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_26. 영화 <하이재킹>
1.
전투기 파일럿인 태인은 북으로 넘어가는 여객기를 격추하지 못한 책임을 지고 전역한다. 그리고 1년 후, 민간 항공기 부기장으로 일하게 된 태인은 여느 날처럼 서울로 가는 비행기에 탑승한다. 해당 비행기에 함께 탑승한 승객 용대는 비행기를 납북하려 하고, 사제 폭탄을 터뜨리며 비행기 탑승 인원들을 위협한다. 그렇게 태인을 비롯한 항공사 직원들과 승객들, 그리고 용대의 대립이 이어진다.
2.
실화 기반 영화가 또 한편 개봉했다. 영화 <하이재킹>은 1971년 발생한 대한항공 F27기 납북 미수 사건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실제 사건은 근현대사 수업시간이나 공영방송 다큐멘터리에서 소개될 정도로 오래전 발생한 사건이기에 나 또한 피부로 와닿는 사건까지는 아니다. 영화 제작 소식을 들었을 때에도 소재에 관하여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것도 어느 정도 사실이고.
하지만 여느 실화 기반 영화들이 그러하듯 이런 영화가 가진 중요한 임무 중 하나는, 나와 같이 '와닿는 사건이 아닌 사람들'이 해당 사건을 생생하게 느끼고 다시금 기억하게 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러기 위해선 사건을 실제와 같이 재현해 내는 것과 동시에, 극적인 상황을 재구성하여 극화시키는 것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이처럼 어떻게 보면 이중적인 조건을 동시에 충족시켜야 하기 때문에 실화 기반 영화는 다소 까다로운 지점들이 있다.
3.
실제 사건을 정확하게 알고 있지는 못하기에 추후에 다시 살펴보는 과정이 필요했다. 실제 사건과 가장 큰 차이점은 극 중 납치범 용대의 비하인드 스토리일 것이다. 실제 납치범은 김상태로, 그가 하이재킹을 일으킨 구체적인 연유는 밝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다시 말하자면 극 진행과 캐릭터 설정에 필요한 기초적인 사건들을 어떻게 꾸밀지는 오롯이 제작진들에게 달려 있다.
다만 그 자유가 신선한 발상으로 까지 이어지지는 않는다. 물론 상상력을 끝까지 밀고 나갈 수 있는 환경은 아니긴 하지만, 범죄자를 묘사하는 방식이 일반적인 범죄 영화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은 분명 아쉬운 부분이다. 영화는 용대가 사상범 몰이의 피해자라는 상상력을 덧대어 범죄 이유를 설정하는데, 그 과정에서 용대를 미화하고자 하는 장면들이 꽤 존재한다. 기존에 영화들이 범죄자를 묘사하는 방식에 대해 회의적인 주장들이 나오고 있는 현 상황에서 다소 아쉬운 점으로 생각할 관객들도 있을 것이다.
4.
실제 F27기 납북 미수 사건과 연관이 없는, 전혀 별개의 사건인 1969년 KAL기 납치 사건이 엮어진다. 태인이 두 사건 모두 (어떤 방식으로든) 겪게 만들어 인물의 선택에 당위를 부여하거나 감정을 공감하게 만들기 위한 장치였으리라 생각한다. 의도와 별개로 다소 작위적인 설정이라는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5.
이 외 실제 사건과는 크게 상관없는 항공 액션은 보는 와중에서도 '이게 가능해?' 싶은 장면들이 있다. 물론 대다수의 관객들은 항공 관련 전문 지식이 없을 것이기 때문에 지나치게 황당무계하다고 느낄 일은 적을 것이다. 어쨌든 비행기에서 벌어지는 사건인 이상, 관객들이 기대하는 재미를 주기 위해 어느 정도 역동적인 액션이 필요했을 것이라 판단한 제작진들의 심정도 이해 못 할 부분은 아니다. 나름 성공적이기도 하다. 다만, 기체에 구멍이 난 상태로 수행하는 과장된 비행기 액션 보다 비행기 내 인물들의 감정이나 행동들을 활용하는 것이 어땠을까, 생각이 든다.
다만, 이 말이 인물의 감정이나 행동에 대한 묘사가 부족하다는 이야기로 이어지진 않는다. 몇몇 장면들에서 과하게 느껴지는 지점들이 존재하지만, 영화는 태인과 용대의 대립각을 계속해서 보여주며 서스펜스를 형성하여 장르적인 재미를 놓치지 않고 추구한다.
6.
주연을 맡은 하정우, 여진구 배우의 연기는 두말할 것 없다. 특히 여진구 배우의 경우, 눈도장을 찍었던 영화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 때부터 배우가 직접 표현한 말마따나 소위 '눈 돌아간 배역 연기'를 참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영화에서 또한 본인이 가진 역량을 마음껏 활용한다.
7.
전반적으로 지나친 신파도 없고, 용대 과거 장면이나 후반 항공 액션 이후 조금 늘어지는 면이 없잖아 있지만, 개인적으론 용인해 줄 수 있는 선에서 마무리되는 것으로 보인다. 요컨대 기본적인 고증에서도, 장르적인 재미에서도, 시각적인 볼거리에서도, 기본적으로 평균치는 해내는 영화로, 이정도면 여름철 텐트폴 무비로 나름 괜찮은 평가를 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