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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깨꽁어멈 May 30. 2023

백혈병 아이의 엄마는 죄인입니다.




2016년 6월 2일 날짜를 잊으래야 잊을 수도 없을 만큼 심장에 각인된 것처럼 선명한 그날.

인천에서 서울성모병원으로 올라와 혈액검사를 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사이 미니미는 배가 고프다고 난리가 났어요.

지하 1층 푸드코트에서 뭘 좀 먹이려 하는데 문 닫을 시간이 다 되기도 했고 어른들은 초조한 마음에 입맛도 없어 먹고 싶다는 돈가스를 포장해 와 응급실 베드에서 조용히 저녁밥을 먹이고 있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검사 결과가 나왔나 봅니다.

의료진이 저희에게 오더니 이 정도 수치면 골수검사를 하지 않고도 소아백혈병 확진이라고 합니다.

백혈병이라는 단어는 우리 부부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조차 떠오르지 않더군요.

신랑이 오진 확률은 없는 것인지를 간신히 묻는데, 의료진은 나에게 차디찬 눈빛을 보내며 말을 꺼냅니다.


"아이가 이 지경이 되도록 엄마는 뭘 한 겁니까? 이 정도면 이미 증상이 여러 가지 나타나 모를 수가 없었을 텐데요."


의료진의 이 말은 제 마음에 비수처럼 꽂힙니다.


아... 내가 모자란 탓에 우리 아이가 아프게 되었구나.

부족한 엄마한테 태어나서 내 아이가 고생을 하는구나.

이렇게 예쁘고 착하고 순한 아이가 엄마 잘못 만난 탓에 아플 때가 어딨다고 몹쓸 병에 걸렸을까...


이 정도의 수치면 피곤해서 누워있는 시간이 많았을 것이고, 코피도 자주 났을 테고, 먹는 것도 잘 못 먹어 혈색도 좋지 않았을 텐데 왜 이제야 왔냐는 질문이 바로 이어졌어요.


저는 서러운 마음에 눈물을 흘리며 "선생님~ 저희 아이는 지금까지 코피가 난 적도 없었고 누워서만 지낸 적 없이 엄청 활발하게 뛰어다니는 아이였습니다. 보시다시피 먹는 것도 저렇게 잘 먹어 혈색이 좋지 않았던 적도 없었습니다."라는 말을 전하며 밥을 먹고 있는 아이 쪽을 바라보았습니다.


그제야 아이를 보시더니 "아주 가끔 아무 증상이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에는 사망한 뒤에 백혈병이라는 것이 밝혀집니다. 미니미가 그런 경우인 것 같네요. 지금이라도 병원에 오신 것이 정말 다행입니다."라는 위로 말씀을 하시는데 제 귀에는 전혀 들리지 않아요.


이미 저는 죄인이니까요.

소아백혈병 확진을 지금 막 받은 아이의 엄마는 하루아침에 이렇게 죄인이 되었습니다.

병실이 날 때까지 응급실에 있는 격리실에 대기하는 동안 저는 제 자신을 얼마나 원망하고 또 원망하고... 수없이 원망하고 또 자책했는지 모릅니다.


저 같은 엄마한테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저 같은 아내를 두지 않았더라면, 내가 이 남자와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이 남자를 사랑하지 않았더라면... 복이 지지리도 없는 나 때문에 온 가족이 이렇게 고통받을 필요도 없었을 텐데라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저를 미치게 만듭니다.


소아백혈병을 확진받은 첫날은 온통 제 자신에 대한 원망과 자책을 하며 정신이 나간 상태로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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