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자기소개 - 79년생 임효리는 화곡동에 산다.
반년만에 압구정으로 외출을 했다.
사회 첫 직장에서 인연이 된 선후배들의 정기모임일 뿐인 날이지만 나에게는 3년 만에 참석한 아주 특별한 날이었다. 출장 때문에 참석하지 못한 호연이를 제외하고 나포함 5명이 모였다. 우리는 같은 시절 하나의 목표를 향해 한 마음으로 뭉쳤었고 치열했으며 함께 싸워 본 적 있는, 전우이다. 전우애를 느낀 사이는 서로 무한정 인정한다.
난 그 시절의 기분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결론은 2차까지 갔고 많이 마셨다.
나는 79년생이고 화곡동에 살고 있는 임효리이다. 임효리는 화곡동에 산다. 79년생 임효리는 화곡동에 산다.
화곡동에 도착한 것은 자정이 넘었고 모두가 잠든 집에 도둑고양이처럼 살금 들어갔다.
회식을 하고 엄마 눈치 보며 귀가했던 20대처럼 말이다. 오전 11시가 넘어까지 침대에 몸을 뭍은 채 잠을 깰 생각도 없었다. 핸드폰이 울렸고 몇 마디 대답을 끝내자마자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초인종이 울렸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15년 지기 동네 친구는 앞도 뒤도 없이 엄지 손가락을 추켜올리며 '멋있어'라고 말한다.
입버릇처럼 '멋있다'를 말해주는 그녀는 나보다 2살 어리지만 우리는 친구다.
애들 키우며 만난 엄마들 중에서 친한 사람을 부르는 호칭은 애매하다. 그래서 나는 동네 친구라 부르지만 그 동네친구 미진이는 나를 부를 때 항상 '언니'라 부른다. 학부형이 된 엄마는 한 번쯤 경험이 있겠지만, 아이 나이가 같으면 엄마들 나이도 같아진다. 꼬박꼬박 언니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따박따박 아무개 씨라고 이름을 부르는 사람도 있고, 애들 이름을 앞에 붙여서 현빈맘, 승희맘이라 부르기도 한다.
"정말? 82년생이면 자기보다 어리잖아?"
한 두 번 만나 서로 말을 섞다 보면 안다. 대충 나보다 나이가 많은 연장자인지 어린지 정도말이다. 호칭이 문제가 아니다. 애티튜드가 나를 자극하는 사람이 있다. 정답이랄 것은 없지만 그러다 안 보게 되는 사람도 더러 있다. 그렇게 마음속에서 오미트(omit)를 시킨다. 여자들은 결혼 후, 제 나이도 제 이름도 사라지기 쉽다.
미진이는 누가 봐도 한국토종처럼 생기지 않았다. 키는 나보다 10센티도 넘게 크고, 골반은 넓어서 허리가 잘록해 보인다. 얼굴은 러시아 모델처럼 눈은 움푹 들어가고 눈꼬리는 길게 빠져있다. 물론 피부도 뽀얗다. 그 늘씬한 몸매에 가끔 캉캉치마를 입고 남편을 맞이하는 매력 넘치는 여자다.
나로서는 처음 보는 물건 같은 그 짧으면서도 층층으로 레이스가 있는 캉캉 치마를 입고 있는 모습이 낯선 건 당연하다. 이 신기한 옷을 입고 남편 퇴근할 때 맞이한다고 한다. '오늘도 수고했어요. 여보~' 뭐 그런 뜻이란다. 그 또한 나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이지만 정말 멋진 건 그녀다.
내 집에 들어온 미진은 연신 '멋있다, 역시 멋있어'라며 나를 향해 '효리 짱'이라고 한다. 말을 듣는 순간 또 헷갈린다. 가끔 헷갈렸다. 내가 언니라는 사실을 각성시키는 것 같기도 하다. '효리 짱'은 가수 이효리가 듣는 말 아닌가?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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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곡동 임효리는 40대 후반의 두 아이 엄마이고 소소하게 자신의 꿈을 키워가고 있다. 그녀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 속 사람들의 이야기를 해 본다. 그녀의 이야기는 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