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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유소가맥 Feb 24. 2024

파내버린 묘, 묻혀있던 험한 것, 이질적인 연결

2024_08. 영화 <파묘>

스포일러 주의


1.

 우선 장재현 감독의 뚝심에 박수를 보낸다. 공포 영화는 현재 한국 영화시장에서 확실한 비주류 시장이다. 더 세부적으로 오컬트 장르까지 넘어가면 그 수요는 한 줌은커녕 한 꼬집으로 수렴한다. 이런 와중에도 데뷔작 <검은 사제들>부터 세 번째 장편 영화 <파묘>까지 장재현 감독이 묵묵히 걸어가고 있는 오컬트 길을 보면 감독의 확고한 취향과 그 고집이 느껴진다. 그것이 비록 비주류라 할지라도 자신의 취향을 고수하고 이를 준수한 완성도의 작품으로 풀어내는 모습은 꽤 멋있지 않은가.


2.

영화 <파묘>

 영화 <파묘>는 수상한 묘를 이장하게 된 풍수사와 장의사, 그리고 두 무당에게 벌어지는 일을 다룬 영화다. 친절하게 자막으로 표기한 표면적인 구분은 6개의 장이지만, 실질적으로는 1장에서 3장, 그리고 4장에서 6장쯤이 묶인 1부, 2부 정도로 나뉜다. 1부, 2부 할 것 없이 모두 이장, 풍수지리, 음양오행, 굿 등 여러 무속신앙을 흥미롭게 엮어 영화를 끌고 간다. 무속신앙을 다루는 부분을 보면 설정의 기저를 튼튼히 다져둔 티가 난다. 관련한 전문 지식이 없다고 할지라도 사전 조사에 크게 공들였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정도며 이는 영화 내적인 논리를 완성해 준다. 덕분에 관객들 역시 큰 문제없이 영화에 빠르게 몰입하게 된다.


3.

 1부는 한 가정의 이상한 묘지를 이장하게 된 두 무당 화림과 봉길 그리고 풍수사 상덕과 장의사 영근의 이야기다. 그들은 묘 속에 범상치 않은 무언가가 묻혀있는 것을 알게 되고 대살굿을 벌인다. 그럼에도 열려버린 관 속에서 '험한 것'이 튀어나오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네 사람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1부가 펼쳐지는 초반 한 시간 남짓의 시간 동안 영화는 자신이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몰입력을 보여준다. 적당한 긴장감은 1부 내내 이어진다. 관에서 나온 험한 것은 정체를 제대로 보여주지 않고 1부 내내 포커스 바깥에서 맴돈다. 공포는 그 대상이 명확하지 않을 때 발생한다. 내가 응시하고 있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그것이 무엇을 응시하고 있는지 불분명할 때 극대화된다.


 카메라는 아들이 그것을 응시할 때에도, 손주가 그것을 응시할 때에도 심지어 자신의 며느리와 춤을 출 때에도 그 험한 것을 직접 묘사하지 않는다. 거울 혹은 유리창 따위를 통해 간접적으로 비출 뿐이다. 그리고 반드시 시선이 직접적으로 닿지 않도록 둘 사이를 유리할 수 있는 무언가를 끼워 넣는다. 음성 또한 프레임 바깥에서 흘러들어오거나 사람의 입을 빌려 간접적으로 전달된다. 공포심을 유발하는 규칙을 잘 활용한다.


영화 <파묘>

 먹고사는 문제에 민감한 은퇴 직전의 풍수사와 장의사 콤비, 젊은 무당 듀오 캐릭터는 매력적이다. 자신을 소개하는 화림과 상덕의 내레이션을 굳이 넣었어야 하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어쨌든 설계해 놓은 캐릭터를 꽤 그럴듯하게 소개한다. 특히 김고은 배우가 표현한 화림은 특히 인상적이다. 영화를 본 관객들 중 대다수가 화림의 대살굿 장면을 영화의 최고 장면으로 뽑을 것이다.


 네 인물들을 통해 끌고 가는 1부의 기승전결 또한 깔끔하다. 묫자리를 파헤쳐 겪는 초자연적인 사건은 영화 한 편을 온전히 끌고 갈 사건을 만들어줄 만큼 풍족한 볼륨을 만들어주지는 못하지만 어쨌든 1부 내에서 그 소임을 다한다. (당연하게도 애초에 1부에서 그 역할을 다 하게끔 분량을 조절한 것이겠지만)


4.

