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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땅 위에 머무는 바람 Dec 19. 2022

아둘 둘과 집에서 죽긴 싫어

여행이 생존으로 변한 제주 한 달 생존기의 서막



 “안녕하세요. 4학년 학부모인데요,  정말 이번 여름방학이 3 달인가 다시 확인 차 전화를 드려요. 정말 여름방학이 3달이 맞나요?”

“홈페이지 게시판에 보신 그대로예요. 게시판을 참고하세요.”

“네! 지금 보고 전화를 드린 건데 그게 맞다는 말씀이시지요?”

“아 그러니까 홈페이지에 나온 그대로니까 궁금하신 사항이 있으시면 언제든 홈페이지를 보시면 됩니다.”     

  오늘 이런 문의 전화를 많이 받으셔서 그런가 아니면 귀찮아서 대충 기계적으로 둘러대고 끊고 싶어 그러는지 상대방의 의도는 파악하고 싶지 않다는 태도로 돌아오는 대답에 싱겁게 통화가 끝나버렸다. 학교라고 또 내 딴에는 속으로 흥분한 마음을 감추고 차분하고 교양 있는 목소리의 학부모이고 싶어서 얼마나 속으로 연습까지 해서 어려운 마음으로 전화한 건데.     

하아.. 올여름방학이 3 달이라니... 3 달이라니...






  난 초등 2학년, 4학년 아들 둘 엄마다. 더 이상 뒤에 말은 생략하겠다. 내 글이 갑자기 잘 보이기 시작했다면 아마 기분 탓일 테다. 벌써 2년 넘게 코로나 속에서 두 놈과 쫙 달라붙어 살고 있는데 여름방학마저 3 달이라니... 망할 코로나 덕에 아이들이 그나마 하나 잘 다니고 유일하게 몸을 움직이고 운동하던 검도 도장도 문을 닫게 되면서 마지막 날 아이도 나도 참 많이 울었다. 그 이후 아이들은 다시 아무 운동도 하기 싫어했고 그때부터 첫아이는 눈에 띄게 살이 찌기 시작했다. 게다가 학교가 다시 문을 열었어도 뻑하면 반에서 확진자가 나왔거나 접촉자가 발생했다는 이유로 불시에 하이클래스 알림이 오기 일수였고, 그 후 바로 수업 중지가 되고 또 자연스럽게 이어서 온 가족이 코를 쑤시러 다니기를 반복하며 사는 애나 어른이나 얼마나 지겨운 일상이던가..      

  그러한데 더운 여름날 이 코로나 시국에 어디 맘 편히 놀러 가기도 어려운데 아침, 점심, 저녁 두 아들놈들 끼고 더운 김 팍팍 쬐어가며 삼시세끼 밥 해 먹여가며 석 달을 집에서 지지고 볶을 생각을 하니 아직 신학기가 시작하기도 전부터 머리에 전기가 흘렀다. 지금도 매일 여전히 하고 있는 일이지만 6개월 후 미리 예고된 재앙을 피할 수는 없겠지만 곧 닥칠 공습 예보 앞에 준비태세는 필요한 상황이다. 넋 놓고 당할 수만은 없는 일. 이게 그럴 일이다. 이번 1학기가 끝나고 학교 대공사 관계로 여름 방학이 3 달이고 겨울방학은 없는 학사일정이었다. 정신을 차리자. 어떻게 해야 할 것 같니 나야. 정신을 차리고 제발 생각이란 걸 해 보렴.




“여보 나 제주도 가고 싶어. 애들 이번 여름 방학 3 달이더라. 그런데 나 그냥 그렇게 집에서 애들이랑 씨름하며 죽긴 싫어. 나도 남들처럼 제주도 한 달 살기 그거 해 보고 싶어.”     

 위기가 기회라고 그 틈에 아이들 이제 더 크면 이렇게 공식적으로 긴 시간 여행 갈 수 있는 시간이 흔치 않을 기회일 거다. 아마 어쩌면 다시없을 거라고도 오바육바하며 양념을 쳐가면서 내 말에 힘을 실었다. 그리고 당신이 일 때문에 안된다면 난 아이들이랑 만이라도 꼭 간다고 승부수를 두었다. 나 지금 진지하다 남자야. 그러니 부디 흘려듣지 말고 눈동자 자꾸 옆으로 흘리지 말고 똑바로 들으라는 듯이 단호하고 단단하게 제주도 한달살이가 가고 싶은 이유와 가야만 하는 상황들에 대해 말했다. 한 달이 어려우면 2주라도 보내 달라고 나중엔 애걸조가 되었다. 결혼하면서 타의 반 자의 반으로 밀리듯이 일을 그만두고 집에서 아이 둘만 키우며 간이 작아질 대로 작아지고 소심한 쫄보가 내지른 선포에 우리의 제주도 한 달 살기 계획은 그렇게 1월부터 천천히 준비하기 시작했다.     





  나는 조용한 시골마을에서 태어나 쭉 자랐다. 어릴 적 우리 동네에는 내 또래가 없어서 이웃 마을로 전력 질주하며 달려가서 만나고 놀다 와야 할 정도의 깡시골로 거친 산과 들을 거침없이 쓰레빠를 신고 뛰어다니며 놀던 여자이다. 봄이면 산천에 향기가 진동하는 아카시아 꽂을 따다가 흩뿌리며 뛰어 놀고, 여름이면 냇가에 몸을 담그며 고디를 잡는 재미와 여름방학 과제로 곤충채집, 식물채집은 백과사전과 비슷한 수준으로 아주 종류별로 쌉가능했던 곳에서 살았던 시골 여자. 학교 소풍은 매번 앞산 아니면 옆산 아니면 뒷산으로 가고 정상까지 오르지 못할 시 점심으로 싸간 김밥은 못 먹는 그런 지역에서 나고 자란 아주 강인하고 자연친화적으로 살아온 여자이다. 그러다 대학교를 진학하면서 도시로 와서 살며 도시남자를 만나 도시에서 오래 살다 보니 간간히 삶이 지치고 마음이 어려울 때 훌쩍 자연으로 가고 싶은 순간들이 많았다. 그래서 오랜 시간 동안 바라기를 잠깐 바람 쐬고 오는 식 말고 오래 충전하고 쉼을 얻는 그런 시간을 갖고 싶었나 보다. 그런 허황된 망상을 꿨다. 내가.       




  내 인생에 제주도 한 달 살기라니. 매일같이 시간이 비면 들여다보는 인스타나 블로그들에서 보이던 발리, 하와이, 해외 한 달 살기도 이제는 흔하게들 보였지만 난 제주도를 일주일 이상 가본다는 것만으로도 들떠서 마냥 꿈만 꾸었다. 아이들과 제주도에서 시간과 날씨에 매이지 않고서 매일 바다와 오름과 자연 속을 누비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다. 제주도 관련 책과 오름 지도를 사서 매일 밤 자기 전에 들여다보다 잠들며 부풀대로 부푼 기대감으로 힘을 얻고 살던 아줌마는 1학기 아이들과 씨름하며 힘들다가도 곧 다가올 여름 프로젝트 덕에 입에 미소가 지어지고 그래 조금만 더 참자하며 훌쩍 제주도로 떠날 그날만을 기다리고 기다렸다. 그렇게 6개월을 꿈꾸고 기다렸던 나의 로망, 그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자연과 함께하는 여유로운 우리의 제주 한달살이가 제주도 한 달 생존기가 될지는 꿈에도 모른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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