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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마리 Jul 21. 2023

고독과 고요 그 사이

오랫동안 꿈꿔왔던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하고 학교에 휴학서를 제출했다. 돈이 있어야 모든 것이 가능했기에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영어학원에서 학원보조를 주말에는 레스토랑에서 그렇게 꼬박 6개월 이상을 하루도 채 쉬지 않고 돈을 벌었다. 무엇이 나를 그렇게 미치게 만들었는지 그때에는 역막살이 단단히 꼈다 싶을 정도로 떠나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이 된 것 마냥, 그렇게 무식하게 일을 했고 돈을 벌었다. 신기하게도 그때에는 힘들지 않았고 아니 힘들었어도 그만두고 싶지 않았다. 그 일만 버티면 내가 열망했던 것들이 상상이 아니라 내 앞에 현실로 펼쳐질 수 있다는 것이 나를 움직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그렇게 고생을 하고 먼 길을 떠나면서까지  열망했던 것은 ‘고요‘였다.

다들 목표를 가지고 그걸 이루기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고 나만 아무 생각 없이 살고 있고 점점 뒤처진다는 생각에 지쳐갈 때,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이 조그만하고 복잡한 도시 안에서  더욱더 열심히 살아가기 위해 아니 버티기 위해 애를 쓰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삭막해진 이곳에서 떠나고 싶어서였다.


나처럼 이러한 ‘고요’를 갈망하는 독자는 시베리아 횡단열 차을 추천 한다.

기차안에서 창문으로 본 바깥

기차에 탑승하는 순간부터 정말 내가 기차의 부속폼이 된 것 같다. 할 일이 없었기에 시계도 필요 없었다. 해가 뜨는 순간에 창문에 비치는 햇빛으로 눈이 부시면 일어나 그저 풍경을 보고 멍을 때리고 중간중간 태블릿에 담아 온 내가 보고 싶었던 영화를 몰아보고, 책을 읽고 중간에 잠이 오면 잠을 자면 된다. 매일 누워있어도 밥을 안 먹어도 아무런 상관도 관심도 쓰지 않는,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해가 지면 잠이 드는 그저 기차에 몸을 실어 모스크바로 달려가는 일이 전부인 나날들이었다. 생각해 보면 내가 태어나서 신생아 이후 처음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이었다. 앞으로 다시 이렇게 합법적으로 나태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심지어 문명인이길 포기한 사람처럼 하루종일 창문으로 풍경을 보며 멍을 때려고 있어도 ‘와 너 진짜 근사한 경험을 하고 있구나’해주는 그런 상황이 아이러니하지만 너무 매력적이었다.


그렇게 이틀을 보냈다.


그런 시간을 보내다 보면 문득 아 영화 게스트 에웨이에서 주인공 척 놀랜드가 무인도에서 배구공으로 윌슨이라는 친구를 만든 이유가 있구나. 어쩔 수 없이 인간은 사회화 동물인가? 이 기분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좋을 텐데 그러한 생각 하며 이제 일상에서 빠질 수 없는 창문을 보고 멍을 때리고 있을 때 열차를 타고 한 번도 듣지 못한 한국어를 들었다.

”저기 혹시 한국인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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