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 프롤로그: 기억하고 싶은 순간들을 기록하려 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한다. 우리는 외부에서 들어오는 자극을 계속해서 받아들이고 그것에 반응하며 살아가고 있다. 끊임없이 이루어지는 이러한 작용/반작용의 과정을 거쳐 우리는 삶에 대한 자신만의 자세를 만들어 나가고 삶의 기준들을 세우게 된다. 한 인간을 떠받치는 신념과 가치는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어떤 환경에서 자라왔는지, 주변에 어떤 사람들이 있었는지, 더 나아가 선천적으로 주어진 태어난 국가와 사회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무엇이었는지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살아가는 곳"과 소속된 조직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공간과 주변 환경이 주는 힘은 대단히 크다. 나의 가치관과 에너지와 잘 맞는 곳이 분명히 어딘가에 있을 테고 그곳을 찾아야 하는 게 삶의 미션 중 하나 생각한다.
이런 나에게 11년 전 우연히 뉴욕으로 이주하게 된 건 큰 행운이었다. 나는 뉴욕이 참 좋다. 5번가의 화려한 에비뉴, 커리어에서 탑티어가 될 수 있는 월스트리트, 전 세계에서 끊임없이 몰려드는 셰프들이 오픈하는 고급 레스토랑들 때문은 아니다. 내가 뉴욕을 사랑하게 된 순간들을 앞으로 하나씩 나누겠지만 먼저 한 가지 팩트만 프롤로그에 나눠보려 한다.
공식적인 집계는 없지만 뉴욕의 다양한 언어에 대해 연구하는 한 시민단체 (Endangered Language Alliance)에 따르면 뉴욕시에는 700여 개의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다. 현 인류가 사용하는 언어가 약 7천 개라고 하니 10%의 언어가 한 도시에 몰려 있는 것이다. 실제로 이민자가 많이 사는 퀸즈에서 지하철을 타고 가다 보면 단 한 명도 영어를 쓰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 넓고 넓은 세상의 다양한 지구인들이 모여 사는 곳이 뉴욕이다.
왼편의 지도는 주민들의 모국어를 색깔별로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어, 붉은색은 아시아 대륙에서 온 언어를 상징하고, 초록색은 유럽에서 온 언어들, 보라색은 아프리카에서 온 언어들이다. 이 지도는 뉴욕의 다양성을 보여주지만, 그 이면엔 더 큰 의미가 있다. 언젠가 그 이야기도 정리해서 올리겠다.
뉴욕은 너무나 매력적인 도시이고 이런 도시를 애증 하는 뉴요커들로 가득한 곳이다. 전 세계의 많은 도시 중에서 도시의 정체성과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정체성이 가장 다이내믹하게 영향을 주고받는 곳이 뉴욕이라 생각한다. 다양한 배경과 개성을 가진 뉴요커들이 만들어 나가는 도시. 정치적 탄압을 피해 전 세계에서 온 이주자들이 만든 도시. 그래서 겉으론 도도하고 차가워 보이지만 사실은 그 어느 도시의 사람들보다 한 개인과 인간성을 존중하는 뉴요커들.
한 단락으로 끝내기엔 조금 많은 내가 발견한 뉴욕의 이야기를 써 나가보려 한다. 뉴욕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도시가 나를 위로했던 순간, 나에게 용기를 주었던 순간, 나를 성장시켰던 순간들을 기록하려 한다.
*이미지 출처: Perlin, Ross, Daniel Kaufman, Jason Lampel, Maya Daurio, Mark Turin, Sienna Craig, eds., Languages of New York City (digital version), map. New York: Endangered Language Alliance. (Available online at http://languagemap.nyc, Accessed on 2022-1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