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유소가맥 Feb 17. 2024

가끔은 필요한 '어쩌라고' 마인드

2024_07. 영화 <분노의 질주: 더 세븐>

1.

 항상 봐야지 봐야지 하면서 끝까지 보지 않는 시리즈들이 있다. 이번 경우는 영화 <분노의 질주> 시리즈 얘기다. 너무 많은 편들이 개봉하다 보니 이제는 내가 보려고 해도 쉽게 도전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런 영화들이 꽤 있다. 생각해 보면 영화 <해리포터> 시리즈도 모든 편을 보진 않았다. 편 수가 많은데 처음부터 보지 못했던 영화들은 대부분 그런 식으로 넘겼던 것으로 기억한다. 10대, 20대 시절 말 그대로 환장하며 봤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소속 영화들도 아마 개봉 당시 그때그때 바로 보지 않았더라면 그렇게까지 열광하기는 힘들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2.

 <분노의 질주> 시리즈에 도전해야겠다는 생각은 꽤 오래전부터 했다. 2024년 기준으로 열 편이나 개봉한 시리즈, 그것도 겨우 명맥만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매번 돈 냄새나는 스케일을 자랑하고(오히려 더 확대하고) 또 이런 제작비를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흥행 수입을 보증하는 시리즈를 찾기가 쉬운 일인가. 개인적인 호불호를 떠나서 어떤 영화의 흥행이 계속된다면 반드시 그 이유가 있는 법이다. 그리고 꾸준히 영화를 보는 사람 입장에서 그런 트렌드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나에게 <분노의 질주> 시리즈는 오히려 꼭 봐야 할 이유가 있는 시리즈인 것이다. 좋게 말하면 영화 팬으로서 흥행 트렌드를 따라가기 위해서, 유치하게 말하면 그냥 나도 끼고 싶어서.


영화 <분노의 질주: 더 세븐>

 하지만 열 편이 넘는 영화를 하나하나 챙겨보는 것이 쉬운 일인가. 게다가 거실에 놓아둔 (스크린에 비하면 현저히) 작은 TV로 빵빵 터지는 영화들을 뚫어져라 20시간 넘게 쳐다보는 것 또한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처럼 꾸준히 챙겨봤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무엇보다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1편과 그 이후 편들이 가지고 있는 큰 이질감 때문이었다.


3.

 내가 보고자 했던 <분노의 질주>는 어이가 없을 정도로 말이 안 되는 황당무계한 액션으로 가득 찬 영화였다. 자동차에 낙하산을 매달고 뛰어내려 레이싱을 벌인다든가, 어떤 연유로 그렇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캡틴 아메리카와 같은 초인적인 신체 능력을 갖게 된 악당과 싸운다거나, 모르긴 몰라도 어쨌든 반쯤 정신 빼놓고 보면 더할 나위 없는 액션으로 가득 찬 영화를 기대했던 것이다.


영화 <분노의 질주: 더 세븐>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알다시피 영화 <분노의 질주> 1편은 언더커버 작전을 수행하는 경찰 이야기에 스트리트 레이싱이 가미된 저예산 액션 영화다. 김이 샜다. 물론 <분노의 질주>가 그런 영화라는 것에는 그 어떤 문제도 없다. 문제는 영화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내가 느끼는 당혹감에 있었다. 어라, 이거 맨손으로 날아가는 헬기 잡아 끄는 드웨인 존슨 나오는 영화 아니었나요? 저는 차 타고 우주 날아가는 영화라 들어서 재생한 건데요.


 알고 보니 다섯 편쯤 나온 이후부터는 시리즈 노선을 본격적으로 틀어 내가 보고 들은 <분노의 질주> 시리즈가 되었다고 한다. 원래는 이렇게까지 빵빵 터지는 영화가 아니었다고. 어쨌든 설정은 조금 바뀌었더라도 똑같은 등장인물이 등장하는 영화가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충분히 볼 수 있는 여건이 되는데도 한참 뒤편으로 훌쩍 뛰어넘는 것은 못내 찜찜한 일이었다. 나는 몇 번이고 <분노의 질주>를 보려 했지만 이미 언더커버 경찰 이야기에 김 새버린 나는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


4.

 어느 날이었다. 배우 폴 워커에 대한 특별한 애정이 없음에도 위즈 칼리파의 'See You Again'은 꽤 오래전부터 내 눈가를 촉촉하게 만들었는데, 이 노래를 듣다 문득 '<분노의 질주>를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좀 달랐다. 언더커버 경찰 이야기가 나오는 1편이 아니라, <분노의 질주: 더 세븐>을 재생했다. '언젠가 챙겨 볼 1편을 위해 뒷 이야기들을 몇 년간 썩혀두기보다는 지금 당장 마음 가는 편을 보는 게 낫지 않나?'라는 생각이었다.


영화 <분노의 질주: 더 세븐>

 흡족스러운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내가 원했던 빵빵 터지는 액션도 있었고, 앞선 여섯 편을 보지 못했기에 생겼던 우려가 무색할 만큼 스토리와 인물 관계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1편부터 챙겨 본 사람들이 느꼈을 크기만큼 감동을 느끼지는 못했겠지만 어쨌든 뭉클한 감동도 있었다. 그리고 '아, 재밌었다'며 넷플릭스를 종료한 내가 들었던 생각은 한 가지, '아깝다'였다. 처음부터 봐야 한다는 생각에 이걸 놓치고 있었구나.


5.

 나는 왜 '처음부터'라는 생각에 얽매여 이렇게까지 쉽게 즐길 수 있는 블록버스터 영화를 내버려 두고 있었을까. 그냥 아무 편이나 마음 가는 대로 집어다 볼걸. 1편부터 꼬박꼬박 챙겨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지금까지 미룬 것은 마치 '1월 1일부터', '다음 달부터', '다음 주부터'라며 '처음부터 제대로 해야지'라는 생각으로 미루다가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한 헛된 계획과도 같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아무것이나 아무 때나 그냥 하면 되는데. 어쩌면 <분노의 질주> 시리즈는 이루지 못한 새해 계획, 시작하지 못한 다이어트, 책 피지 못한 공부와 비슷한 맥락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영화 <분노의 질주: 더 세븐>

 그렇게 보면 세상 일이 다 마찬가지 같다. 차근차근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에 너무 집착하면 결국 한 걸음도 떼지 못하고 이렇게 재밌는 것들을 다 놓쳐버린다. 가끔은 '내가 여기서부터 하고 싶은데 어쩌라고?'라는 마인드로 지르고 보는 것도 중요하지 않나,라는 생각을 <분노의 질주> 시리즈를 보며 뜬금없이 해본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어쨌든 나는 이제 2025년에 개봉할 <분노의 질주: 라이드 오어 다이 파트 2>를 볼 수 있게 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꾸준한 미디어 프랜차이즈의 존재는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