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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시안 Nov 20. 2018

"유시안의 좋은 시 소개"를 열며

자발적으로 시집 읽는 사람을 위하여

 "태어나서 시를 처음 읽어요!" 그런 사람이 있을까? 일정 연령에 도달하면 시를 한 편쯤 접하게 되지 않을까? 지구-아시아-대한민국에서 나거나 이 국가와의 큰 연관을 거쳐 자란 사람들 중에, 초중등교육 과정을 운 좋게 다 지나온 사람 중에 시를 단 한 편도 보지 못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을까? 아마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자발적으로 시집을 사서 읽게 되는 어른이 되도록 학교가 별 역할을 하고 있지 못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나만 그런가?


 앞으로 올리게 될 나의 글들은 자발적으로 시집(그리고 어떤 종류의 책이든 자신에게 필요한 책)을 사서(안 되면 빌려서라도) 읽는 어른이 조금 더 많아지도록 하는 게 목표다. 문학을 애호하는 사람들이 서로의 경험과 인생을 나누기를 바란다. 그들이 모이는 독서 모임이나 낭독회 그리고 도서관 강연회가 더욱 번성하기를 바라며,

  독립출판가들과

 동네의 독립서점과 팟캐스트와 유튜브와 문학블로그로 밥 벌어먹는 사람들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나기를 바라며 첫 글을 연다.




 시는 쉽고도 어렵다. 시가 쉬운 것은 짧기 때문이다. 적어도 소설보다는. (산문시가 초단편 소설보다 길 때가 있다는 것은 논외로 하자.) 시가 어려운 것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상징과 비유가 적극적으로 활용되기 때문에 내용과 의미를 파악하는 데에 다른 텍스트보다 더 많은 시간과 정력을 쏟아야 한다.(본인은 짧고 위트 있는 SNS 감성 시의 출현에 열광하는 쪽이다. 한국판 하이쿠의 대가 하상욱 시인님 리스펙트 한다.) 덧붙여, 시를 써본 사람은 알겠지만-비단 시뿐만이 아니겠지만- 시나 글은 '누구나 알아볼 수 있게 쉽게 그리고 의미 있게 쓰는' 일이 가장 어렵다.

 쉽고 의미 있더라도 그게 잘 쓴 것이라는 인정을 받고 또 잘 읽히게 되는 지점까지는 작가와 독자 사이에 편집자, 마케터, 평론가들의 역할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문학 덕후로 살며 알아나가는 중이다. (취미로 문예창작콘텐츠학 석사졸) 부동산은 직거래해도 되지만 중개인을 통하면 좀 더 쉽고 안전한 것처럼, 시의 의미를 파악하는 데에 있어서 처음부터 혼자 하기 어렵다면 중개인의 도움을 받는 일도 필요할 수 있다.(수수료요? 책을 사주세요.)

 브런치 플랫폼을 이용하고 접하는 대다수의 사람은 이미 문학 교과서와 선생님들을 통해서 중개인이 개입한 문학의 해석에 대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또한 그것이 부정적인 것이기 쉽다는 데에 동의한다. 시에서 교훈을 주로 배웠고('"~해라" 하는 시'들을 통해) 시대적 아픔에 대해서도 귀 아프게 들었다.("이 시구는 일제강점기의 아픔을 형상화한 것으로….") 그러나 분명 '의미'라는 것은 시인이 텍스트에 심어놨을 수도 있지만 읽는 사람이 직접 발견하거나 창조해낼 수 있다.


 시에 대해 당신의, 당신만의 의미를 알리는 것이 당신 존재의 증명이자 문화생활의 고급 표현이 될 수 있다.


 시를 읽고 시에 나의 해석을 달아보면 어떨까? 다른 사람이 보고 맞다고 할 수도 있고 틀리다고 할 수도 있다. 공감할 수도 있고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신의 시선을 드러냄으로써 예쁜 모자를 쓴 것과 비슷한 효과를, 당신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더 잘 알 수 있게 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나의 취향을 알고 알리면 삶이 더 행복해질 수 있다. 작게는 당신의 SNS와 프로필을 아름답고 분위기 있게 꾸밀 수 있으며 더 나아가 가치관과 인격을 그리고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관계를 아름답게 성숙시킬 수도 있는 도구인 것이다.

 어쩌면 당신은 백석도 알고 윤동주도 알고 이해인도 알고 류시화도 알지만 여전히 시가 어렵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시를 읽고 쓰는 사람들은 자기애에 빠져 허우적대는 거라고 일축할지 모른다. (일정 부분 맞는 이야기다.) 하지만 지하철 스크린도어에 붙어있는 시, 명상을 권하는 포스터에 덧붙여진 시, 어느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짧게 편집돼 나오는 시, 광고 문구에 인용되는 시 등등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보면 도처에 시는 널렸고, 여러 권의 문학 교과서를 어찌어찌 지나온 당신도 시에 대한 입장 내지는 관점을 하나쯤 가질 필요가 있다. 시는 아직 그 쓰임새가 많다.

 비단 연애편지나 지인에게 쓸 카드 문구를 준비할 때뿐만 아니라 인생을 바라보는 각종 필터, 세심한 초점이 필요할 때 시가 좋은 참고가 된다. 내 경우는 나 자신의 우울과 슬픔을 살피고 어루만지는 데에 시가 큰 도움이 됐다.

 나는 시를 읽기 시작한 후 주로 서정적이고 관능적인 시를 좋아했지만 점점 자연을 노래하는 시들도 좋아지기 시작했다. 시인들은 사진작가처럼 일상의 순간을, 생각의 찰나를 잡아 글로 표현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대서사시를 지은 시인, 희곡처럼 시를 쓴 시인, 편지와 독백으로만 시를 만든 시인들도 있다. 이처럼 다양한 시를 통해 당신이라는 우주를 시에 견주어 분석할 수 있다.

 당신은 호랑이처럼 죽어서 가죽을 남기기는 어렵겠지만, 당신의 시 해석을 남길 수 있다. 그리고 아직 죽기 전에 이 축복(?) 받은 초연결사회에서 동시대 시인을 직접 만나보고 토론하고 교감하며 즐겁게 살아갈 수도 있다.


 "유시안의 좋은 시 소개", 사뭇 주관적으로 전개되겠지만 믿고 한 번 넉넉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따라와 준다면 시를 읽는 즐거움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기회가 되게 하겠다. 노력은 나의 것, 즐거움은 당신의 것. 당신이 즐거워진다면 기쁨이 우리의 것.  



● 유시안(1989~), Korea 출생&여행

글을 읽고 씀. 시로 인해 안녕한 사람, 시를 보는 눈, 무엇이든 시로 보려는 눈.

시집 <당신과 저녁 먹을 좋은 구실>, 시집 <토끼의 뿔> 저자.


요새는 사회학에도 관심을 갖고 책을 읽고 있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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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명 "시에 푹~ 빠져버렸어요”, Y군(1998~), 2008년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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