 2부는 그들이 파헤쳤던 묫자리에서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또 다른 관이 발견되면서 시작된다. 네 명의 주인공은 그들이 깨운 또 다른 정령을 해치우기 위해 다시 한번 뭉친다. 이때부터 영화는 한 가문의 가족사로 시작했던 사건을 국가와 민족 단위로 확대한다.


 2부는 1부의 노선과는 약간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공포의 대상이 되는 피사체의 아웃라인을 모두 날려버렸던 1부와는 다르게 그들이 깨운 또 다른 험한 것, 영화 속 설명으로는 정령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며 인물들과 육탄전까지 벌인다. 1부에서 영화가 공포를 조성하는 방식이 '보이지 않는 저 너머의 힘'이었다면 2부는 '내 눈앞의 압도적인 존재'로 바뀐 것이다. 이 영화에 호불호가 있다면 대부분 여기서부터 갈리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의외로 많은 관객들은 내가 공포를 느끼는 존재가 무엇인지 명확해질 때 맥이 빠져버리곤 한다.


영화 <파묘>

 비교적 현실적인 요소와 종교적인 요소 사이의 균형을 잘 맞춰갔던 1부와는 달리 정령이 눈앞에 나타나는 순간부터 그 균형은 아예 배제하고 다른 차원의 행동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여기서부터는 공포라기보다는 공포를 베이스에 둔 동양 판타지에 가까워진다. 그 변화에 빠르게 적응했다면 충분히 즐길 수 있었겠지만, 1부에서 끌어올린 텐션 그대로 2부를 맞이한 관객은 적잖이 당황했을 것이다.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내고 싶었던 것은 알겠으나 다소 부산스러웠다는 의미다.


 이로 인한 괴리감이 적지 않다. 조금 과격하게 이야기하자면 같은 등장인물이 나오는 전편과 후속 편을 하나의 제목으로 붙여놓은 듯하다. 1,2부가 올라탄 노선이 다소 상이한 것도 그 이질감을 조성하는 데 한 몫한다. 그러다 보니 각각 떼어놓고 보면 나쁘지 않은, 오히려 꽤 괜찮으나, 붙여놓았을 때 맛이 죽는다.


 2부는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이 조선의 정기를 끊고자 여기저기 쇠말뚝을 박아놨다는 소문, 소위 도시전설을 끌고 들어온다. 여기까지 오면 앞서 보인 '귀신 씐 인물들'의 행동이나, '용처럼 잘 뻗었네'라는 영근의 대사 등 자잘 자잘한 복선들의 이유가 맞춰지기 시작한다. 영화를 다시 복기하며 이런 복선들을 찾아보는 재미가 꽤 쏠쏠하다. 다만, 상덕이 '우리가 밟고 있는 땅', '내 자식들이 살아갈 땅' 등 영화의 주제와 맞닿아있는 대사를 하는데, 지나치게 1차원적이고 직접적이라 조금은 작위적으로 느껴진다.


5.

영화 <검은 사제들>

 장재현 감독의 전작을 생각해 보자. 만듦새는 좋았지만 장르 공식의 단순한 답습 정도였기에 오리지널리티가 크게 부족했던 <검은 사제들>, 한국 문화와 정서에 맞는 소재를 잘 꾸려 왔지만 전반적인 짜임새는 다소 아쉬웠던 <사바하>, 그리고 조금 과했던 욕심이 아쉬운 <파묘>까지. 꾸준히 준수한 완성품을 가지고 왔기에 한 부분씩 나오는 단점들이 더 눈에 띄어 아쉽다. 여기서 방점은 '꾸준히 준수한 완성품'이다. 이번 영화 <파묘> 또한 준수한 완성품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몇몇 단점들이 크게 아쉽다.


6.

 보기 힘든 소재로 꽤나 재밌게 가지고 놀 수 있는 상업영화를 본 것 같아 나쁘지 않은 발걸음으로 극장을 나섰다. 개인적으로 앞서 얘기한 장단점은 차치하더라도 이런 장르 영화들이 나오면 그때그때 봐주는 편이기도 하다. 다들 알고 있겠지만, 국산 오컬트 영화, 한번 놓치면 언제 또 볼 수 있을지 모르는 게 슬픈 현실이다. 벌써부터 장재현 감독의 다음 작품이 궁금해지는 이유기도 하다. 영화 <파묘>를 통해 그가 묵묵히 걷고 있는 오컬트 외길 인생을 한번 더 응원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의 동력을 한번 더 얻었다. 그리고 그게 내심 기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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