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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애인권법센터 May 22. 2024

21. 망하는 사건 살리기 (재판)

재판에 넘어간 이후 피해자가 챙겨야 하는 것들

가해자가 분명히 범죄를 저질렀는데도 계속 무죄를 주장하는 사건들이 있습니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재판에서 사실이 밝혀져서 가해자가 제대로 처벌을 받길 바라죠. 그러려면 재판까지 온 피해자는 무엇을 가장 신경 써야 할까요? 바로 재판까지 무사히 도착한 "기록을 살피는 것"입니다. 


물론 수사과정 중에 있을 때 기록을 보면 더 좋겠죠 그런데 수사는 굉장히 내밀한 몰래몰래 진행되는 그런 특성을 가지고 있어요. 수사하는 과정 중에 모아지는 자료는 보기 어렵습니다. 특히 피해자의 경우에는 사건의 당사자도 아니기 때문에 더욱 기록을 보기 어렵습니다. 그나마 가해자가 기소가 된 이후에는 기록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이 조금 생기는 것입니다. 


피해자보다 당연히 피고인(가해자)이 더 광범위하게 기록을 볼 수 있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볼 수 있어요. 자기 사건을 방어해야 하니까 모든 기록을 다 열어주는 거예요. 피고인은 심지어 그 사건 담당 판사보다도 더 넓게 기록을 볼 수 있어요. 피고인이 증거로 쓰는데 동의하지 않은 문서나 영상, 음성파일은 판사가 볼 수 없거든요. 그렇게 빠진 증거가 법정에서 재판을 통해 다시 증거로 들어와야만(원진술 자나 작성자가 법정에 나와서 '내가 거짓 없이 작성한 것 맞다'라고 확인하는 과정을 거침) 판사가 보는 기록에 포함됩니다. 


원래는 피해자도 거의 형사사건 기록을 볼 수 없다가, 형사소송법이 개정되면서 피해자의 재판기록 열람등사권 (열람복사권)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이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신청을 한다고 다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담당 판사의 허가가 난 부분에 한해서만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피해자는 어떻게 사건 기록을 보고 싶다고 신청할까요? 먼저 그 사건을 심리하고 있는 법원에 가야 합니다. 법원마다 방식이 조금씩 달라서 민원실에 가서 일단 '제가 피해자인 형사사건의 기록을 열람, 복사하러 왔어요'라고 말해보세요. 어떤 법원은 민원실에서 신청하라고 하고, 어떤 법원은 열람복사실을 안내해주기도 하고, 어떤 법원은 담당 재판부에 가서 직접 신청하라고도 합니다. 


신청자는 본인이 원칙이지만 피해자가 사망했거나 질병이나 장애로 인해 피해자가 직접 올 수 없는 상황이라면 피해자의 남편이나 아내, 직계친족 (본인을 기준으로 위나 아래, 쉽게 말해서 부모나 자식), 형제자매가 신청할 수 있어요. 가족관계증명서 같은 증빙서류를 가져가야겠죠?


열람은 한번 쓱 보면서 머릿속에 넣는 것을 말하고, 복사는 복사기로 복사를 해 오는 것을 말합니다. 사건에 대한 정보는 대법원 나의사건검색 사이트를 통해 검색되는 정보들로 정확히 채워 넣으면 됩니다. 



"복사할 부분"을 어떻게 쓸지 고민이 많이 되실 거예요. 대체 뭐를 봐야 될지 감이 안 오기도 하고요. 물론 처음부터 끝까지 세세히 볼 수 있다면 제일 좋지만 기록 전체를 보게 해주는 판사님은 거의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러면 결국 신청범위를 잘 선택해야 하는 것인데요, 공소장은 있어야겠죠? 증거목록도 보시면 좋아요. 뭐가 증거로 들어갔는지 감을 잡을 수 있으니까요. 피의자 신문조서와 피의자의 진술서 같은 것을 보면 피의자가 뭐라고 변명을 하는지, 그 변명이 처음부터 지금까지 어떻게 달라져왔는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피고인의 변호사가 써서 낸 서류를 보면 상대방이 어떤 법률적인 쟁점을 잡아 무엇을 중심으로 다투는 지를 알 수 있습니다. 


