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무슨 맥주 좋아해?"
내 취향을 존중해 주는 친구가 소중하다
오래도록 알고 지낸 동생이 한 명 있다. 성격이 시원시원하고 목소리나 말투는 걸걸해서 마치 남동생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다. 내가 참 좋아하고 아끼는 동생인데, 어느 날 우리 가족을 집으로 초대했다.
약속 며칠 전이었다. 그 동생에게서 카톡이 왔다. 동생은 나에게 우리 부부가 선호하는 맥주나 소주가 따로 있는지 물었다.
'역시 애주가답게 애주가의 마음을 아는구나!'
나는 센스 있는 동생의 질문에 우리는 참이슬과 카스를 좋아한다고 얘기했다. 사실 그동안 그 동생과 술도 참 많이 마셨는데 굳이 서로 뭘 좋아하는지 알아챌 틈도 없이 어떤 술에도 그저 즐겁게 늘 한 잔 했던 것 같다. 동생의 연락에 나는 기분이 참 좋았다.
드디어 약속했던 날이 왔다. 우리 집으로 동생 부부를 초대해 함께 어울린 적은 있었지만, 우리가 그 집으로 놀러 가는 것은 처음이었다. 동생은 아이 둘을 데리고 오는 길이 힘들지는 않았냐며 우리를 식탁으로 안내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나는 깜짝 놀랐다.
'어떻게 우리가 좋아하는 음식을 이렇게 다 준비했을까?'
나와 남편은 전반적인 입맛은 비슷하지만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꼽으라면 크게 갈리는데 내가 좋아하는 회와 우리 남편이 좋아하는 맑은 국물의 요리가 함께 준비되어 있는 것이다. 그때 아이들이 말했다.
"이모, 우리가 제일 좋아하는 치킨이랑 피자잖아요! 잘 먹겠습니다. 이모 최고야!"
동생의 남편이 자리에 앉으며 이야기했다.
"우리 와이프가 언니랑 가족분들을 얼마나 좋아한다고요. 평소 만나면서 어떤 것들을 좋아하는지 늘 눈여겨봤나 봐요. 술만 잘 모르겠어서 슬쩍 물어봤다고 하더라고요."
애주가여서 그런 질문을 했던 것이 아니었다. 나는 너무 따뜻했고 뭉클했다. 이 선머슴 같은 녀석이 아주 긴 시간 우리를 얼마나 애정 있는 시선으로 바라봤다는 것인가.
내가 조금 더 어린 나이였다면 이것이 어떤 배려이고 애정인지 잘 몰랐을 것이다. 사람마다 점점 각자의 생김새가 확실해져서일까, 혹은 서로에 대한 이해심보다는 편안함이 커져서일까? 묘하게도 나이를 먹을수록 친구를 만났을 때 기쁜 순간 만큼 아쉬운 순간들도 제법 많아진다.
오랜만에 만나 대화를 나누는데 어느 날은 쉴 틈 없이 핸드폰을 만지는 친구가 있다. 나는 카스를 좋아하는데 맥주는 테라라며 무슨 일이 있어도 테라만 시키는 친구도 있다. 만나면 본인의 관심 주제만 실컷 늘어놓고, 정작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시작되면 딴청을 피우는 사람도 있다. 식당도 음식도 "여기는 이 음식이 유명해."라는 한 마디로 모두의 취향을 존중하지 않는 친구도 존재한다.
그리고 문제는 내가 좋아하고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언제고 그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만나고 돌아오는 날은 잔뜩 아쉽다. 훅 엄청 짜증이 나는 날도 있다.
다행인 것은 그래서 나이를 먹어갈수록 친구의 애정을 더욱 소중하고 감사하게 느낄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아, 몰라. 빨리 먹기나 합시다!"
멋쩍었는지 동생이 걸걸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어리고 귀여운 동생인 줄만 알았던 녀석에게서 뭉클한 고마움을 느꼈던 날이었다.
나의 시선도 내가 아끼고 소중해하는 사람들에게 더욱더 향하기를. 내 소중한 동생을 포함하여.