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땅 위에 머무는 바람 Dec 19. 2022

그래서 제주도에 누구랑 간다고

대 망각한 너무나 큰 사실, 그러나 문제의 핵을 놓친 계획

  제주도 한 달 살기 준비는 짐 챙기는 일부터가 만만치 않았다. 하루만 다른 곳에서 숙박을 하더라도 필요한 물건들이 정말 여러 가지로 많은데 한 달 동안 4인 가족이 먹고 쓰고 입고 해야 할 것들과 아이들 공부할 것들과 관련된 짐들을 싸자니 정말 입이 떡 벌어지게 많았다. 우리 어디 이사하니.    

 

  그도 그럴 것이 나랑 사는 세 남자의 특성 때문에 더한 일이다. 내가 결혼한 김 씨 남자와 그 미니미들. 큰 남자를 K1, 그다음 작은 미니미들을 출생 순서대로 K2, K3라고 하겠다. 자기들끼리 어디 산책이나 편의점이라도 출동할 때 저러고들 나간다. 맨날 우리 K들이 힘을 합쳐서 엄마를 도와줘야 한다고 구호를 외치는데 제발 나는 댑둬유~ 댑둬주는 게 돕는 거 여유~~라고 말해 주고 싶다. 나한텐 출생 순서 가릴 것 없이 깡그리 다 문제의 핵 같은 존재감을 내뿜는다. 때때로 각각 다른 상황에서 각각 다른 지랄들을 하곤 하지만 그때마다 한두 명은 눈치껏 빠지거나 죽은 듯 가만히 있어 준다든지 내 기분을 파악하고 재빨리 필요한 도움을 주는 행동들을 요즘은 종종 하곤 하기 때문에 그나마 내가 숨구멍은 트이고 사는 것 같다. 이 정도까지만도 키우는데 정말 힘들었다.     

  특히 K1은 내가 자체 생산을 하지 않았기에 기본 데이터베이스가 나에게 없는 관계로 기본 세팅값이 아주 맘에 들지 않지는 않지만 아예 처음부터 눈치, 코치, 상황 파악 및 사고력, 이해력, 공감 능력 등등등을 기본값으로 탑재하지 못하고 이 세상에 나왔기에 특히나 내가 재생산하느라 너무너무 고단하고 피곤한 지난 10년 결혼생활이었다. 이건 본인 입으로도 인정하고 이제 나랑 대화도 좀 되고 말 좀 통하지 않냐고 하며 으스댄다. '아... 어머니.. 맨날 눈만 뜨면 날 잡지 말고 아들 좀 일찍부터 잡지 그러셨어요'라는 말이 어머니를 뵐 때마다 목구멍까지 올라와 막혀있다.     





  암튼 그 KKK들은 지저분한 거, 냄새나는 거, 몸에서 땀나는 일, 몸이 불편하거나 배기는 일 등등을 아주 아주 싫어한다. 캠핑보단 펜션, 펜션 보단 집을 더 선호한다. 낡고 오래되고 좁은 집이라서 아이들이 점점 커가며 덩치 큰 세 남자들이 툭툭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부딪히며 살면서도 잠깐 어디 다녀오거나 외출하고 집에 돌아오면 현관에서부터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와 역시 우리 집이 최고라니깐!’ 이런 말을 당골 멘트로 돌아가면서 하고 사니 무슨 말을 더 하겠는가. 집돌이들.     

  그래도 남자아이들이니 자연에서 하룻밤 보내고 밖에서 자는 경험과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어서 글램핑장을 한번 간 적이 있다. 막 짐을 부리면서 숯불도 피우고 맛있는 저녁을 먹자고 하는 찰나에 주변 산에서부터 온 사방에서 날아드는 파리, 모기, 이름 모를 야생 벌레들까지 몰려오니 아이들이 긴장하고 팔에 파리나 벌레가 앉는 것도 싫고 눈앞에 이리저리 왔다 갔다 보이는 것만도 싫다고 질색팔색을 하며 우는 통에 그 글램핑장 모기, 파리는 내가 다 잡아야 할 판으로 전기 파리채를 들고 사방으로 미친 여자처럼 휘두르고 다니느라 숯불구이 고기가 입으로 들어가는지 내가 먹긴 했는지도 모르겠더라. 또 예민하고 까칠하신 분들이라 잠자리가 배겨서 그 날밤 잠을 한숨도 못 자고 온 식구가 밤을 꼴딱 새우고 날이 밝자마자 집에 돌아온 이후로 캠핑이나 글랭핑은 다시는 아무도 입 밖에 내지도 않고 시도도 안 한다.





 그렇다. 그날의 그 한 사건만 빨리 떠올렸어도 앞날을 예견할 수 있었을 텐데 난 그만 제주도에 가고 싶은 지극히 이기적이고 주관적인 내 꿈과 욕망에 눈이 멀어 내가 지금 누구랑 가야 하는지를 잊고 깊은 망각에 빠졌던 것이다.  셋 다 딱 봐도 몰캉몰캉 고생이라곤 안 해 봤을 것 같은 서울남자상들이다.(시골 여자들이 느낌적으로 그리는 그런 상이 있다. 서울남자상.) 그런 남자들을 데리고 한 달씩이나 집을 떠나 지낼 곳으로 간다고 하니 짐이 가히 상상이 되겠는가. 미리 예약해 둔 숙소에 침구가 다 있다고 했는데도 굳이 그 이불들이 어떨지 모른다며 캠핑장에서나 깔 것 같은 도톰한 에어매트를 라지 사이즈 아이 몸통만 한 크기의 짐을 두 개나 주문해서 챙기고, 어디서 본거는 있어서 오래 유지된다는 큰 용량의 아이스박스를 구매해서 우리 차 트렁크에 그것들로만 공간이 이미 반이 찼다.




짐을 싣고 떠난 남자




 "우리 옷은? 아니 우리는? 우리는 어디에 타?"

 "당신은 애들이랑 비행기 타고 와"

  집 떠나서도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지켜 줄 수 있는 짐들을 포기 못한 남자는 나중엔 슬리퍼 한 짝도 겨우 꽂아서 구석에 찔러 넣어야 할 정도로 한달살이 짐으로 꽉꽉 채운 차를 끌고 하루 먼저 배를 타고 가기로 하고 우리를 남겨 두고 떠났다. 가족보다 우리 모두가 편해야 할 짐이었다. 저 남자 스타일상 논리적으로 납득은 되나 다른 사람들도 이렇게 한달살이를 가나 궁금했다. 그때서야 깨달았다. 아들 둘과 남겨져서 시작부터 이게 맞나 의구심이 드는 순간, 내가 문제의 핵을 놓치고 있었음을...


야... 너 누구랑 뭐 어디 간다고?


작가의 이전글 아둘 둘과 집에서 죽긴 싫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