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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유소가맥 Oct 19. 2024

삶을 그나마 풍요롭게 꾸미는 사소한 균열과 소소한 충만

2024_42. 영화 <아침이 오면 공허해진다>

1.

 이이즈카는 반년 전, 회사를 그만두고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통해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특별한 것은 없다. 알람 소리에 눈을 뜨고 적당히 식사를 때우고 일을 하러 간다. 그리고 퇴근. TV를 보다 잠들면 다시 똑같은 하루의 반복이다. 영화 스스로도 이 일상을 그렇게 특별하게 보이고자 하는 의지가 그다지 있어 보이지는 않는 것 같다. 굉장히 슴슴한, 아니, 심심한 그냥 그런 일상이다.


2.

영화 <아침이 오면 공허해진다>

 이이즈카의 삶을 그나마 함께하는 사람들은 함께 아르바이트하며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이다. 한 명은 돈을 모아 해외에 나갈 것이라고 한다. 주인공은 그의 당당함과 외향적인 성격을 내심 부러워한다. 다른 한 명은 편의점 회식 날 술 취한 자신을 데려다준 남자 직원이다. 어느 날 양아치 무리가 그에게 시비를 걸자 주인공은 자신도 모르게 포장 어묵을 양아치 얼굴에 던져버린다. 물론 이후 싸움에 휘말리거나 동네 양아치의 복수 같은 거창한 무언가는 없다. 그냥 얼굴에 던지고 도망쳤을 뿐이다. 근데, 그 이후로 조금이나마 그와 가까워진다.


 사실 극 중 가장 큰 사건은 던져버린 포장 어묵이 아니라 어느 날 우연히 만난 중학교 동창 오오토모다. 그렇게 친하지도 않은, 몇 번 대화를 나눠봐야지만 드디어 누구였는지 기억하는 그런 사람이다. 다시 말해, 사실 오오토모는 말 그대로 그냥 같은 학교를 나왔을 뿐 이이즈카에게 그다지 의미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의외로 이런 의미 없는 관계들이 큰 의미를 가져다주는 경우들이 있다. 그런 관계들은 오히려 특별함이 없기 때문에, 누군가의 일상에 모나지 않게 잠시 방문하였다가 아예 자리 잡곤 한다. 이이즈카 또한 그에게 '왜'에 대한 질문을 몇 번 던진다. 하지만 생각해 보자. 정치가 아닌 이상에야 생각보다 많은 관계들은 큰 이유 없이 그냥 맺어진다.


3.

영화 <아침이 오면 공허해진다>

 둘이 만나서 발생하는 사건들조차도 사건이라 할 수 없을 정도로 굉장히 소소한 일상이다. 집 근처에서 술 한두 번 마시며 대화를 나눈다. 볼링도 한번 친다. 놀랍게도 이것이 러닝타임 중 두 사람이 만나서 한 모든 일이다. 무난한 일상에, 무난한 친구 한 명 생긴 정도다. 그런데 의외로 이이즈카는 오오토모에게 마음을 열고, 가족에게도 하지 못한 이야기를 한다. 그는 영화 초반 어렴풋이 암시되었던 퇴사 이유에 대하여 털어놓는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번아웃이다. 자신이 부족하게 느껴지고, 이렇게까지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이유에 대한 의구심이 든 것이다. 영화 내내 은은하게 퍼져있던 이이즈카의 무기력함을 이해시켜 주는 대목이다.


 괜찮다며 안아주는 오오토모는 이이즈카에게 위로로 다가온다. 대단한 위로도 아니었다. 그냥 괜찮다는 작은 공감이었을 뿐이다. 켜켜이 쌓여 어느덧 털어내기 힘들어진 부피가 되어버린 일상 속 작은 부침들을 이겨내게 하는 것은 누군가의 작은 공감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니, 시작이 아니라 어쩌면 그게 다일지도 모르겠다. 이후 이이즈카는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퇴사 사실을 털어놓고 어머니는 짐짓 아무렇지 않게, 더 큰일이 아니라 다행이라며 대답한다. 어쩌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마음속 짐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대단한 문젯거리가 아닐 수 있다. 작은 짐들을 크게 만드는 것은 어디 한 곳 털어놓지 못하고 눈덩이처럼 고민을 굴리는 우리 자신일지도 모른다.


4.

영화 <아침이 오면 공허해진다>

 놀랍게도 위 글이 이 영화의 모든 내용이다. 영화는 이렇다 할 사건 없는 주인공의 일상을 보여준다. 이런 일상들 속 작은 균열들은 사소한 새로움을 만들고, 그 사소한 새로움들은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느끼는 공허함을 조금씩 채워준다. 그리고 그 소소한 충만이 우리의 삶을 조금이나마 풍요롭게 꾸민다. 그리고 그 소소한 충만과 조금의 풍요가 무던하고 무료한, 그리고 공허한 삶을 하루 더 살아가게 만드는 동력으로 작용한다.


 누군가는 이 영화를 굉장히 심심하게 볼 것이다. 하지만 영화가 그 심심한 러닝타임 내내 건네는 것은 이 정도의 일상조차 유지하는 것이 버거운 이들에게 보내는 굉장히 직접적인 위로다. 이 영화가 모든 사람에게 잘 만든 위로로 받아들여질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썩 와닿는 영화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이츠카가 겪은 회의감은 이 글을 적고 있는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지 못할 정도로 동떨어진 경험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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