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_27. 영화 <탈주>
1.
북한의 한 최전방 부대. 이곳에서 복무하는 규남은 남으로 넘어오기 위해 매일 밤 군사분계선 너머를 오다니며 탈북 계획을 세운다. 계획 실행을 며칠 앞둔 어느 날, 규남의 계획을 눈치챈 하급 병사 동혁은 먼저 탈북을 시도하다 발각된다. 동혁을 말리던 규남 또한 탈북 사건에 말려들어 함께 잡혀가고, 이들을 조사하기 위해 보위부 소좌 현상이 파견된다. 과거 규남과 친분이 있던 현상은 규남을 탈주 병사를 체포한 영웅으로 바꿔치기하며 그에게 안정적인 자리를 마련해 주지만 북을 탈출하겠다는 규남의 의지는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었고, 그렇게 현상과 규남의 지독한 탈주극이 시작된다.
2.
시원하다. 영화 <탈주>를 보고 누군가는 개연성으로, 또 누군가는 중후반부 전개 방식으로 불만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영화를 보고 난 후 시원시원하게 진행되는 탈주극이라는 생각이 먼저 떠올랐다. 극 중 가장 역동성이 느껴졌던 지점은 규남이 미친 듯이, 하지만 흔들림 없이 달려 나가는 모습을 담은 트래킹숏이다. 그리고 이는 영화 <탈주> 전체를 대변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한 방향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 나가는 이들의 영화다. 영화 <탈주>를 다른 기대 없이 제목 그대로 하나의 '탈주극'으로 본다면, 두 인물의 질주를 그럴듯한 만족감을 얻으며 볼 수 있을 것이다.
3.
재밌는 것은 이 영화는 탈북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남한에 대한 묘사가 상당수 지워졌다는 점이다. 규남이 남한에 도달하기 바로 직전, 그러니까 영화 결말 바로 직전까지도 철저하게 북한 내에서만 모든 상황이 진행된다. 탈주가 진행되는 과정에선 이데올로기적인 분쟁을 최대한 지우고, '탈주극' 자체와 두 인물에게만 집중한 것은 현명한 선택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영화 말미 극 중 인물 대화나, 영화 특성상 대비될 수밖에 없는 남북 상황 등 관련 요소들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나, 충분히 감안하고 넘어갈 수준이다.
4.
이처럼 남한에 대한 묘사를 지운 것은 동시에 단점도 가진다. 북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인물이 나온다면 관객 입장에선 응당 응원하게 되는 것이 당연한 반응인데, <탈주>는 그런 사람들의 마음에 너무 직접적으로 기대고 있다. 남한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를 지우다 보니 규남이 왜 그렇게까지 애타게 탈북하고자 하는지에 대한 설명 또한 희미해진다. 단순히 과거 회상을 통해 '남은 가족이 없다', 주변 인물의 대사를 통해 '전역 후 탄광 아니면 농사'와 같이 이유를 흘려주긴 하지만, 이는 '탈북'하면 모든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는 보편적인 이유들일뿐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현상에 대한 묘사를 조금 더 풀어주었으면 좋았겠지만 영화는 그 또한 친절하지 않다. 과거 국제 콩쿠르를 휩쓸던 피아니스트였고, 현재는 체제에 순응한 군인이라는 유추는 충분히 가능하다. 하지만 그가 왜 그렇게까지 체제 순응적인 것을 넘어 체제 충성적인 인간이 되었는지, 그 설정에 대한 논리가 다소 빈약하다.
여기서 덧붙여지는 것이 송강 배우가 연기한 우민이다. 현상의 과거를 유추할 수 있는, 일종의 사연을 만들기 위한 목적으로 등장한 역할인 것은 흘려봐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인물을 극 중에서 그대로 들어내더라도 전반적인 극 흐름에 큰 공백이 발생하지 않을 정도며, 둘 사이 형성된 텐션이 가진 노림수 또한 너무 대놓고 읽힌다. 다만 북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은 수 없이 많고 퀴어 요소가 들어간 영화들 또한 적지 않지만, 이처럼 극단적으로 폐쇄적인 북한 사회와 퀴어 요소를 결합한 경우는 흔치 않다. 때문에 이를 활용하여 현상의 내적 혼란을 풀어내는 것은 꽤 재밌는 지점이었다.
5.
많은 사람들이 얘기하듯이 두 주연 배우 모두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지만, 더 눈에 띄는 배우는 홍사빈이었다. 작년 영화 <화란>을 통해 뛰어난 연기력을 보여주며 눈도장을 찍었는데, 이번 영화 역시 기대 이상의 호연을 보여준다. 극 중 동혁은 미션이 많은 역할이다. 동혁은 규남과의 우정이나 애틋한 가족애를 보여주는 캐릭터다. 때문에 기본적으로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캐릭터지만, 동시에 규남의 탈북 계획에 있어서 장애물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사실, 동혁만 없었으면 규남의 탈북은 이미 영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도 되기 전에 끝났을 것이다. 규남에게 감정적으로 치우쳐져 있을 수밖에 없는 관객 입장에서는 동혁이 답답하고 민폐 덩어리와 같은 인물로 볼 수밖에 없겠지만(실제로 그렇게 느꼈던 부분들도 몇 장면 있다), 이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며 설득해 내는 것은 홍사빈 배우의 몫이었다.
6.
선을 넘고자 했던 인물은 규남뿐만이 아니다. 현상 또한 선을 넘고자 했던 인물이었다. 규남은 물리적인 선(군사분계선)을 넘고자 했다면, 규남은 북한 고위계층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선을 넘을 뻔했던 인물이다. 현상에게 피아노와 우민은 아직도 어떤 역린으로 작용한다. 본인은 나아가지 못한 어떤 지점을 향하여 미친듯이 나아가는 이를 보았을 때, 그는 단순히 '누군가를 저지한다'가 아닌 해내지 못했던 과거 자신에 대한 연민과 미련을 느꼈을 것이다. 현상이 발악에 가까울 정도로 군사분계선을 향해 나아가는 규남을 보고 총을 거둔 이유도, 마지막에 흘렸던 눈물의 의미도 그 연민과 미련에서 비롯된 것이었으리라 짐작한다.
극 중 <배철수의 음악캠프>(로 추측되는 라디오 방송)의 사연으로 꽤 오랜 시간 허우적거리고 있는 젊은 청년의 사연이 소개된다. 규남은 북에서 이 라디오 사연과 함께 자이언티의 '양화대교'를 듣는다. 규남은 남으로 넘어와도 휘황찬란한 미래가 펼쳐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다. 남한의 누군가 또한 시대의 어떤 선에서 벗어나려고 하며, 규남 또한 남에서 같은 일을 겪을 것이다. 그렇다면 선을 넘으려는 인물은 또 한 번 확장된다. 이는 분명 의도한 연출로 보이지만, 다소 억지스럽게 끼워 넣은 것처럼 느껴진다. 다만 이런 면에서 봤을 때, 남과 북의 개념이나 대립을 최대한 지우고 인물에 집중한 탈주극을 그린 의도를 읽어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