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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시안 Feb 26. 2021

꽃이 주는 정신력


 게임 중에 돈스타브 투게더라는 게임이 있다. 돈스타브라고도 한다. 엄밀히는 다른 게임이지만, 여기서는 그냥 돈스타브라고 부르겠다. 그 게임은 여러 명의 캐릭터들이 협업해서 굶어 죽는 것을 면하는... 아니, 살아남는 것을 과제로 한다. 이 게임에서 캐릭터들은 꽃을 보면 정신력이 올라간다. 체력과 마찬가지로 정신력이 수치화 되어 있어서 이 수치가 떨어지면 캐릭터들은 밤에 헛것을 보며 공포에 떨고 그것에 실제로 다친다. 꽃으로 화관을 만들어서 머리에 쓰고 있으면 정신력 수치가 떨어지는 것을 조금 더디게 할 수 있다. (와...)


출처 : https://m.blog.naver.com/ka87921001/221592542503


 작디 작은 집에 모든 것을 욱여 넣고 살다가 월세를 많이 집어주는 넓은 집으로 이사를 온 다음에 나와 같이 사는 사람이 제일 먼저 한 일은 꽃병을 구매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꽃병에 이름을 다 외우기도 어려운 아름다운 꽃들을 꽂았다. 넓은 식탁 한가운데 있는 예쁜 꽃병을 보기 위해 우리는 그렇게 많은 월세를 지불하나 보다. 월급의 3분의 1이 월세로 나가는데 이것은 실로 아주 죽을맛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지만, 넓어진 공간과 꽃이 주는 정신력 덕에 내 삶이 한 발 나아졌구나 느낀다(착각한다).


  꽃 구독 서비스를 하는 스타트업 꾸까라는 곳이 있는데, (이것이 유망하다 보니 뒤이어 유사 서비스들도 생겨났다.) 다소 비싼 요금이며 구독 서비스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적절한 마케팅과 서비스력으로 아직까지 잘 살아남고 있다. 꽃이 주는 활력과 좋은 기분은 놀랍게도 그만큼의 가치를 지불할 의사를 인간에게 불러 일으키는 것이다. 꽃은 시든다. 생각보다 더 빨리 시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일(꽃을 사고 파는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솔직히 나는 이성에게 꽃 선물 받는 일에 100% 기뻐할 수 없었다. 나에게 꽃은 졸업이나 공연 마지막에 축하를 위해 준비하는 꽃다발이라 일상 속에 받으면 왜인지 부당(?)하다는 느낌이었다. 또 받고 나면 좁은 공간 둘 데가 없어 처치 곤란한 물건이었다. 더 혹독한 시절에는, 꽃다발을 부모님과 같이 살고 있는 집에 가지고 들어가면 600%의 확률로 부모님께서 그 꽃을 준 사람에 대해서 신원 확인 및 호구 조사를 하시기 때문에 기껏 받은 예쁜 꽃다발을 버리고 집에 들어가기(!)도 했다.



 꽃은 먹을 수도 없고 구체적인 실용 가치(말려서 약재로 쓴다거나...)도 잘 없지만 예쁘다는 것, 생기를 품고 있다는 것 하나로 많은 일을 도모할 수 있게 만든다. 꽃의 힘은 엄청나다. 결혼식 할 때 꽃장식이 빠지지 않는다. 특히나 생화 장식이 빠지는 경우가 드물다. (그리고 비싸다...) 경사를 사람에게 인식 시키는 데에 그만큼 좋은 도구가 없는 것이다. 꽃은 또한 위로의 상징으로 쓰여 장례식에도 동원된다. 누군가를 기리고, 축하하는 일에 쓰이는 것이라, 꽃의 가치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크고 아름답다.


  결혼기념일에 회사로(또는 집으로) 꽃바구니 하나 받는 일이 아내의 일상을 얼마나 더 달콤하게 하는지 아직도 의심하는 남편이 있다면 반성하고 당장 꽃배달 예약을 해두길 바란다. 그 몇만원이 아내의 기억에는 뒤에 숫자 0 두 개는 더 붙은 가치로 기억될 것이다. 물론 당신이 돈이 너무 많아서 비서한테 시켜서 보낸 꽃바구니라면 그 가치에 0.n을 곱해서 소수점 단위로 가치가 제한될 수도 있다... 그 시간에 다른 사람과 시간을 쓴다면 더더욱... 내가 언급하고 싶은 것은 그 꽃을 구매하는 사람의 마음이다.


 꽃다발 하나를 살 돈이면, 몇 끼를 먹을 수 있고 꽃바구니 하나를 기똥차게 만들 정도의 돈이면 역시 괜찮은 호텔에서 숙박 하루를 할 수도 있다. 꽃은 그만큼 비싸지만 그 꽃을 사다 선물하면, 그 의미는 "다른 가치와 비교하였지만 받는 사람의 기쁨을 무엇보다 우선시 하였다"는 그 결정, 그렇게 애쓴 진심이 전달이 되는 것이다. 어릴 때는 비누로 만든 장미꽃 한송이도 받아보고, 사탕으로 만든 꽃다발도 받아보았다. 진짜 생화는 구하기가 힘들(비싸니까..)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리라. 꽃을 살 수 없다면 꽃이라도 흉내내는 것, 그렇게 해서라도 기뻤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 그것이 깨알 같은 진심이기에 상대방을 기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근간에 나는 친구에게 꽃을 받았는데, 꽃은 꼭 이성에게 받아서만 좋은 것은 아닌 것 같다. 내 생각이 나서 가져왔다는 한 송이 꽃은 굉장한 효과를 불러온다. 그 친구를 잊을 수 없게 만든다. 일기에 적게 만든다. 나 꽃 받았다. 여자한테. 남자들도 친구들한테 서로 꽃 선물하면 진귀한 풍경을 구경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아무튼 각설하고, 꽃이 주는 정신력에 대해서 체감하고 나니 원예를 전공한 내 친구가 새삼스레 대단해보이고, 꽃가게를 하는 전국의 많은 사장님들이 정말 대단하게 느껴진다. 일찍이 그 매력과 힘을 알고 그 업에 종사하기로 맘 먹은 게 아닌가. 식물의 힘은 놀랍고 그걸 키우고 교감하는 사람들은 더 대단한 것 같다.


 얼마 전 내 동생은 승진했고 또 다른 동생이 승진 축하하는 의미로 스투키를 보냈다는데 사진을 보니 화분이 참 앙증 맞고 귀여웠다. 누군가 경사를 맞이할 때 주저함이 없이 꽃(식물)을 보낼 수 있는 넉넉한 사람이 되고 싶다. 꽃이 먹을 수도 없는 것인 허례허식이라고 날세워 무시하지 않고, 그 효과를 인정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지고 삶을 살아낼 수 있는 둥근 사람이 되고 싶다.



 세월이 지나 알고 보니 나는 꽃다발 선물을 싫어하는 사람이 아니었고, 다만 꽃병과 꽃병을 둘 장소가 부족해 꽃다발이 싫은 거였다. 꽃병을 두 개째 구매한 동생은 급기야 근처 꽃 시장을 투어했고 거기서 산 꽃으로 꽃꽂이를 하며 왜 드라마에 나오는 부잣집 며느리들이 꽃꽂이로 정신수양하는 지 알 것 같다고 했다.

 

 내가 선물한 꽃다발만큼은(그 개수만큼은) 선물 받을 수 있는 인생이기를 바라본다. 덕분에 오늘 하루도 식탁 위의 꽃으로 정신력이 떨어지는 속도를 늦추었다.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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