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_45. 영화 <아메바 소녀들과 학교괴담: 개교기념일>
1.
처음 영화 <아메바 소녀들과 학교괴담: 개교기념일> (이하 <아메바 소녀들>) 개봉 소식을 들었을 때, 기대보단 우려 혹은 거부감이 더 컸던 것으로 기억한다. 제목에서 오는 진입장벽이 꽤 컸기 때문이다. 그래도 한 번은봐야겠다는 태도를 가진 이유는 이 영화의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수상 이력이었다. 색깔을 많이 잃어가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취향에 들어맞는 영화가 많이 상영되는 영화제이기 때문이다.
다음 이유는 연출이 김민하 감독이라는 것을 뒤늦게 확인했기 때문인데, 코로나로 인해 마스크 착용이 필수가 된 시대를 살아가는 빨간 마스크의 고충을 담은 단편 <빨간마스크 KF94>(이하 <빨간마스크>)를 통해 꽤 취향저격을 당한 터였다. 감독이 누군지 알게 되니 포털 사이트에 제공되는 줄거리만 보아도 영화가 소위 어떤 '깔'일지 대충 느낌이 왔고, 결론적으로 틀린 예상은 아니었다. <아메바 소녀들>은 <빨간마스크>에서 늘어놓았던 감독 특유의 농담을 그대로 90분 동안 풀어놓는다.
2.
방송부 학생 지연은 우연히 동아리방 캐비닛에서 오래전에 촬영된 비디오테이프를 발견한다. 비디오에 녹화되었던 것은 1998년 방송부 선배들이 개교기념일에 진행했던 귀신과의 숨바꼭질. 소문에 따르면 개교기념일에 귀신과 숨바꼭질을 해서 이긴 학생들은 수능 만점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비디오를 본 이후, 귀신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 지연은 겁도 없이 비디오를 따라 본 방송부 친구 은별, 현정 그리고 용병으로 고용한 종교부 민주와 함께 귀신을 쫓아내고 수능 만점을 받기 위해 귀신과의 숨바꼭질을 시작한다.
3.
사실 영화를 확인하면 큰 야심까지는 보이지 않는다. 기존 장르 영화의 공식을 비틀지만 대단한 야심을 가지고 장르의 혁신을 노린 것이 아니라 그냥 코미디 요소로 활용할 뿐이고, 여러 상황들을 체계적으로 배치하여 조응시키기 보다는 순간순간의 재치로 극을 진행하는 경향이 더 크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야심이 크지 않다는 것이 곧 나쁘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이다. 소소한 코미디를 추구했다면 소소한 코미디를 잘 수행해 내면 그만이다. 문제는 그마저도 충족시키지 못했을 때, 혹은 그 야심과 결이 다른 무언가를 시도했을 때 나오는 것이다.
<아메바 소녀들>은 영화의 목표로 세워둔 바를 어느 정도 잘 수행해 낸다. 일단 영화가 꽤 귀엽다. 영화 노선 자체를 그렇게 잡고 있다. 주연 4인방이 주고받는 농담 섞인 대사나 슬랩스틱 모션에 가까운 행동 연기의 목표는 상황을 아기자기하게 만드는 것으로 보인다. 아무도 보지 않을 때 주섬주섬 교수인 매듭을 몰래 정비하는 귀신 또한 영화의 아기자기한 매력을 부가시킨다.
그래도 나름의 주제를 전달하기 위해 무거운 이야기를 해야겠다 싶으면 적당히 의도하는 바까지 얘기하고 급하게 '신파는 안돼'라는 대사를 직접적으로 뱉으며 영리하게 빠져나온다. 신파뿐만 아니라 제4의 벽을 깨는 것은 영화 속에서 종종 유용하게 사용된다. 요컨대 극 중 진지함은 의도적으로 지워버린다. '오죽했으면 모든 사람들에게 잊힐 것을 각오하고 이런 짓을 하겠냐'는 맥락의 극 중 대사와 같이 성적만능주의에 대한 주제를 담고 있지만 무거움이 전혀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
위와 같은 요소들과 소위 SNS 밈으로 불리는 유행 요소들을 섞어놓으니 영화의 젊은 느낌과 개성 있는 분위기가 산다. 야심이 크진 않지만 영리함은 크게 발휘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4.
앞서 김민하 감독의 단편 <빨간마스크>를 재밌게 봤다고 이야기했다. <아메바 소녀들>이 상황을 만들어내고 웃음을 제조하는 방식은 해당 단편과 크게 다르지 않다. 두 영화의 공통적인 특징을 살펴보면 이러하다. 우선 몇몇 소녀들이 전설처럼 내려오는 소문을 공유한다. 그 소문은 우리도 흔히 알고 있는 도시 괴담에 기반한다. 소녀들은 그 소문의 실체, 즉 귀신을 마주하지만 호락호락하게 당하지 않고 오히려 그 실체의 특징을 간파해 상황을 빠져나온다. 이 과정에서 호러 장르의 클리셰를 비틀며 웃음을 자아내고, 시대상 혹은 사회문제를 담아 해학적으로 풀어낸다. 이 특징들을 잘 묶어내고 중간중간 생긴 빈틈은 SNS에 떠돌아다니는 밈들로 잘 채워 넣는다. 두 영화 다 일본 관련 캐릭터가 나오고 이를 유머 소재로 활용하기도 한다.
러닝타임의 차이로 서사를 더하거나 덜어낸 차이는 있겠지만, 큰 맥락에서 두 영화는 같은 방식으로 진행된 같은 뿌리의 영화다. 이를 다시 표현하자면 <아메바 소녀들>은 <빨간마스크>를 90분으로 늘려놓은 버전이라 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고 여기서 영화에 대한 아쉬움이 발생한다.
<빨간마스크>는 위와 같은 특징만 채워넣어도 재밌게 볼 수 있었다. 왜냐면 애초에 러닝타임이 16분인 단편영화이기 때문이다. 이를 90분으로 늘려놓으니 그 빈틈들이 눈에 크게 띈다. 말도 안 되는 개연성과 콩트에 가까운 연기가 눈에 밟히고, 어떤 때는 유머와 유머 사이의 텀이 다소 길게 느껴지기도 한다. 과하지 않을까 조심한 것은 알겠다만 여러 장치들을 조금 더 밀도 있게 채워놓았어도 좋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영화 초반에선 지연을 핵심 인물로 내세우지만, 중반부터 민주로 중심이 옮겨간다. 숨바꼭질 과정에서 그 이유를 알 수는 있지만 다소 통일성이 부족해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5.
예상외의 발견은 김도연 배우였다. 김도연 배우는 영화의 핵심 인물인 지연을 분해 준수한 연기를 보여준다. 다른 영화를 통해 얼굴을 익혔던 정하담 배우 외에는 주연 배우들이 연기하는 모습을 전혀 알지 못했기 때문에 걱정이 컸던 것도 사실이다. 김도연 배우는 그런 걱정을 조금이나마 덜어준다. 개인적으로 '김도연'하면 아직까지도 아이돌 그룹 멤버 이미지가 강하게 남아 있었는데, 영화를 관람하고 난 후에 찾아보니 꾸준히 드라마를 통해 연기 활동을 병행한 것으로 나온다. 드라마를 잘 찾아보지 않은 성향 때문에 좋은 연기를 꽃피울 수 있는 배우를 놓칠 뻔하지 않았나,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