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
2년차에서 3년차로 넘어가던 가장 힘들던 시기의 정확히 중간 지점. 어느날 갑자기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는데 눈앞이 정말 빙빙 돌았다. 이런 기분은 처음이라 상당히 당혹스러웠고, 지금까지 몸에 이상이 있었던 적이 크게 없던 지라 걱정이 되기도 하였다. 혹시나 머리에 문제가 있나? 하는 그런 생각도 조금은 들었다. 허나 일단 일이 급해 그대로 출근을 하였고 그런 증상은 정도의 호전 없이 약 1주일간 지속되었다. 의외로 일상 생활 중에서는 증상이 크게 없어 지낼만 하였고 (물론 컨디션 저하는 있었지만 단순 피로로 생각했다) 아침에 일어날때와 밤에 자려고 누운 상태에서 고개를 흔들 때 정도 였다.
그주 금요일 일정이 한가하여 점심에 잠깐 병원의 신경과 외래를 들렀다. 원래 친했던 신경과 동기의 도움을 받았으며 점심식사를 앞둔 신경과 전공의 선생님이 진료를 해주었다. 안진검사를 처음으로 받아봤고 신기한 경험이었다. 검사를 위해 고글을 썼는데 안쪽은 완전히 깜깜하게 처리되어 있으며 내 눈을 관찰하는 카메라만이 희미하게 보인다. 의학적으로 정확한 것일지는 모르겠으나 말그대로 눈의 초점을 둘 곳이 없으니 눈은 눈이 가고싶은대로 가는 느낌이었다. 이석증을 유발하는 검사를 받을 때 특정 자세, 회전 방향에서 안진은 아주 심했다. 학생때 신경과학에서 희미하게 배운 Saccade, Nystagmus 가 조금씩 와닿기 시작했다.
어쨌든 진단을 마치고 이석증이 있음을 확인하였고 돌을 맞추기 시작했다. Epley maneuver 를 이용해 Repositioning 을 한것으로 생각된다. 이석증 재발이 심한 사람들은 자가로 술기를 시행하기도 한다고 하던데, (아래 그림을 참고하세요)
그렇게 술기를 통해 빠진 이석을 제자리로 맞추고 나서 안진검사를 다시 했을 때 어지러움은 확실히 줄어들어 있었고, 바쁜 걸음으로 다시 병동으로 올라가 어제 수술환자를 보고 있었다. 발목 골절이 심해 수술 전에 붓기가 심하였고 상처가 걱정되어 소독을 하기 위해 고개를 숙였다 일어섬과 동시에 지금껏보다 훨씬 심한 어지러움이 발생해서 순간 휘청거렸다. 벽을 잡고 겨우 서서 아랫년차를 급히 불러 마무리시키고 다시 신경과 친구에게 연락을 하였다. 아마 다시 빠진것 같다고, 지금 바로 다시 외래로 가서 맞추는게 낫겠다고 하였다.
이석증이 신기한게 가만히 서있거나 잠깐 자세를 바로 잡으면 수십초 내로 어지러움증은 사라진다. 다시 안진검사를 해 보니 이번엔 다른 방향으로 안진이 새롭게 생겼다. 전에는 고개를 앞뒤로 할 때 심해졌다고 하면 이번엔 고개를 좌우로 돌릴때 심했다. 신경과 전공의 선생님도 혀를 차며 다시 빠진다고, 당일에 이렇게 빠지기도 한다는데 아무래도 종종 재발하는 질환이라고 말하였다. 다시 다른 술기로 이석을 맞추고 이번엔 좀 안정을 취하시라, 절대 안정이 중요하다고 신경과 선생님이 강조하였다.
어쩔 수 없이 점심을 거르고 한시간정도 외래 구석의 침대에서 누워있었다. 이번에는 돌이 잘 들어간것 같았고 자세 변경시 어지러움이 유발되는 느낌은 아니였다. 하지만 자잘한 어지러움이 계속 남아있는 느낌이었고 업무를 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오후에는 워크샵이 있어 파트 회의를 진행하였고, 교수님께 아프다는 말씀을 드려 다행히 겨울 휴가 일정을 당겨 다녀올 수 있게 되었다.
평소에 신체가 건강한 편으로 자부하였는데 이렇게 병을 앓아보니 여러 생각이 들게 되었다. 우선은 몸에 이상이 생겼다는 느낌 자체로 마음이 상당히 불안했다. 나의 발전을 위해 열심히 하는 것들이 오히려 나를 상하게 하고 있나 하는 우려도 생겼다. 이렇게 고생하다가 병을 얻으면 손해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잘 해오고 있었다 생각했는데 앞날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겨울의 정형외과는 모든 구성원에게 아주 힘든 시기라, 그러던 와중에도 내 몸이 아닌 내가 속한 집단의 걱정을 하는 것이 슬펐다.
다행히 몇일 후 건강이 회복되어 업무에 복귀할 수 있었고,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이 다시 떠올랐다. 힘든 과정에서도 항상 제 1은 나의 건강과 가족의 건강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우친 사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