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_46. 영화 <청설>
1.
스물여섯의 용준은 딱히 하고 싶은 것도, 해야 하는 것도 없는 무료한 삶을 보내고 있다. 노느니 뭐라도 하라는 어머니의 지시로 부모님의 도시락 가게 일을 돕게 된 용준. 어느 날 배달 차 방문한 수영장에서 여름을 보게 된다. 첫눈에 반한 용준은 여름에게 용기 내 다가가고 두 사람은 점차 가까워지지만 어느 날, 여름은 갑자기 용준을 멀리하기 시작한다.
2.
영화 <청설>의 리메이크작이 개봉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오랜만에 푸릇푸릇한 영화가 OTT도 아니고 극장에 개봉한다는 소식에 빠르게 달려가고 싶었지만, 왜인지 이 영화의 원작을 먼저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작년 영화 <소울메이트> 개봉 당시 원작 감상 유무에 따라 평가가 갈렸던 것이 새삼 떠올라서 그랬던 것 같다. 결론적으로 리메이크 작품을 먼저 보게 되어 의도했던 감상 순서는 지키지 못하였지만 어쨌든 한 편의 감상이 희미해지기 전에 두 작품을 몰아볼 수는 있었다.
3.
결국 리메이크 작품인 이상 원작과의 비교가 있을 수밖에 없다. 다행히도 그 부분은 준수한 평가를 줄 수 있을 것 같다. 원작의 경우 코미디의 비중을 높여 유쾌한 리듬감을 기반으로 극을 이끌어 갔다면, 리메이크 작품의 경우 유쾌한 리듬감은 조금 덜어내고 그 자리에 청춘영화 특유의 청량함을 채워 넣는다. 어느 편이 더 좋고 나쁘고를 얘기하기보단 각자의 매력이 다르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원작의 큰 맥락들은 취하면서 세세한 부분은 바뀐 시·공간적 배경에 맞게 잘 치환하여 공감과 설득을 높인다. 부모님의 도시락 가게 일을 도와 배달하는 20살의 티엔커는 대학 졸업 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하는 26살의 용준으로 변경되었는데, 지금의 한국을 살아가는 사회 초년생의 고민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나쁘지 않은 변화로 보인다. 언니 샤오펑을 뒷받침하는 동생 양양은 동생 가을을 뒷받침하는 언니 여름으로 변경되었다. 희생적인 책임감을 가지게 된 이유로 가족의 장애에 장녀의 부담을 추가하여 설득력을 훨씬 더 높인다.
4.
개인적으로 청춘영화를 볼 때, 가장 마음에 들어 하는 부분은 자연광 풍부한 조명이다. <청설> 또한 비슷한 감상이다. 한국에 살고 있음에도, 지금 이곳이 같은 한국이 맞는지 생각이 들 정도로 예쁘게 담긴 골목들은 영화가 물씬 풍기는 풋내를 살린다.
배경에 걸맞게 등장인물들도 참 착하다. 장애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영화지만 장애에 대한 편견은 없다. 그나마 있는 편견들도 쉽게 지나치거나 해결된다. 온갖 계략과 음모, 비난과 혐오가 가득한 영화계 속 오랜만에 무공해 영화가 찾아온 것 같아 감상하는 동안 찌들었던 마음이 치유되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청춘영화가 가진 본문을 충실하게 다한다.
주연 3인방 모두 청춘 영화에서 추구할 법한 주인공의 모습을 그대로 잘 담아낸다. 모두 자기 몫을 해내지만, 그중에서도 으뜸을 굳이 꼽으라면 홍경 배우가 아닐까 싶다. 영화 <댓글부대>에서 온라인 여론 조작의 힘에 빠져 점차 삐뚤어지는 '팹택'의 모습을 잘 담아내 인상 깊게 보았던 기억이 있다. 홍경 배우를 처음 접한 작품이 아무래도 <댓글 부대>다 보니 그 모습이 유난히 머릿속에 남을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미지를 말끔하게 지우고 서투르고 풋풋한 청춘의 얼굴을 유려하게 표현한다. 많은 사람들 또한 비슷한 평가를 하고 있겠지만 앞으로가 기대되는 배우다.
