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애인권법센터 Jan 19. 2024

18. 가해자 기소 후 피해자가 알아야 할 법정(상)

기소가 끝이 아닙니다! 피해자가 없는 법정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드디어 가해자가 기소되었습니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얼마나 기쁜 소식인지 모릅니다. 


기소는 검찰에서 사건을 검토해 본 결과 '이 피의자는 형사재판을 통해 처벌을 받아야 해!'라고 사건을 법원에 넘겨 재판을 여는 것을 말합니다. 

기소가 되면 피해자 입장에서는 '이제 거의 다 왔구나!'라는 마음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안심하긴 아직 이릅니다. 가해자가 재판에 넘어갔다고 해서 모두 처벌을 받는 것도 아니고 가끔 무죄판결이 나기도 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차라리 '이제부터 시작이다'라고 마음을 먹는 편이 피해자의 정신건강을 위해 좋습니다.


피해자는 형사재판의 당사자가 아닙니다. 검사와 피고인이 형사재판의 당사자이고, 판사는 그 가운데에서 양쪽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유죄인지 무죄인지 판결을 내리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피해자가 꼭 형사재판 법정에 나가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피해자도 재판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지켜보아야 하는 이유들이 분명히 있답니다. 


먼저, 검경수사권조정이 시행된 이후에 경찰로 일반 사건의 수사업무가 몰리면서 수사를 촘촘히 하기 어려운 구조적인 문제가 생긴 것은 제가 이미 여러 차례 글로 정리해서 올렸는데요. 여기에 더해서 검경수사권조정으로 피고인이 법정에서 '모릅니다' 한 마디만 하면 경찰과 검찰에서 피의자가 조사받으면서 작성되었던 피의자 신문조서가 휴짓조각이 되면서 증거로 낼 수 없게 되고, 그걸 살릴 방법도 만들어두지 않은 상황이죠(12번 글). 그래서 법정에서 까딱 잘못했다가는 피고인이 모르쇠로 일관(모른다고 잡아떼는 것)하고 증거가 부족하면 무죄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구체적인 일반 법정에서의 사건 흐름을 알아보기 전에 조금 특이한 제도들을 먼저 설명드릴게요. 익숙해지기 어려운 말들이라서요. 


'공판준비절차'라는 말이 있습니다. 쟁점이 복잡한 형사사건의 경우 앞으로 공판이 집중적이고 효율적으로 진행되도록 하기 위해 미리 검찰과 피고인 측 변호인이 공판준비기일이라는 날에 법정에서 만납니다. 공판준비기일에는 사건의 쟁점사항을 정리하고 증거조사를 할 수 있도록 증거조사방법에 관해 논의합니다. 


'국민참여재판'이라는 말도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것 같아요. 국민이 배심원 또는 예비배심원으로서 참여하는 형사재판을 말하는데 국민참여재판이 열릴 수 있는 사건에 해당되면 재판이 시작된 첫날 판사가 피고인에게 국민참여재판을 원하는지 물어봅니다. 대부분 원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간혹 원하는 경우에는 일반 시민들이 배심원으로 선정되어 법정에 앉아 재판 과정을 다 지켜보고 평결이라는 것을 합니다. 판결이랑은 좀 다르게 배심원들이 내린 결론은 이렇습니다라고 정리한 것을 말합니다. 판사는 평결을 벗어나서 판결을 할 수도 있긴 한데 대부분 존중하려는 편입니다.  


'간이공판절차'라는 말이 생소하신 분도 계실 텐데요. 피고인이 공판정에서 자백하는 '단독재판의 관할사건'에 대해 형사소송법이 규정하는 증거조사절차를 간이화(간단하게)하고 증거능력의 제한을 완화하여 심리를 신속하게 하기 위하여 마련된 공판절차를 말합니다. 심각한 사건은 판사 3명이 한 법정에서 재판을 하는 '합의부 사건'이 되지만, 그만큼 심각한 사건이 아니면 단독판사(판사 1명)가 재판하는 '단독재판 사건'이 됩니다. 이 단독재판 사건에서만 간이공판절차가 가능해요. 



조금 특이한 절차들을 정리했으니 본격적으로 재판이 열리면 어떻게 진행되는지 순서대로 살펴볼까요?


1. 공판이 열리기 전

일단 언제 재판이 열리는지 공판기일 통지서가 우편으로 옵니다. 그런데 가끔 피해자에게 오지 않을 때가 있어요. 그래서 피해자를 대리하는 저로서는 주기적으로 검찰청 해당 사건 담당 검사실에 전화를 해서 '20** 형제 00000호 사건 처리되었나요?'하고 물어봅니다. 그래서 그때 '기소했습니다'라고 하면 그 검찰청 옆에 있는 법원 민원실로 전화를 걸어서 검찰 사건번호와 피의자 이름을 말해주고 이 사건의 법원 사건번호가 무엇인지 알려달라고 합니다. 그렇게 법원 사건번호를 알게 되면 "나의 사건검색"이라는 웹사이트를 통해서 지금 사건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2. 첫 번째 공판기일

