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비덕 Jan 12. 2023

영화_'인종분리 정책' 속으로의 여정  

그린북 <Green Book, 미국, 2019>

우리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인종분리 정책. 부당하다고 인지하지만 사실상은 정확히 모른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왜냐하면 단일민족 국가에서 정책적으로 인종분리를 할 일이 없으므로. 우리에게는 적극적인 분리정책이 있어서 차별하거나 차별받을 일이 거의 없다. 무의식적인 세대간, 성별간 차별은 있을지 모르지만.


'그린북'은 미국의 노예해방 이후에도 인종차별의 뿌리가 남아있는 남쪽 깊숙한 지역, 켄터키, 놀스케롤라이나, 테네시, 델타, 버밍험 등의 지역에서 차별정책이 얼마나 일반적이었는지를 보여준다. 영화 제목인 '그린북'이라는 책자도 흑인이 안전하게 남쪽 지방을 여행할 수 있는 방법 즉, 흑인이 머물 수 있는 숙소와 레스토랑 등을 안내하는 책자다.


영화는 정책의 부당함을 간접적으로 표현하면서 차별을 당하는 개인의 심리적인 고통을 보여주는 방식을 택했다. 남쪽으로 갈수록 셜리리의 숙소 상태가 매우 나빠져 가는 모습, 셜리의 예술을 칭송하던 이들이 인터미션 시간 헛간 같은 외부의 화장실을 사용해야한다고 하거나, 크리스마스 공연을 하기로 한 레스토랑에서 식사는 할 수 없다고 하는 장면 등은 차마 보기 힘든 불편함의 연속이다. 그리고 셜리는 그런 차별때문에 스스로 자존감을 지키기위해 정신적인 우위(이성적 태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것으로 자신을 보호한다. 그러나 결국 '토니 립'이 흑인의 삶에대해 모른다고 몰아세우자 (정확히는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가?)라고 하자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외롭고 힘든일인지를 고백하며 고통스러워한다.

셜리가 머무는 숙소는 남부로 갈수록 심한 차별이 드러난다
Yes, I live in a castle! Alone. And rich white folks let me play piano for them, because it makes them feel cultured. But when I walk off that stage I go right back to being another nigger to them--because that is their true culture. And I suffer that slight alone, because I’m not accepted by my own people, because I’m not like them either! So if I’m not black enough, and I’m not white enough, and I’m not man enough,
what am I?!
당대 최고 뮤지션으로 인정받는 셜리

나는 이 영화가 많은 이들의 비판을 받은 것에 일면 동의한다. 왜냐하면 각본 자체가 '돈 셜리' 입장이 아니라 '토니 립'의 아들의 시선에서 쓰여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은 이탈리아계 미국인이다. 유태인계 미국인, 아이리시계 미국인, 이탈리아계 미국인 등 알다시피 미국은 백인도 여러 갈래로 나뉘어져있다. 실제로 디파티드의 주인공들 중 아이리시계는 미국 보스톤 주류 사회에서 천대받는 것으로 묘사된다. 이탈리아계도 마피아 등 부정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흑인차별 정책'이 마치 이런 차별과 비슷하다는 식으로 그려진 것은 유감이다. '인지적인 차별'과 '제도화된 분리, 차별'은 분명히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국의 아프리칸 어메리칸에 대한 차별은 오랜 착취의 역사에서 기인한 것이다. 그래서 호기로운 이탈리안계 '토니 립 (벨라롱가)'의 무용담을 위한 양념처럼 '인종분리 정책'이 연출된 것은 진실을 왜곡할 여지가 충분히 있다. 여기에 더해 백인이 구제하는 흑인이라는 것 역시 논란이 될 수밖에 없다.(여기서 흑인을 이용했다라는 비약까지 가능해 지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유머와 재주있는 말솜씨로 이 모든 단점을 커버하기도 한다.  둘 사이의 티키타카 '셜리'의 정중한 훈시?와 '토니 립'의 허세는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루며 하나의 브로맨스 로드무비로 탄생했다. 특히 '토니 벨라롱가'가 아내에게 쓰는 편지를 고치는 장면은 아름다운 시 한편처럼 영화를 따스하게 만들어준다. 여기에 더해진 '돈 셜리 트리오'의 유려한 음악과 멋진 푸른색 캐딜락을 타고 미국의 평원을 달리는 장면 등은 충분히 아름답고 즐겁다.  

토니 립의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는 두 사람

예상가능한 해피엔딩이지만 보고나면 흐뭇하다가도 차별에 대한 승리는 결국 개인의 정신 승리로 극복해야 하는 일인가를 생각하게 될 수 밖에 없다. 특히 정책적인 차별 속에서 과연 정신 승리로 자존감을 지키고  그 고통을 예술로 승화하는 가 과연 몇명이나 있을까? 스스로를 구제하지 못한 다수의 약자 여기서는 흑인들으로 대변되는 차별받는 계층에게 결국 '너 스스로 극복하지 못한거야' 차별과 불평등을 극복하고 위대한 사람이 되렴이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아무래도 영화를 마무리하는 마음은 조금은 씁쓸한 기분이 남을 수 밖에 없다. '토니 립'과 그의 삶의 방식이 너무 웃겨서 그냥 한바탕 웃고 넘길 수도 있고 한 개인의 능력과 가능성을 무한히 바라보는 서구의 '인본주의'로 본다면 그 모든 제도적 차별과 불평등을 이길 수 있는 것 또한 인간의 정신일 수 있다라고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하는 것도 방법이긴 하겠다.


그러나 인종차별이라는 주제를 놓고 가벼운 마음으로 보기엔 인류 역사에서 '인종분리 정책'이 부른 희생은 매우 크기 때문에 차별과 혐오가 갖는 위험이 그렇게 가볍지만은 않다는 사실만은 잊지 말 것!


작가의 이전글 영화_삶, 그 이전에 죽음이 있다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