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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물찾기 Mar 07. 2023

내가 우리 집 빌런이었다!

진짜 화가 나서 화를 낸 것인지, 나도 잘 모르는 어느 날

얼마 전 나는 갑자기 몸이 너무 아팠다. 30대 후반까지만 해도 1년에 한두 번 몸살, 그것도 반나절 바짝 아프고 나면 멀쩡해지곤 했는데 40이 넘으니 내 몸이 예전 같지 않았다. 자주 몸살이 오고, 한 번 아프면 그날은 꼼짝을 못 한다. 며칠 전 그날도 그랬다. 유독 바빴던 시간들을 보내고 나니 나는 여지없이 몸살에 걸렸다.


올해 11살, 9살 되는 우리 아이들은 아픈 엄마를 걱정하며 하루를 씩씩하게 보냈다. 가끔 방에 들어와 내 이마를 만지고 물도 떠다주며 본인들은 걱정하지 말라는 말도 건네곤 했다. 언제 이만큼 큰 건지 기특하기만 했다. 하루 종일 너무 바빴던 남편은 늦은 밤에 집에 돌아왔지만, 내내 아이들과 연락하며 나를 살폈다.


문제는 다음날 아침이었다. 나는 요즘 멀쩡했던 심사가 갑자기 뒤틀릴 때가 있다. 마침 주말이었는데, 나보다 늦게까지 자고 있는 남편의 모습이 그렇게 얄미운 것이다. 야근 후 밤늦게 들어와 내 이마를 만지며 괜찮냐고 몇 번이냐 되묻고 잠든 남편이었는데...


'어제 나를 보살피지 못했으니 오늘은 무언가 달라야 하지 않나?'


모르겠다. 보상심리가 발동하며 나의 진상 기운이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갑자기 멀쩡했던 마음이 슬퍼지고 화가 났다. 남편을 깨워 아이들 밥을 차려주라고 했다. 잠도 덜 깬 채 허둥지둥 밥을 차리는 남편에게 하소연을 시작했다.


"아니 내가 아픈데 제일 늦게 일어나면 어떻게 해? 너무한 거 아니야? 날 걱정하긴 한 거야?"


그런 마음 다들 알까? 사실 크게 서운하지도 않았는데 말을 하면서 서운함이 커지고, 말을 하다 보니 화도 나는 감정. 그날 아침 내가 그랬다. 말을 하면 할수록 너무 서운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엄마, 어제 아빠가 엄마를 얼마나 걱정했는데 왜 그래?"


어리둥절해하는 큰 아이의 말에, 나는 모르면 가만있으라며 방으로 들어가 누웠다. 아이들도 남편도 따라 들어와 나를 달래기 시작했다. 남편은 야근이라 일찍 못 와서 미안했다고, 들어와 보니 잠들어 있어 푹 자는 게 좋을 것 같아 따로 깨우지는 않았다고 했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말이다!

남편은 딱히 잘못한 것이 없는데 나는 이미 화도 냈고 눈물을 글썽이며 이불까지 덮고 누웠다. 당황한 세 사람이 내 주변에서 눈치를 보고 있는 사이, 나는 이불 속에서 빠르게 고민했다. 이제 나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진짜 모양 빠지는 상황이다.


난 결심했다. 이제 와서 분위기를 뒤바꿀 수도 없었다. 창피했지만 나는 나의 자존심을 선택하기로 했다. 나는 서운했다고, 그냥 울어버렸다.


"아니, 가족들 아프면 나는 얼마나 열심히 간호하는데 말이야. 나한테 어떻게 이렇게 무심해?"


창피해서였을까? 아니면 정말 아팠던 후유증일까? 나는 금세 이불 속에서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잠에서 깨 거실로 나와보니 세 사람이 이제 좀 괜찮냐고 나에게 모여들기 시작했다. 나는 마지못해 져 주는 척, 괜찮다고 곁에 앉았다. 밤이 되어 잠자리에 들기 전 다행히 우리 집 분위기는 다시 좋아졌다. 엄마 잘 자라고 다가오는 큰 아이가 예뻐서 나는 아이를 꼬옥 안았다. 이제 몸은 괜찮냐고 묻는 다정함에 마음도 행복하던 그때 아이가 말했다.


"엄마, 근데 아까 진짜 웃겼던 거 알지? 대체 왜 화를 낸 거야?"


남편도 둘째 아이도 키득거리며 나를 쳐다봤다.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는 느낌이었다. 그렇지만 내가 여기서 또 꺾을 수는 없었기에 다시 언짢은 모습으로 밀어붙여야겠다 생각할 때쯤, 아이가 갑자기 "아니야 아니야, 괜찮아. 엄마 잘 자." 하고 들어가 버렸다. 둘째 아이도 히죽거리며 후다닥 들어가 버렸다. 그때 깨달았다.

 

내가 오늘 우리 집의 빌런이었구나!


사실 나는 인정해야 한다, 가끔 내가 우리 집 빌런이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다니 나는 이런 나부터 일단 격려하기로 했다. 빌런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보인다.


'갑자기 왜 남편 자는 모습이 얄미웠을까?', '나는 왜 갑자기 심사가 뒤틀렸을까?' '그러니까 왜 남편은 대체 나보다 늦게 일어난 거야?' 그날을 복기하며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며 이 글을 적고 있는데, 오늘도 영락없이 큰 아이가 나타나 내 글을 읽고는 박장대소했다.


"맞아, 엄마 이날 진짜 빌런이었어!!! 하하, 우리 엄마 글 진짜 재미있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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