첫 번째 공판기일은 참 중요합니다. 먼저 판사가 인정신문(피고인에게 이름, 생년월일, 주소 등을 물어보고 답하게 해서 피고인 본인이 맞는지 확인)을 하고, 이후 검사가 공소사실을 읽습니다. 피고인이 무슨 죄를 저질러 지금 여기 법정에 오게 되었는지 검사가 판사에게 설명하는 시간입니다. 공소사실 낭독이 끝나면 피고인에게 이런 일을 한 사실이 있냐고 물어봅니다. 피고인이 법정에서 자백하기도 하고, 부인(내가 그런 짓 안 했다. 또는 내가 한 일도 있긴 있지만 너무 과장되어 있어서 다툴 것이 많다.) 하기도 합니다. 그 이후에 증거조사를 거칩니다. 순서대로 적혀있는 증거목록을 보면서 피고인이 인정하는 증거는 동그라미, 인정하지 않는 증거는 엑스표를 칩니다. 그 엑스표가 된 증거들에 대해서 앞으로 법정에서 어떻게 그 증거들을 살릴지 증거신청을 받습니다. 대표적으로 증인신청을 하는데요. 만약 피해자의 수사단계에서의 진술조서나 진술서를 피고인이 증거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면, 검사는 그 증거를 살리기 위해서 피해자를 법정에 증인으로 부릅니다(14번 글).


3. 반복되는 공판기일

이후 공판기일에는 증인을 불러서 증인신문을 하기도 하고, 추가 증거를 제출받기도 합니다. 증거를 낼 때에 피해자는 꼭 검사를 통해서 내야 합니다. 법정에 나와 앉아있는 공판검사를 말합니다. 피해자가 직접 판사에게 증거를 내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증거를 내야 할지 잘 모르겠다면 지금까지 쌓여있는 증거의 내용과 순서를 살펴봐야겠죠? 증거목록을 보거나 기록 전체를 볼 수 있으면 어떤 증거를 더 추가해야 할지 감이 더 옵니다. 이를 위해서 그 재판을 하고 있는 판사님에게 '기록 열람 복사 신청'을 하면 좋습니다. 피해자도 기록을 볼 수 있는 권한이 있으니까요. 다만 판사님이 허락을 해 준 자료만 볼 수 있기 때문에 미리 그 허가를 받으려고 신청서를 내는 것입니다. 신청서를 기록 전체를 다 볼 수 있게 해주는 판사님은 사실 별로 없고, 피해자가 낸 자료나 피해자에 관련된 자료만 보게 해주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피해자의 변호사도 이 신청을 할 수 있으니 변호사가 있다면 변호사를 통해 신청하셔도 됩니다. 


4. 변론종결과 판결선고

더 부를 증인이 없거나, 더 낼 증거도 없는 것에 검사와 피고인 모두 동의하면 판사는 그 사건을 닫습니다. 어려운 말로 변론을 종결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판결 선고날짜가 잡히는데요, 통상적으로 변론이 종결된 후 한 두 달 안에 판결이 선고됩니다. 



이러한 위의 순서들은 모두 '나의 사건검색' 사이트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건번호와 피고인의 이름을 입력하면 사건을 담당하는 재판부가 어디인지, 그 전화번호는 무엇인지, 피고인은 무슨 죄로 재판을 받고 있는지 한눈에 알 수 있습니다. 재판 날짜와 시간 그리고 장소가 어디인지도 쓰여있고, 그 재판에 누가 나왔는지도 다 적혀 있습니다.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 중에 누가 무엇을 재판부에 냈는지도 날짜 순서별로 정리되어 올라갑니다. 그래서 피해자는 이 나의사건검색을 가끔 들어가 봐서 재판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확인하면 좋습니다. 


재판에 피해자의 변호사가 출석하지 못하는 것 때문에 속상하다는 피해자 분들도 계십니다. 물론 재판에 다 가면 좋겠지만 피해자는 형사사건의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피해자 변호사의 일정을 고려해서 재판이 잡히지 않아요. 그래서 간혹 변호사가 재판에 참석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기는 한데, 그 재판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공판검사를 통해 확인하거나 공판조서를 열람 복사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피해자는 증인으로 부르지 않는 한 법정에 나갈 일이 없긴 합니다. 간혹 증언은 하지 않고 의견진술만을 위해서 법정에 출석하길 원하는 피해자가 있기는 하지만, 피해자가 법정에서 진술하는 것이 피고인의 반대신문을 위한 성격이 많다 보니 의견진술만을 위한 법정출석 신청은 거의 없는 편입니다. 또한 피고인 중에는 피해자를 법정에 부르지는 않으면서도 자신의 죄를 제대로 뉘우치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럴 경우에 피해자는 법정출석 대신 엄벌해 달라는 탄원서를 재판부에 제출합니다. 


막상 공판 단계에서도 피해자가 할 수 있는 일들이 적지 않죠? 사실 공판에서도 피해자는 잘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다. 피고인이 재판에서 온갖 화가 나는 말을 쏟아내기도 하거든요. 피해자가 먼저 잘못했다든가, 분명히 일부러 저지른 짓임에도 술을 많이 먹어서 기억이 안 난다고 변명한다거나 하면서 말이죠. 


그래서 피해자도 공판에 신경을 쓰고 필요한 역할을 해야 합니다. 더 구체적인 역할 수행 방법은 다음 글에서 또 이어서 말씀드릴게요!


작가의 이전글 17. 보완수사요구? 그게 뭔가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