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_28. 영화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
1.
영화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이하 <탈출>)는 안개 가득 낀 공항대교에서 일어난 연쇄추돌사고와 폭발 사고로 고립된 생존자들이 사고로 인해 풀려난 살상용 군견들을 피해 공항대교를 탈출하는 과정을 영화다. 오랜 기간 개봉 연기되었던 작품이기에 한편으로는 기대감을, 한편으로는 불안감을 키워놨는데, 결론 먼저 말하자면 적중된 감정은 기대감보다는 불안감이었다.
2.
블록버스터 영화들을 관심 있게 챙겨본 사람들이라면 대부분 장면들에서 기시감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사건 파일을 훑듯 빠른 컷 편집으로 프로젝트 사일런스를 설명하는 오프닝 시퀀스에서부터 그 기시감이 시작되며, 이는 스텝롤이 올라가기 직전 마지막 장면까지도 이어진다. 물론 새로 나오는 모든 영화 소재가 신선할 수도, 모든 장면이 새로울 수도 없다. 새롭지 않은 이야기를 들고 나왔다고 무조건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에는 너무 많은 영화들이 제작되었고, 지금도 제작 중에 있지 않는가.
하지만 새롭지 않은 이야기를 감흥 없이 전달하는 것은 충분히 비판받을만한 지점이다. 우리가 기시감을 느꼈던 영화 모두가 형편없는 영화는 아니었지 않는가. '신선한가'와 '재밌는가'는 전혀 다른 부분의 이야기다. 영화 <탈출>에 실망한 지점은 이미 이 영화가 10년도 훨씬 더 전에 나왔다고 해도 진부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여러 장면들을 심지어 특별한 고민 없이 단순히 이어 붙여 내놓았다는 것이다. 이는 <탈출> 뿐만 아니라, 오락영화를 제작하는 모든 영화인들이 생각해봐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3.
그래서일까, 영화는 관습적으로 주입한 긴장감과 진부함에서 오는 밋밋함이 불편하게 공존한다. 낮게 울리는 음향과 일부러 공백을 넣은 화면과 편집 등 으레 긴장감을 느낄 기본적인 시청각 요소들로 인해 촉각은 곤두세워지지만, 정작 우리가 따라가는 서사는 이를 뒷받침해주지 못한다. 순옥이 군견에게 물렸을 때부터 예견된 병학의 죽음이라든지, 죽음의 위기를 바로 앞에 둔 정원을 구하러 오는 딸이라든지, 꼭 항상 그럴 때만 중요한 물건이 손에 없는 조박이라든지 웬만한 장면은 수가 읽혀 일촉즉발의 상황에서도 오히려 김이 빠지는 느낌이 든다. 결과적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했을 장르적인 재미가 반감된다.
4.
몇몇 인물은 등장하는 이유를 가늠하기 어렵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미란인데, 영화 내내 '언니가 미안해'와 비슷한 류의 대사만 늘어놓는다. 유라와의 갈등을 통해 재난 상황 속 감정 변화를 대비적으로 표현하고자 한 것은 알겠다만, 그다지 효과적으로 먹혀들어간 것으로 보이진 않다.(애초에 유라와 미란은 이 영화에 잘 섞여 들어가지 못한다.)
민폐에 가까운 정의 추구로 다른 사람을 위험에 빠뜨리는 인물로 나오는 경민, 염세주의에 빠진 민폐 박사인 양박사 등 관객들에게 이미 수가 많이 읽힌 캐릭터들이 나오는데 매력을 크게 살리지 못했을뿐더러, 스토리 진행이 막힐 때마다 이 인물들을 편의적으로 활용한다. 그 활용이 과하게 노골적이라 다소 민망함이 느껴진다.
5.
각본의 일관성도 부족한 편인데, 군견을 처음 접한 현백은 '저 개들은 뭐야?'라며 반응하고 정원에게도 억울한 듯 '나도 지금 보고받았어'라며 언급한다. 그러나 영화 후반으로 넘어가며 뜬금없이 '프로젝트 사일런스를 시작한 사람은 사실 정현백'이라는 (나름대로 반전으로 보이는) 진실이 밝혀진다. 이유는 세 가지로 추측한다. 앞뒤 설정을 통일하지 못한 각본의 커다란 실수 거나, 본인이 시작한 프로젝트의 진행상황도 모르는 무능력한 국가안보실장이자 대권 후보라는 캐릭터 설정, 혹은 풀려난 군견을 본 현백이 모른 척 연기한 것을 효과적으로 풀어내지 못한 연출 상 실수다. 셋 중 어느 쪽이든 문제는 상당하다.
6.
아쉬움이 많지만 그 안에서 빛을 발하는 장점들 또한 물론 존재한다. 대표적인 것이 특수효과다. CG의 부족함이 없었다면 거짓말이지만, 전반적으로 훌륭한 그래픽을 보여준다. <탈출>의 특수효과를 맡은 덱스터 스튜디오의 경우 많은 관객들에게 '믿고 보는 CG'로 익히 알려져 있다. 대중들에게 이름을 각인시킨 거의 유일한 그래픽 담당 회사답게 특수효과에 기대를 거는 관객들 또한 많았는데, 어느 정도 준수하게 그 기대를 만족시켜 준다.
7.
본격적인 사건의 시작을 알리는 공항대교 추돌사고는 영화의 몰입을 한순간 높여 놓는다. 개인적으로 군견 등장 이후보다 이 추돌사고 장면에서 느낀 긴장감이 훨씬 더 강렬했다. 촬영 시, 실제 차량을 추돌시켜 현실적인 질감을 느낄 수 있었는데, 모두 CG로 구현되어 종종 아쉬움이 느껴졌던 군견과 대비되어 더 큰 만족감을 느낄 수 있었다.
8.
앞서 언급했듯, <탈출>은 여러 사정으로 인하여 오랜 시간 개봉 연기된 작품이었다. 물론 이미 완성된 영화를 뜯어고친다는 것이 '아, 수정 한번 해야지'라는 식으로 진행할 수 없는 어려운 일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일반 관객들 입장에선 오랜 시간 재차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실망스러운 결과물을 그대로 들고 나왔다고 인식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 영화에서 느끼는 아쉬움은 이 지점에서 출발하는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