덧붙여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수어를 언급하지 않고 넘어갈 수 없다. 음성언어보다 풍부한 표현력이 필요한 수어 특성상, 배우들의 제스처를 조금 더 집중하여 보도록 만든다. 이는 자연스럽게 극 중 인물들의 감정선에 크게 몰입할 수 있게 만드는데, 어쩌면 보는 것은 듣는 것보다 더 깊게 감정을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5.
아쉬운 점은 이 영화에서 느낄 수 있는 여러 장점들은 다른 청춘 영화들에서도 비슷하게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자연광 가득 담은 말간 조명은 여름을 배경으로 한 대부분 청춘 영화의 필수 요소다. 착한 등장인물도 마찬가지다. 악랄한 인성을 가진 악당이 청춘 영화에 나오는 경우는 없다. 그건 규칙 위반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청춘 영화 자체가 청춘에 어울릴 법한 10대~20대의 젊은 배우를 기용하여 착한 사람으로 분하고 수채화 같은 배경에서 풋풋하게 그려내는 장르다. <청설>에선 거기서 더 나아가는 색다름이 딱히 보이지 않는다. 특정 장르를 목표한 영화가 장르의 본분을 다 하는 것은 분명 그 자체로도 충분한 성취이고 칭찬할 만한 부분이지만, 그것을 그 영화만의 장점으로 내세우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영화 외적인 의견을 덧붙이자면 여름의 싱그러움을 담은 영화와는 다르게 가을 끝자락에 개봉한 것도 아쉬운 부분.
비슷한 맥락으로 영화가 참 착한 편이다. 드라마틱한 갈등은 없고, 몇 있는 갈등들은 러닝타임 흐름에 맞춰 자연스럽게 수습된다. 개인적으로는 다소 아쉬움이 느껴졌지만, 이 정도라면 단점이라기보다는 취향의 영역으로 분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중간중간 어설픈 부분들이 눈에 띈다. 대표적인 예시가 영화 초반 용준의 혼잣말이다. 그가 본격적으로 수화를 시작하기 전에 '이걸 이렇게 써먹을 줄은 몰랐네'라며 들으라는 듯 혼잣말을 뱉는데, 이는 '우연찮게 수화를 배워뒀어요'를 드러내는 가장 단순한 방법이지 않았나 싶다.
실제 있을 법한 일인 것과 영화 내에서 이질적인 것은 별개로 논의해야 할 문제다. 극 중 몇 안 되는 갈등 상황으로 진상 학부모 무리가 등장하는데, 다소 작위적이며 연기 또한 나쁜 사람임을 드러내고자 표독스럽게 보이도록 과장한다. 전반적인 영화 톤에서 유난히 튀는 장면으로 이를 이렇게 집어넣었어야 했는지 의문이 든다. 현실 세계에 편견으로 가득 찬 진상이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현실에서 이런 사건은 예고없이 찾아온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하지만 영화가 이를 보여주기 위해선 잘 정돈할 필요가 있다. 해당 씬이 유난히 튄다면 진행에 잘 녹일 수 있는 다른 방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가장 문제점이라 여긴 부분은 마지막에 나오는 반전이다. 알고 보니 용준과 여름은 농인이 아니었고, 작은 오해로 인하여 마지막까지 수화로 소통했다는 것이다. 이 설정으로 인하여 여태까지 쌓아왔던 서사가 무너져버린다. '너 들을 수 있었어? 너도 들을 수 있었어? 사실 우리 둘 다 들을 수 있었네! 하하!' 하고 결말을 내버린다면 이 영화 속 장애는 결국 청인들의 로맨스를 위한 패션이었고, 수어 또한 그 로맨스를 위한 도구였을 뿐이라는 맥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청인 입장에서 만들어진 영화가 가진 한계라고 느껴지는 부분. 처음부터 끝까지 부단하게도 착한 영화임은 알겠다만, 악의가 없다는 것과 불편함을 느낄 누군가가 없다는 것은 서로 다른 영역이라는 점을 꼭 알아두기를 바란다.
6.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청춘 영화' 하면 기대하는 바를 충분히 충족시켜 준다. 이런 싱그러운 감성이 그리웠다면 충분히 극장을 찾아볼 의미가 있다. 그건 그렇고 원작과 리메이크작, 두 <청설>을 하루에 몰아 보다니, 이 정도면 청춘과다복용이다. 당분간 유혈이 낭자하는 영화만 쏙쏙 골라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