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_49. 영화 <1승>
1.
맡은 팀마다 말아먹는 승률에, 운영하던 배구 교실은 벌써 몇 번째 문을 닫은, 사실상 실패한 배구 감독인 우진은 프로 배구단 핑크스톰의 감독으로 부임한다. 핑크스톰의 상태도 우진과 다를 바 없다. 팬들조차 외면하는 경기력에, 괜찮은 선수들은 벌써 다 팔리고 1군 경험도 몇 없는 모자란 선수만 남은, 사실상 간판만 겨우 달고 있는 팀이다. 그럼에도 해체가 되지 않은 이유는 새로 구단을 인수한 구단주 정원 때문.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1승만 해달라는 정원의 신신당부에 우진과 핑크스톰은 다시 한번 뛰어보기 시작하고, 그들의 마음속에 꼭 한번 이겨보고 싶다는 의지가 생기기 시작한다.
2.
최근 극장에 걸린 영화들 중 가장 많은 광고를 접한 것 같다. 어쩌다 알고리즘이 맞아떨어져 나에게만 광고 노출이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예고편에 나온 컷들을 거의 외울 수 있을 정도로 노출이 잦았다. 영화 <1승> 얘기다. 송강호, 박정민 두 배우만으로도 '보긴 해야지' 생각했지만 이렇게까지 끈질기게 나를 설득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 마케팅이 제대로 먹힌 것일까, 개인적으로 그렇게까지 기대한 작품이 아니었음에도 개봉 당일 나도 모르게 극장을 찾았다. 아뿔싸, 나약한 나는 이렇게 또 누군가의 유혹에 홀려버린 것이다.
3.
웬만해선 실패하기 어려운 대표적인 영화가 바로 스포츠 영화다. 스포츠 자체가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감동이 있기 때문이다. 영화 <1승> 또한 마찬가지다. 아무래도 기본적인 감동은 보장해 준다. 영화는 언더독의 반란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공식을 따르고 있다. 심지어 그 반란이라는 게 생각보다 거창하지도 않다. 우승도 아니다. 상위권 진출도 아니다. 영화 제목과 같이 딱 1승만 하자는 것이다. 사실 영화 자체가 안전하게 공식을 따르다 보니 감동의 크기까지도 소소하다. 치고 나오는 강점도 없지만 그렇다고 실패까지 가는 것도 아니다. 다시 말해 스트레스받지 않고 무난하게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이다.
영화는 배구공이 얼마나 빠른지에 대해 설명하며 시작한다. 그런 설명을 따라가려는 듯 이야기 전개도 꽤 빠른 편이다. 사실 <1승>이 서사를 거창하게 구성하는데 집중한 영화는 아니다. 이런 영화는 미사여구를 붙이는 것보다 차라리 이렇게 빠른 진행이 훨씬 더 어울리는 방법이다. 러닝타임을 짧게 가져간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
파이브스타즈 전에서 코트 위를 종횡무진하며 오가는 랠리를 훑는 카메라 워크는 꽤 즐거움을 선사한다. 사실 이런 카메라 워크는 신선한 편이 아니다. 게다가 의도했던 역동성을 부각하는 부분에 있어서도 꽤 만족스럽지는 못하다. 하지만 빠른 편집과 피사체 강조, 그리고 사운드 이펙트만으로 반복되는 경기 장면들을 모두 채우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시점 변화가 관객들의 피로를 크게 환기시켜 주는 것은 사실이다.
4.
아무래도 팀 경기를 다루고 있는 영화다 보니 감독과 배구단 선수들만 다루기도 타이트한데, 이 영화는 구단주까지 꽤 큰 분량을 가져간다. 각 캐릭터마다 개성을 부여하고자 한 것은 충분히 느껴진다. 다만 그 노력이 모든 캐릭터를 살리는 결과로까지 이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물론 그 많은 캐릭터들의 분량과 개성을 적절하게 조절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캐릭터 하나하나 보다는 하나의 팀 정도로 뭉쳐 묘사하며 지나가는 지점들이 있다.
비슷한 맥락으로 인물 사이의 갈등 또한 쉽게 뭉개고 지나간다. 극 중 이민희는 성유라라는 선수를 따랐지만 그가 타 팀으로 이적한 후 팀 내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다는 설정이다. 영화 시작과 동시에 보여주는 이 설정은 영화 중반까지 감정의 골을 깊게 유지하며 묘사하는데, 그 정성에 비해 해결 방안에 대한 고민이 딱히 느껴지지 않고 굉장히 뜬금없이 대충 이루어진다. 짧은 러닝타임이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는 했지만, 그래도 제대로 설명할 부분에는 시간을 좀 더 할애했어야 하지 않을까. 이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인물들에게 주어진 문제들 또한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식으로 해결된다.
서사의 빈약함은 기존 선수들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영화 말미, 안소연이라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재활로 인하여 자리를 비웠다는 설정의 선수다. 물론 자리를 비웠다 돌아온 수준급 실력의 선수는 클리셰에 가까울 정도로 자주 등장하는 설정이지만, 다른 선수들이 쌓아 올린 서사에 포함되지 않은 선수가 갑자기 나타나 팀의 승리에 크게 기여하며 이끌어가니 관객 입장에서는 뜬금없다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다.
김우진의 과거는 애니메이션으로 처리하는데 이 부분이 꽤 뜬금없다. 게다가 애니메이션을 이용했어야만 하는 연출 상 의도나 효과 또한 딱히 느껴지지 않는다. 영화를 다 본 이후 의문이 남을 뿐이다.
많은 영화들이 시대의 흐름에 맞게 SNS나 개인 방송을 소재 삼아 적극적으로 활용하곤 한다. <1승> 또한 개인 방송을 영화에서 중요한 소재로 활용하는데, 문제는 과하다. 너무 과하고 비현실적으로 묘사하니 몰입이 깨진다. 사실 이는 비단 <1승>만의 문제가 아니라, 정말 많은 영화에서 찾아볼 수 있는 부분이다. 어떤 소재를 사용할 땐, 그것을 그저 만능열쇠 정도로 활용할 것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그것을 만능열쇠로 사용하면 누군가는 과하고 비현실적으로 느낄 수도 있다는 것을 함께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다.
5.
공격적(나에게만)이었던 홍보를 따라오는 만듦새인지를 물어보면 고개를 갸웃거리겠지만, 어쨌든 상업영화고 사람들 많이 봐줬으면 하고 만든 영화인데 홍보 좀 많이 하는 게 무슨 문제겠는가. 아쉬움이야 당연히 남지만, 스포츠 영화 하면 생각나는 것들은 나름 다 갖추고 있다. 무엇보다 즐겁기도 하고. 스포츠 영화가 주는 감정적 동요는 확실히 있다. 인생에서 딱 한 번의 승리가 간절한 누군가에게 나쁘지 않은 응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