 수 있는 영상녹화실이 있어요. 



이렇게 만들어지는 피해자 진술 영상녹화물은 바로 증거로 쓰일 수 있을까요? 아쉽게도 아닙니다.  


피해자의 진술이 담긴 진술조서나 진술서는 피고인이 그걸 증거로 쓰는 데 동의하지 않으면 어떻게 된다고 했죠? 직접 진술을 한 피해자가 법정에 나가서 '이거 제가 사실대로 이야기 한 거 맞습니다. 제가 말한대로 잘 써있는 거 맞아요.' 하고 인정해야지만 증거로 쓸 수 있다고 말씀드렸죠.

영상녹화물도 원칙적으로는 똑같아요. 


하지만 예전 성폭력처벌법에는 만19세 미만의 성폭력 피해자의 진술이 담긴 영상녹화물은 예외적으로 피해자가 직접 법정에 나오지 않더라도, 피해자가 수사단계에서 영상녹화 방식으로 진술을 할 때 옆 자리에 앉아 있던 '신뢰관계인'(대표적으로 피해자의 국선변호사)이 대신 법정에 나와 인정할 수 있는 예외가 있었어요. 법정에 나오기 무서운 미성년자 성폭력 피해자들의 상황을 반영한 제도였죠.


그런데 2021년 크리스마스 직전에 헌법재판소에서 이 조문이 위헌이라고 결정했어요. 단순위헌 결정이었기 때문에 그날 바로 효력이 없어진거죠. 헌법재판소가 '신뢰관계인에 의해서 영상녹화물의 진정성립을 인정할 수 있었던 예외'를 위헌이라고 보았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피고인이 반대신문권 침해였어요. 그래서 그 다음부터 피해자들은 아무리 나이가 어리거나 장애가 있어도 법정에 나가서 증인신문을 받아야 했지요. 1심에서 신뢰관계인에 의해 증거로 인정된 영상녹화물로 인해 유죄 판결을 받은 피고인들이 2심에서 무죄로 바뀌는 일도 적지 않았어요. 그렇게 1년 6개월이 흘러갔어요.


그러다가 드디어 2023 6월 말에 성폭력처벌법이 개정되었어요. 결론적으로 '피해자가 만19세 미만인 성폭력 사건'에 대해서 예전에 '신뢰관계인이 피해자 대신 법정에 나가서 영상녹화물이 진정성립을 인정하는' 그 예외는 없어졌어요. 피해자의 진술이 담긴 영상녹화물이 증거로 쓰이려면 원칙적으로는 피해자가 법정에 나와서 피고인측의 반대신문을 받아야 되도록 바뀐 것이죠. 


여기서 이야기하는 '법정'은 '공판기일(실제 재판일)'만 있는 것은 아니에요. 증거보전기일과 공판준비기일에도 피해자가 반대신문을 받을 수 있고, 그 반대신문이 이루어지면 피해자의 진술이 담긴 영상녹화물은 증거로 쓰일 수 있어요. 

증거보전기일은 아직 수사단계이긴 하지만, 증거가 날라갈 위기에 있거나 긴박하게 증거를 보전할 필요가 있을 때 판사 앞에서 그 증거를 보전하는 것을 말해요. 공판준비기일은 재판이랑 살짝 비슷하긴 하지만 그 사건만 집중적으로 파보는 날이라고 생각하시면 편해요. 쟁점은 무엇인지. 어떻게 다툴 것인지 이런 복잡한 부분을 판사와 함께 법정에서 정리하는 날이에요. 



그리고 아주 중요한 내용!!! 피해자가 직접 법정에 나오지 않아도 피해자의 진술이 담긴 영상녹화물을 증거로 쓸 수 있는 예외가 생겼답니다. 총 5개인데요. 그 조문은 이렇게 써 있어요.


19세미만 피해자등이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유로 공판준비기일 또는 공판기일에 출석하여 진술할 수 없는 경우. 다만, 영상녹화된 진술 및 영상녹화가 특별히 신빙(信憑)할 수 있는 상태에서 이루어졌음이 증명된 경우로 한정한다.

가. 사망

나. 외국 거주

다. 신체적, 정신적 질병·장애

라. 소재불명

마. 그 밖에 이에 준하는 경우


쉽게 이야기하면 피해자가 죽었을 경우, 피해자가 외국에 있어서 귀국이 어려울 경우, 피해자에게 질병이나 장애가 있어서 법정에 나와서 영상녹화물에 대한 증인신문을 받는 것이 어려운 경우, 피해자가 어디 있는지 알 수 없는 경우 등에는 피해자가 피고인측의 반대신문을 받지 않았다 하더라도 피해자의 진술이 담긴 영상녹화물은 증거로 쓰일 수 있습니다


반대신문을 받아야 하는 것이 원칙이 되었다고 너무 무서워하지 마세요. 아동인 피해자를 반대신문 할 때는 피고인 마주치지 않도록 해야 하고, 아동친화적으로 해야 한다고 법에 새로 적혔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5개의 예외가 생겼으니 피해자 국선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영상녹화물이 증거로 잘 사용될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 봅시다. 


가해자의 진술이 담긴 영상녹화물이 전혀 증거로 쓰일 방법이 없는 것과는 달리, 이번 글에서는 피해자의 진술이 담긴 영상녹화물이 어떻게 재판에서 증거로 쓰이는 지 알아보았습니다. 



**이 글을 쉽게 설명한 영상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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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언 펠로우 3기 김예원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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