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_43. 영화 <예스터데이>
1.
무명 가수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잭은 친구 엘리가 잡아준 레티튜드 콘서트 공연을 마지막으로 음악 생활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엘리는 잭을 조금 더 북돋아주고자 하지만 잭은 이쯤에서 그만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돌아선다. 그렇게 집에 가는 중, 갑자기 벌어진 전 세계의 정전과 함께 교통사고가 난 잭. 그런데 무언가 달라졌다. 사람들이 무언가 놓치고 있는 것 같다. 몇 번의 대화 끝에 잭은 정전과 함께 이 세상에서 비틀즈가 사라지고, 오직 자신만이 비틀즈와 그들의 노래를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2.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이라면 썩 괜찮은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보며 '나라면 이걸 어떻게 만들었을까'에 대한 생각한 한 번쯤은 해봤을 법한데, 영화 <예스터데이>는 그 망상을 그럴듯하게 늘어뜨린 영화다. 하드한 영화 위주로 작품 활동을 하는 대니 보일 감독은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나 <밀리언즈>와 같이 드라마적 성격 강한 영화를 한 번씩 툭 던지곤 하는데, <예스터데이>는 그 중에서도 눈에 띄게 귀여운 영화다. 그리고 착하다.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모든 부분에서 적당한 영화다. 모든 등장인물들의 설정은 둥글둥글하고, 그러다 보니 그 인물들 사이 갈등도 크게 없다. 적당히 가까운 인물들이 상황에 의해 정당히 멀어졌다 이렇다 할 갈무리 없이 적당한 타이밍에 좋게 좋게 다시 합쳐진다. 관객들은 이 적당한 착함을 즐기면 된다.
3.
어쨌든 세상에서 비틀즈를 없애고 그 자리를 주인공으로 대체시키지 않았는가. 이렇게 큰 사건을 벌여놓고 어떻게 마무리 지으려고 그러지? 싶었는데, 그 결말조차 결국 대사 몇 줄로 얼렁뚱땅 넘어간다. 스트레스 없는 동화 한 편을 즐기고자 했으면 만족스럽겠지만, 이 적당함을 모든 사람들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전체적으로 '좋은 게 좋은 거지' 자세로 진행되는 모습에 느낀 실망감이 조금 더 컸다.
4.
'비틀즈'라는 밴드를 모를 수가 있을까. 음악을 업으로 삼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영향을 받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는 대표적인 가수이며, 대중음악 역사를 되짚어볼 때 가장 많은 영향력을 끼친 밴드로 평가될 것이다. 웬만해선 여기에 대한 이견을 내기 쉽지 않을 것이다. 영화 속 '비틀즈가 없는 세상'이라는 소재는 비틀즈에 대한 헌사를 보내기 위해 사용된다. '비틀즈가 없는 세상이라니, 끔찍해요', '그들의 노래는 위대해요' 등.
다만 막상 영화를 다 보고 나면 그 대상이 꼭 비틀즈였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물론 비틀즈가 나와야 가장 개연성이 사는 것이 맞긴 하다. 하지만 이 영화는 비틀즈가 아니라 유명했던 다른 가수 하나로 대치하여도 극 진행에 큰 문제가 없다. 심지어 극 중 활용된 비틀즈 음악들 또한 빈약하게 느껴진다. 영화 자체가 음악 영화보다는 드라마나 로맨스 쪽으로 무게를 잡고 있는 편이라 이해 못 할 부분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삽입곡 선곡에 아쉬움을 느낄 수밖에 없는 부분. 이왕 소재로 삼을 대상을 구체적으로 정했으면 그 대상에 대한 여러 요소들을 에피소드에 조금 더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활용했으면 재밌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5.
물론 비틀즈이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감동이 없진 않다. 영화 말미, 잭은 자신과 같이 비틀즈를 기억하는 팬이 전해준 주소를 찾아가는데, 그곳에서 만난 사람은 놀랍게도 노년의 존 레논이었다. 유명세 없는 평범한 삶을 살았기 때문에 암살당할 일 또한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노년의 존 레논을 만나는 것은 많은 비틀즈 팬들에게 꽤 큰 감동과 영감을 줬을 것이라 생각한다.
6.
에드 시런이 (심지어 본인 역할로) 출연하는데, 그가 주인공의 음악적 재능에 느끼는 충격을 구경하는 것이 소소한 즐거움을 준다. 영화 <브리짓 존스의 베이비>도 그렇고 본인 역할로 어딘가에 출연하는 것을 즐기는 모양. 에드 시런과 같이 영화 속 나오는 몇몇 대중문화 요소들이 꽤 즐겁다. 영화 속 세계에선 비틀즈와 함께 오아시스도 없어졌고, 해리포터도 없어졌다. 심지어 코카콜라도 사라졌는데, 개인적으론 해리포터가 없어진 세상보다 코카콜라가 없어진 세상이 훨씬 더 끔찍했다.
7.
소재 활용면에서도, 로맨스 장르 면에서도 좋은 만듦새라고 보기는 힘들다. 다만 '소재를 잘 활용했느냐'와는 별개로 어쨌든 영화 자체가 비틀즈에 대한 헌사에 가깝고, 실제로 폴 매카트니와 링고 스타는 이 영화를 꽤 만족스럽게 감상했다고 하니 기획의도는 일정 부분 성공하지 않았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