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이외에 일하는 이유가 있어야 해
친구야, 드디어 금요일이다!
이번 주는 유독 일정도 많고 힘들었어. 내가 잘하는 업무만 할 수 없고, 가끔은 동의하지 않는 방향으로 진행되는 일을 이끌어야 하는 것이 직장인의 고달픔이겠지. 지난주에 흔들리지 않는 삶을 위한 나만의 길잡이 별을 편지에 담아보자 했잖아. 일상의 고단함은 잠시 접고 다시 그 이야기를 써볼까 해.
마흔 언저리에서 커리어 사춘기를 겪는 사람들이 많더라. 고민의 시작은 육아, 아이들 교육, 혹은 내가 진정 원하는 것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하는 것 같아. 다행히도 나는 지금까지 남들보다 조금 덜 흔들리고 중심을 잘 잡고 살아가고 있어. 되돌아보니, 취업 준비 시절에 던졌던 질문들이 지금껏 나를 지켜준 것 같아.
“경제적 독립 이외에 나는 왜 일을 해야 하는가?”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나에게 중요한 가치는 무엇인가?”
“사회 구성원인 개인에게 직업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
졸업을 앞두고 이 질문을 묻고 또 물었어. ‘왜’라는 질문에 어느 정도 납득할 만한 이유를 찾기 전까지 취업 준비를 할 수 없었고, 내게 중요한 가치 (why)를 먼저 알고 싶었어. 그 시절, 직업이나 직장보다 이 물음들이 내 삶의 목록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지. 스스로 납득할 만한 답을 찾게 되면 내가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 자연스럽게 알게 될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야.
질문의 끝에 찾은 내 신념 중 하나를 써볼게.
“타고난 배경과 사회적 조건이 우리 삶을 결정지을 수 없다.”
Your background and identity can’t determine your life outcomes and well-being.
세상에 기여하고 싶은 게 확실해졌어. 내 삶의 큰 방향을 알게 된 후에는 중간에 잠깐 쉬어가거나 샛길로 가게 되더라도 덜 흔들렸던 거 같아. 한국에서 직장을 그만두고 미국에서 다시 일할 때까지 5년이 걸렸어. 그 사이에 두 아이를 키우면서 대학원도 다니며 잘 버텼어. 예상치 못한 상황들 때문에 내가 가고 싶은 길에서 잠시 벗어날 수도 있지만 난 결국 내가 갈 방향을 아니깐 언제든 다시 돌아올 수 있었어.
Why를 물은 지 15년, 그리고 지금의 일터
24살의 나는 스스로 왜 일을 해야 하는지 물었고, 어느덧 15년이 훌쩍 지났네. 지난 편지에 어떤 일을 하는지 짧게 적었는데 이어서 이야기해볼게. 난 NYC Mayor’s Office for Economic Opportunity 에서 데이터 팀장으로 일하고 있어. 이 오피스는 빈곤 해결(anti-poverty)과 공정성 (equity) 향상을 위해 설립됐지. 모든 일이 흥미롭긴 하지만 내가 가장 관심 있는 일은 갭 분석 (gap analysis)이야. 특정 서비스에 대한 수요 (needs)와 실제 제공되는 서비스 (availability) 사이의 차이를 파악하는 업무지. 궁극적으로 도움이 더 필요하지만, 정부 프로그램이 닿지 못하는 곳을 찾아 서비스를 확대할 곳과 반대로 줄여야 할 곳을 결정할 인사이트를 제안하고 있어.
공공분야에서 분석할 때 어렵고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건 개념에 대한 기술적 정의 (technical defiition)를 끌어낼 때야. 예를 들어, 정부 프로그램의 접근성 (accessbility)은 어떻게 정의하고 수치화할 수 있을까? 수익성 향상이 핵심 과제인 사기업은 명확한 성과 지표가 있지만, 공공분야 업무는 미션과 가치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정량화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아. 그래서 때론 격렬한 논의도 하고, 그렇기에 업무 진행자의 시선과 가치가 중요한 역할을 할 수밖에 없지. 어렵지만 끊임없이 가난의 사회 구조적 원인을 고민하고, 그 생각들을 일에 반영할 수 있어서 난 지금 일터가 참 좋아.
유일한 동양인이기 때문에
실제로 내 의견이 많이 반영되었던 프로젝트가 있어. 한국의 무더위 쉼터와 유사한 쿨링 센터 (cooling center)가 팬데믹 동안 감염 확산 위험 때문에 문을 열지 못했거든. 이용자 대부분이 집에 에어컨이 없는 노인과 취약계층이라 폭염 위험에 그대로 노출될 수밖에 없었고, 시 정부는 폭염 사고를 막고자 저소득층 노인 가정에 에어컨과 전기요금을 지원하기로 했어.
우리 팀은 이미 사회복지 서비스를 받는 시민의 거주 정보를 바탕으로 우선 대면 홍보할 지역을 찾았어. 이미 비상식량/현금 지원, 무료 의료 서비스 등을 받고 있다면, 에어컨 지원도 필요할 거란 생각이었지. 하지만 내 의견은 조금 달랐어. 언제나 사각지대가 있기 때문에 현 이용자 정보로는 또 누군가를 놓칠 수밖에 없어.
뉴욕에 살면 출신 문화권에 따라 사회복지 서비스에 대한 인식이 너무 다르다는 걸 목격할 수 있어. 한국, 중국, 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 출신의 이민자들은 복지 서비스를 받는 사실에 대해 수치스럽게 생각해. 사회적 지원을 받기보다는 개인적 네트워크 안에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이 강하지. 언어 장벽도 정부 프로그램을 이용하지 않는 큰 이유 중 하나야. 당시 분석팀 중 유일한 동양인이었던 나는 이런 문화적 차이를 가볍게 보지 않았고, 이와 관련된 학술 연구 자료를 팀원들과 공유했어. 아시아계 노인 빈곤율이 절대 낮지 않음에도 정부 서비스를 상대적으로 덜 이용하고 있다는 걸 모든 팀원이 알게 된 계기가 되었지.
이 과정을 통해 각 이민자 커뮤니티 문화에 맞춘 보다 다양한 홍보 정책을 세우게 되었어. 영어 외 다른 언어를 사용할 수 있는 홍보 직원들을 배치하고 이민자 단체를 통해 커뮤니티 모임을 여는 등 그동안 사각지대에 있었던 사람들을 최대한 포함시킬 수 있는 방안을 더 많은 사람들과 고민하게 되었지.
프로젝트의 마무리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내 목소리에 귀 기울여 주었던 동료들이 있어서 감사했어. 스스로의 편견과 무관심을 인정할 줄 아는 용기 있는 동료들이 곁에 있어 나의 일터는 여전히 꽤 괜찮은 곳이야.
*본 콘텐츠는 창고살롱® 레퍼런서® 이수진님과 창고살롱이 공동 기획, 편집하여 유료서비스 <레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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