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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유소가맥 Nov 02. 2024

겨울, 뻔한 영화가 용서되는 계절

2024_44. 영화 <파퍼씨네 펭귄들>

1.

 겨울이 참 좋다. 나는 일 년을 겨울 살기 위해 산다. 이 말을 이해할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다는 그렇다. 같은 맥락으로 꽤 일찍부터 캐롤을 듣기 시작한다. 캐롤은 마치 소고기와 같다. 소고기를 어떻게 구워 먹는가? 불판에 올려 핏기만 가시면 바로 집어먹지 않는가. 캐롤이 그러하다. 더위가 가시면 바로 들어야 한다. 캐롤은 겨울(정확히는 가을)의 초입을 알리는 알람과도 같다. 그리고 갓 핏기 가신 캐롤을 들으며 생각한다. 마침내 겨울이 왔다. 나의 계절이 돌아왔다.


 더위가 가시고, 반팔티와 긴팔티를 혼용하여 입었던 시기를 지나 가장 높이 해가 뜬 시간대에도 두툼한 긴팔옷이 아니면 한 번씩 몸을 떨게 되는 때가 되면 영화를 고를 때 괜히 한번 더 고려하곤 한다. 내가 생각하는 겨울 분위기를 물씬 머금은 영화를 고르기 위해 영화 별점 어플에 쌓아둔 '보고 싶어요' 목록을 몇 번이나 고심하며 훑어보는데, 그렇게 고른 올해 첫겨울 영화는 바로 <파퍼씨네 펭귄들>이었다.


2.

 대중문화 속 겨울에는 특별함이 있다. 숱하게 나온 겨울 배경 영화들이 그 반증이다. 겨울은 일 년 중 가장 추운 계절이지만, 동시에 가장 따뜻한 마음을 가지게 되는 계절이다. 겨울에는 한 해의  끝이 있지만 또 다른 해의 시작이 공존한다. 겨울은 여러 생명이 숨죽이는 계절임과 동시에 곧 새로운 생명이 움틀 것이라는 희망이 공존하며, 혼자 느낄 외로움이 아릴지라도 함께하는 즐거움 또한 배가되는 계절이다. 그렇기 때문에 겨울 배경 영화는 보통 위 나열들 속 후자의 특징을 위시하여 제작되곤 한다. 그리고 그 뻔함은 알면서도 한번 더 속게 되기 마련이다.


영화 <로맨틱 홀리데이>

 위와 같은 특징을 전제로 이야기할 때, 많은 사람들은 아마 영화 <러브 액츄얼리>를 가장 먼저 떠올릴 것이다. <러브 액츄얼리>는 이제 겨울 영화의 클래식이라 봐도 무방할 것이다. 영화 <로맨틱 홀리데이>나, <세렌디피티>, <당신이 잠든 사이에>도 떠오른다. 다소 결은 다르지만 <나 홀로 집에>나, <휴고>, <겨울 왕국> 같은 영화도 떠오른다. 어쨌든 공통점은 모두 가족과 연인을 중심으로 삶의 온기를 전하는 영화라는 것이다.


3.

 <파퍼씨네 펭귄들> 같은 맥락의 영화다. 주인공 파퍼의 아버지는 여행가였다. '좀처럼 오기 힘든 기회'를 쫓아 전 세계를 누비는 아버지는 파퍼에게 한 번씩 무전을 보내곤 했다. 짧지만 소중했던 아버지의 무전은 갈수록 그 빈도가 줄고, 파퍼 또한 성장하며 가족의 소중함을 점점 잃어갔다. 지금은 재개발을 위해 건물을 사들이는, 일과 승진만 아는 어른이 되었다. 어느 날, 잊고 지냈던 아버지의 부고 소식이 들려오고, 파퍼에게 아버지의 마지막 유품, 펭귄들이 배송된다.


영화 <파퍼씨네 펭귄들>

 당연히 택배를 그대로 돌려보내고자 하지만 펭귄을 통해 소원해진 아들, 딸의 환심을 산 파퍼는 계획을 뒤로하고 몰래 집에 숨겨 키우기 시작한다. 그리고 곧, 펭귄들은 파퍼의 삶에 큰 의미로 자리 잡게 된다. 펭귄들을 위해 한 겨울에 베란다 문을 활짝 열어놓고 집 안에 온통 눈덩이를 쌓아놓는가 하면 차가운 냉장고 안에 펭귄들의 보금자리를 꾸며놓기도 한다. 펭귄 한 마리를 부화시키기 위해 회사도 결근하여 잘릴 위기에 닥친다.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닫기 시작한다.


4.

 평소 짐 캐리의 영화를 챙겨봤던 사람이라면, 또는 헐리웃 가족 코미디 영화를 챙겨 봤던 사람이라면 <파퍼씨네 펭귄들>이 그렇게까지 새롭거나 신선한 영화는 아닐 것이다. 평범한 가족 코미디 영화의 공식을 그대로 따라가면서 짐 캐리 특유의 능청스러운 표정연기를 덧붙이고 마스코트 격이 되는 귀여운 애완동물 하나(정확히 말하면 평범한 애완동물이라 하기도 애매하고, 하나도 아니지만) 덧붙인 말 그대로 무난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영화 <파퍼씨네 펭귄들>

 그럼에도 이 영화를 보며 기분이 좋았던 이유는 바로 이 영화의 배경이 딱 전형적인 겨울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펭귄, 심지어 여러 마리의 펭귄들이 안고 있는 귀여움은 관객들의 마음을 녹이는 데 너무나 충분하다. 이 모든 것을 보여주는 데에 겨울만큼 좋은 시간 배경이 또 있을까.


5.

 영화 말미, 파퍼는 도심 속 겨울에서 펭귄을 키우는 것을 넘어 가족들과 함께 아예 남극으로 여행을 떠난다. 파퍼는 펭귄들을 통해 돈과 직위 외의 특별한 무언가를 찾게 되었다. 바로 가족과 사랑이다. 전형적인 이야기, 진부하고 뻔한 이야기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특별하다. 이게 바로 영화 속 겨울이란 계절이 부리는 마법 아닐까. 이 단순하지만 강력한 마법이 좋다. 그래서 난 겨울 영화가 좋다. 겨울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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