공소장이나 증거목록은 대체로 허가를 해 주는데, 피고인의 진술이나 주장이 담긴 것은 잘 허가해주지 않아요. 심지어 피해자 자신의 진술이 담긴 것도 불허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특히 피해자가 곧 있으면 법정에서 증언을 한다거나 하는 경우에는 미리 보고 연습을 해 올까 봐 그러는지 피해자의 진술조서나 진술서조차 불허하기도 합니다. 


그러니 우선순위를 정해서 신청해 보세요. "1. 전부 다 보고 싶습니다. 2. 그게 안된다면 00을 제외하고라도 다 보고 싶습니다. 3. 그것도 안된다면 최소한 0, 0, 0, 0는 꼭 보게 해 주세요."라고 신청을 하는 것입니다. 



"사용용도"도 잘 써야 합니다. 그냥 '궁금해서'라고 쓰거나, '피고인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서'라는 식으로 쓰면 허가해 줄까요? 왜 이 기록을 복사하는 것이 필요한 지 설득력 있게 써야겠죠. 개인의 복수심이나 궁금함 때문에 신청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돕기 위해서, 향후 재판 진행에 어떤 기여를 하기 위해서 보고 싶은 것인지 잘 적어야겠죠. 



"복사방법"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법원 내 복사기보다는 제 개인 스캐너를 이용해서 복사하겠다고 신청하는 편입니다. 법원 복사기로 복사하면 종이도 낭비되고 한 장당 50원씩 돈도 내야 하거든요. 그리고 이 돈도 현금이나 카드로 내는 것이 아니라 법원 1층 신한은행에 가서 그 액수만큼 '인지'를 사 오거나, 인터넷으로 돈을 낸 후 전자인지를 출력해야 합니다. 스마트폰으로 찍어오는 것은 안됩니다. 요새는 개인 스캐너도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법원도 늘고 있다고 하니 신청하면서 미리 물어보는 것이 제일 정확합니다. 



만약 판사님이 내가 신청한 것보다 너무 조금만 허가를 했다거나 아예 허가를 안 해주면 피해자 입자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대로 포기하기에는 너무 허무하겠죠? 그럴 때는 "검찰청에 가서 재판 기록 신청하기"를 이용해 보세요. 재판이 시작되었다고 해도 검찰청에서 법원에 기록을 대출받아 가져오기도 하는데, 그렇게 검찰청에 재판 기록이 와 있을 때 피해자가 가서 열람이나 복사하는 제도를 말합니다. 


재판 중인 기록을 피해자가 검찰청을 통해 열람이나 복사하는 제도는 검찰청마다 일관된 실무가 있는 것이 아니라서 꼭 검찰청 공판실에 먼저 물어보아야 합니다. 어떤 곳은 신청서를 팩스로 보내라고 하기도 하고, 어떤 곳은 직접 와야지만 신청이 된다는 곳도 있거든요. 제 경험을 일반화하기는 어렵겠지만, 검찰청을 통해 재판기록을 보는 것은 과정이 조금 더 까다롭고 볼 수 있는 범위는 법원보다 조금 더 넓었던 것 같아요. 


이런 신청과정, 신청 이후 실제 복사해서 사건 내용을 잘 이해하고 분석하는 것이 너무나 어렵게 느껴지시는 분들이 있으실 거예요. 그런 분들께 '피해자 국선변호사'제도를 잘 활용하시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피해자의 국선변호사 또는 피해자의 변호사는 피해자를 대리해서 기록 복사를 신청하고, 복사를 해 올 수 있습니다. 그 내용을 법률적으로 분석해서 추가적으로 필요한 의견서를 낼 수도 있습니다.  


반성하는 것 같던 피고인이 사실은 뒤로 변명만 일삼고 있다던가, 수사과정에서는 주장하지 않던 새로운 변명을 더했다던가 하는 것은 재판 기록을 통해 알 수 있으니 조금 번거롭고 막막하더라도 주위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재판의 기록을 잘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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