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에르노 - “시처럼 쓴 추억도 환희에 찬 조롱도 없을 것이다.”
작가 본인 아버지의 삶을 소재로 쓴 소설이다. 공식적으로는 소설로 분류되는 책이지만 보통의 소설과는 매우 다른 결을 가졌다. 아버지를 소재로 했기에 에피소드들은 사실적이고 개인적이지만 감정은 극도로 배제되어 있다. 또한, 소설이지만 웬만한 사회학 개론서 보다 더 완벽하게 계급성과 문화자본을 설명해 준다. 책을 읽고 검색해보니 실제로 작가는 프랑스 사회학자 부르디외의 영향을 굉장히 많이 받았다고 한다.
소설은 크게 두 가지 기둥을 가지고 있다. 첫 번째는 1899년 프랑스에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나 평생을 노동자 계급으로 살았던 아버지의 삶이다. 노동자 남자의 특성, 이를테면 “취향”이라는 것이 없다는 사실, 노동자가 쓰는 말투와 행동 방식들을 그의 생애를 회고하며 담담히 풀어나간다.
변함없이 돌아오는 계절, 단순한 기쁨 그리고 들판의 고요. 아버지는 남의 밭에서 일했고, 그곳에서 아름다움을 목격하지 못했다. 대지의 어머니의 장엄함과 다른 신화들은 그를 비껴갔다.
그렇지만 욕망을 위한 욕망이었을 뿐이다. 사실상 무엇이 아름다운지, 무엇을 좋아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으니까. 아버지는 유행하는 색깔과 모양을 따르기 위해 페인트공, 소목공의 충고를 늘 따랐다. 하나씩 물건을 골라 꾸밀 수 있다는 생각까지는 하지 못했다.
두 번째 이야기 기둥은 중산층 지식인이 된 딸과 노동자 아버지 사이에 생긴 거리감에 관한 것이다. 그의 딸 (작가 본인)은 부모와 달리 고등 교육을 받고 부르주아와 결혼을 하면서 계급 이동을 하게 되고 사춘기 때부터 서서히 생겼던 아버지와의 거리감은 더 확고히 자리를 잡게 된다. 그녀는 자신도 연관된 이 부분에 대해 역시나 감정은 배제한 채 훌륭하고 담담하게 회고했다.
나는 아버지에게 <자빠지다> 또는 <15분 남은 11시>라는 표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주며 고쳐주려 했다. 그는 격렬하게 화를 냈다. 또 한 번은 <엄마, 아빠가 항상 그렇게 엉터리로 말하는데 내가 어떻게 선생님께 혼나지 않을 수가 있겠어!>라고 말하며 울어버렸다. 그는 서글픔을 느꼈다. 내 기억 속에 언어에 관한 모든 것은 돈 문제보다 더한 원망과 아픈 언쟁의 원인이었다.
나는 그가 더 이상 내게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했다. 그의 말과 생각은 프랑스어 혹은 철학 수업, 반 친구들의 빨간 벨벳 소파가 있는 거실에서는 쓸 수 없는 것들이었다.
사춘기란 결국 부모로부터 분리되면서 자아를 형성하는 과정이고 이는 자연스레 우리 가족의 계급성을 일깨워 줄 수밖에 없다. 나의 부모님이 사회에서 위치한 자리, 그리고 그것은 결국 내가 이 사회에서 위치한 자리이다. 노동자의 문화로 가득 차 있는 어느 집 - 사이를 오가는 그들의 언어, 거리감을 유지한다거나 서로를 배려하는 예절(?)은 없는 곳, 취향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인테리어. 하지만 집 밖에서는 새로운 문화들이 나를 자극한다. 문학을 읽고, 라디오를 듣고, 영화를 보며 그것에 대해 토론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아니 에르노의 글을 읽으면 이렇게 많은 노동자 가정 출신 아이들의 성장 과정이 눈앞에 그려진다. 그래서 그녀의 글은 웬만한 사회학 교과서보다 훌륭하다. 자신의 삶을 끌고 들어와 글을 읽게 만드니깐.
나는 계급이동을 한 그녀가 스스로 고백한 아래 문장이 좋았다. 아니 에르노의 이 책을 읽으며 내가 글을 써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조금 더 명확해졌다. 2023년엔 그녀의 책들을 다 찾아서 읽어봐야겠다.
이제 와서 이 세세한 것들의 의미 해석을 꼭 필요한 일 이상으로 스스로에 강요하는 것은, 그것이 무시해도 좋은 것이라고 확신하며 거부했었기 때문이다. 모욕적이었던 기억만이 그 일들을 간직하게 해 줬다. 아래에 있던 세계의 추억을 마치 저급한 취향의 어떤 것처럼 잊게 하려고 애쓰는 세계, 내가 살고 있는 이 세계의 욕망 앞에 무릎을 꿇었던 것이다.
Title: 남자의 자리 (La Place)
Author: 아니 에르노 (Annie Ernaux), 신유진 옮김
Publisher: 1984boo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